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가정학을 전공했는데 그래도 늘 미술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었어요. 20여년 전 사회생활을 하다가 미술에 투신했으니까 늦게나마 미술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죠. 처음에는 구상적 작업이었는데 주로 자연을 그렸습니다. 그때는 천 작업을 했는데 콜라주(collage)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전업작가들 못지 않게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광주시 서구 풍암동 작업실에서 틈틈이 머무르며 작업을 펼치고 있는 전주 출신 서양화가 이영실(59)씨는 여러 개인적 여건으로 미술에 입문하지 못하다가 마흔을 앞두고 붓을 들었다. 다른 사람보다 빠르지 않지만 미술에 대한 열망으로 진정성있는 작업에 임하며 미술에 대해 깨치기 시작했다. 이때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뛰어든 시점이다. 한동안은 자신의 독창적 회화세계를 찾아나서는 단계로 하나 하나 미술에 대해 깨쳐나가야 했기 때문에 어렴움도 많았다. 아마 그 어려움을 피하고 쉬운 길을 택했다면 그는 오늘날 자신만의 독창적 회화세계를 구축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을 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늘 기회가 열리는 법이다. 이 작가에게 미술의 길은 그렇게 열린 것이다.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아니 길을 열은 것이라고 보는게 정확할 듯 싶다. 늦깎이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기자신만을 드러낼 수 있는 회화장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지 모른다.
구상적 자연에 치중한 그에게 훗날 팝아트적 회화세계가 안착된 것 말이다. 3년여전까지 그는 앞서 밝힌 것처럼 천 조각을 콜라주식으로 푸는 방식을 누차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팝아트로 옮겨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했던 필수코스였던 셈이다. 천조각을 콜라주식으로 풀어 작품활동을 한 이가 쉽게 평면회화로 돌아갔다면 그것은 아마 후퇴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30대 중반에 미술에 입문한 뒤 40대때 풍경작품 등 기본과 기초에 충실한 과정을 거치는 등 자연스런 단계와 흐름을 밟아 팝아트로 넘어간 것이다. 그에게 40대와 50대의 작업의 키워드는 변화다. 변화를 위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화실에는 최근 그만의 작업스타일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러 점 눈에 들어왔다. 팝아트를 구사하지만 거기에 캐릭터를 투영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은 대개 모호하게 표현된다. 그의 화면 속 사물이나 캐릭터는 공존한다.
이런 화풍에 대해 그는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지난 3월 고향인 전주 교동에서 팝아트들을 대거 선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그림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미술이 관람객들에 결국 이 행복감을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인식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팝아트가 꿈꾸는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팝아트에서 보여주는 색채를 보면 그의 팝아트적 성격을 단박에 읽을 수 있다. 주로 원색 계열을 구사하는 것을 즐긴다. 색채 구사는 그만의 원칙이 있다. 질리지 않은 색감을 구사해 긍정적인 인간의 삶을 비롯한 희망과 꿈을 화면에 투영해내는 것이다.
"팝아트는 기존 존재하는 것을 그리는데 제 팝아트는 다른 작가들과는 구별된다고 생각해요. 팝아트를 유심히 보면 경직된 것이 분명히 있지만 제 그림은 달라요. 관람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철학이 있는데 그 철학적 요소를 부각하는 치중하고 있죠. 팝아트가 진지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가버리는데 저는 화면에서 되도록 감동적인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팝아트에 대해 애착이 크다. 작품 하나 하나를 설명한다. ‘식탐’과 ‘디즈니랜드’, ‘따라갈래2’, ‘행복365’, ‘내가 제일 잘 나가’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더욱 선명한 이해를 가져갈 수 있었다.
‘식탐’은 미키마우스가 등장, 먹는 것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인데 명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디즈니랜드’는 청바지 조각을 붙여 캐릭터를 넣었는데 동화적 요소 때문에 어린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따라갈래2’는 순간적인 관찰로 애완견이 가방에 앉아았는 모습을 천착하고 있으며, ‘행복365’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먹는 것을 미화한 작품으로 몸의 비대를 떠나 마음의 행복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캐릭터를 옷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 다른 표정의 얼굴이 있는데 우리들 삶과 연계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그의 화면에는 팝아트가 대세이고,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 이같은 변화를 일구기까지의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진짜 어려움이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팝아트는 아이디어에 민감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 힘들어요. 의미있는 생각들을 발상한다는 것이 너무 힘든 점이죠. 이건 싸움과도 같은데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24시간 줄곧 작품을 생각하며 산다고 봐야죠. 밑그림이 어느 정도 되면 캔버스에 옮겨 생각을 많이 해야 되고요.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견뎌야 하지만 제가 너무 하고 싶었던 것이어서 즐겁고 행복해요."
팝아트는 그에게 즐거움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로는 그늘을 만들었다.
"선호하지 않지만 사실 묘사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사실묘사를 많이 안그려봤는데 그것은 단순한 형태나 크게 잡고 그리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청동회를 따라 스케치 여행을 가서도 저는 나무를 그리기보다는 나무에 무엇을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저만의 스케치를 하는데 저만의 스케치 방법이 있어요."
그에게 그동안 그림여정은 행복여정 그 자체였다. 그림이 곧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상의 여유 쯤이야 쉽게 포기할 줄 알았다. 그것은 그림이 일상의 여유라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다 든든하게 조력자로서 역할을 거뜬히 수행해준 남편과 엄마표 미술을 기꺼이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그는 가정과 가사라는 무게감을 내려놓고 작업에 한층 더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화단이나 감상자의 평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에는 인색한 편이다. "제 작품이 아직은 정착하지 못했어요. 제 마음의 잣대로 보면 완성도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완벽한 만족도는 없겠죠. 작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올들어 네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미 전주(3월 교동갤러리)와 광주(5월 자미갤러리), 순천(5월 조례공원내 꽁띠카페갤러리)에 이어 나주(11.16∼12.4 승촌보 영산강문화원)까지. 남들보다 늦은 만큼 쉼없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 전시들은 미술계에서 그에 대한 인지도를 서서히 끌어올려주는 마당물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아트적인 스타일과 밝은 색상,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희망과 꿈을 만들어가는 그가 지난 5월 자미갤러리 개인전에서 내세웠던 타이틀 ‘염치와 최면’처럼 우울하고 이성이 마비된 듯한 작금의 시간 속에서 톡톡 튀는 팝아트를 통해 잠시나마 한시름을 잊고 염치있는 세상을 꿈꾸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화가 이영실은
△전북 전주 출생 △전주 교동아트미술관·광주 무등갤러리 등 9회 개인전 △북경산업박람회 아트페어 △국제 작은 미술제 △한국베트남수교 20주년기념 현대미술아트페어 △가고시마 교류전 △서해아트페어 초대작가전 △영산강 물길따라전 △한국의 숨결전 △남도의 숨결전 △히로시마 평화교류전 △밥과 국수전 △황토드로잉회 20주년을 추억하다전 △팝팝팝전 △전국화가초청 영암 월출산전 △6대광역시 교류전 △미인을 훔치다전 △한국미협 회원 △광주전남여성작가회원 △광주사생회원 △한울회원 △황토드로잉회원.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