그는 앞으로 전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과 들, 구름, 나무를 평면화시켜 그리는 동시에 100호 이상, 300호 작품 100여점을 작업해 전시를 열까 계획 중이다.
점(點) 하나로도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는 그는 순간 순간의 생각에 예술적 상상력을 맡긴다.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 자리한 그의 화실에 가보면 무질서하고 자유분방한 듯 보이지만 그 나름의 질서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겉모습만 보면 그는 굉장히 거칠고 남성적 면모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구축하고 있는 화면의 색채들을 보면 달라진다. 차분한 색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자와 예술가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서양화가 김병모(67)씨의 이야기다.
김 작가는 전북 남원 출생으로 전북학생미술대회와 조대부고 재학시 호남예술제 미술 최고상을 각각 수상하며 청소년기에 두각을 보였다. 이런 수상을 발판으로 조선대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화가로서의 삶의 첫 단추를 꿰게 된다.
그리고 미술계 이름만 대도 그의 주변에 알만한 동료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김대원·진원장(前조선대 교수), 임병남(前서강정보대학 교수) 등이 그의 고교 동창들이다. 김 작가는 자신의 모교인 조대부고에서 미술교사로 정년 퇴임했다.
정년퇴임한 뒤 더욱 작업에 매진해온 작가를 만나기 위해 그의 화실을 찾았을 때 그가 막 제3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분과 위원장으로 심사를 다녀온 뒤였다.
덥수룩한 수염이 한껏 더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풍겨주었다.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예술적 특성을 묻자 자신은 ‘다작(多作)을 하는 작가’라고 답했다.
그가 생각하는 다작은 그저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의 의미를 넘어섰다. 그에게 다작은 순발력으로 읽혔다. 즉 그만큼 순발력을 빠르게 발휘해낸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었다. 스케치 여행을 떠나 순간 순간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하루 20∼30장을 소화해낸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결단코 깊이와는 무관하다는 확신이다. 점 하나를 찍어도 표현이 될 뿐만 아니라 감성을 시각화시키는 것이어서 깊이와 관련지어 바라보거나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이라는 설명이다.

"시각화해 보여지는 부분만 가지고 다작을 폄하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표현하는 대상에 한계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작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작의 또 다른 해석은 작가적 태도와 연관지을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시점이나 포인트가 가장 적절할 때를 기다렸다가 작업을 하기보다는 그 스스로 찾아나서서 작업을 펼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다작의 전제조건들이다.
무조건 많이 그리는 남발로써의 다작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기준과 조건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5년전에는 자연을 찾아가 자신의 감성과 느낌을 표현했는데 현재는 작업실에서 자연을 재구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을 볼때 부분에서 부분을 확대하며 축소하는 과정을 거치고, 넓은 대자연을 평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재구성한 작품들은 우리 인간에게 명명하듯 풍경에 적절한 그때 그때의 감성적 이름이 명명되곤 하기도 하죠."
또 최근 그의 작업에는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등장한다. 그가 은행나무에 집중하는데는 생태적 불변에 감화를 받아서다. 은행나무의 노란 빛이 가을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태고적부터 변하지 않은, 유전적 변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소나무는 기개와 강건함, 절개를 함유하고 있어서다. 지리산의 웅장함 속에는 소나무들이 있는데 지리산에서 제일 큰 것 또한 소나무로, 지리산의 웅장함을 표현하는데 적격이라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도 땅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무안 등 서해안 일대에서 인간의 둘레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 밭이나 작은 언덕, 하늘 구름, 양털 구름 등을 등장시켜 주제를 집약시키는데도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러면서 색채에 남다른 신경을 기울인다. 그는 보여지는 색채보다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넘나들며 감성들을 화면에 풀어낸다. 300호 작품들이 이런 감성을 풀어내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얼핏 보면 은행나무가 아닌 듯 하지만 색채를 자세하게 보노라면 금방 은행나무임을 알아챌 수 있고, 안온한 노란 색채에 빠져든다.
그러나 작가는 색채를 가리지 않고 쓰는 습성 때문에 강렬한 색채에서부터 부드러운 중간색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사용하는 편이다.
특히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테라코타(terra-cotta)로 작업하는 일에도 열중한다. 상상하는 여인을 평면에서 구현한 뒤 테라코타에서 입체적 방법으로 표현한다. 자기 자신을 테라코타로 표현하기도 한다.
작업을 전개할 때는 표현도구에 한계를 두지 않고 붓이나 나이프, 석채, 아크릴, 유화 등 다양한 화구와 재료들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증도 해변의 모래같은 재료들도 기꺼이 활용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붓을 잡은 이후 줄곧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그는 지난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지만 화가로서의 삶에 후회는 없다.
그는 한국미협과 광주미협에 몸을 담고 작업을 해왔으며 광주를 연고로 한 작가들의 모임인 무등회 회장을 역임했고, 전국의 100여 작가들을 주축으로 대작 300호를 전시하는 그룹인 신작전 창립 멤버로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8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2016 제7회 광주국제아트페어’에 작품 100점을 출품하는 열정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이 모두 오늘날까지 그가 화가로서의 삶에 든든한 배경의 한자락이 됐음은 물론이다.
작가는 작품마다 그 작품에 어울리는 작업노트를 기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작업에 대한 또 다른 사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도록에는 그 작품과 관련된, 시(詩)같은 글들이 새겨져 있다.
일흔을 향해 가는 나이지만 작업이 아직은 힘들지 않다는 그는 감성에 젖을 때 굳이 술과 담배를 멀리 하지 않는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랜 시간 창작을 해왔지만 술과 담배를 멀리할 정도로 건강을 잃지 않았는 게 그의 답변이다.
그동안의 보람도 잊지 않고 들려준다.
"조대부고 미술교사로 정년 퇴임을 했고, 전남대와 조선대 외래교수도 역임했지요. 그림을 쭉 그려왔는데 오래전 버릇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쾌감이 있죠. 그 쾌감에 도취될 때가 많은데 그게 작업 아니겠어요. 화면에 펼쳐지는 색채와 재구성한 자연의 쾌감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저는 즐거움으로 미술을 맞이하고 있어요."
젊은 작가들에게 당부말이 없냐는 질문에 지난 9월29일 ‘제35회 국전’ 서양화분과 위원장으로 심사할 때 심사평을 언급했다.
"예술세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둘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멀어지지 말고 색채적 감성을 느껴가야 할 것 같아요. 아울러 창작 의욕과 개성 넘치는 안목으로 다양한 조형방법을 표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전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과 들, 구름, 나무를 평면화시켜 그리는 동시에 100호 이상, 300호 작품 100여점을 작업해 전시를 열 계획이다.
색채적 감성과 자유분방한 필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풍경을 펼쳐온 작가의 관조적 삶과 심상이 향후 펼쳐질 대작들에 어떤 조형감과 색채로 구현될 지 자못 궁금하다.

화가 김병모는
△전북 남원 출생 △조선대 미술학과 및 동대학원 순수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14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5회 입선 △일본 나고야 교류전 △프랑스 비사비 교류전 △2016광주국제아트페어(14번째 100점전)△무등회 회장 △신작전 창립멤버 △광주시전·무등미술대전·전라남도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조대부고 미술교사 정년 퇴임 △전남대·조선대 외래교수 △건축사미술동호회 지도교수 △제3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분과 위원장 △한국미협 회원 △광주미협 회원.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