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린 산천 풍경은 그곳에서 스케치하고 수록된 현장성을 작품화 하였기에 현장의 생동감이 투영된 실물적이면서 사실적인 작품이다. 그림이란 대상을 그리는 것이지만 거꾸로 화가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그로부터 마음 깊숙이 다가오는 정서를 표현하고 싶어한다. 이는, 보이는 대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가다듬고 또 가다듬으며 천착해가는 방식이다."
이는 미술평론가 장석원 교수(전남대·현 전북도립미술관장)가 한국화가 하담(夏潭) 김은자(66)씨에 대해 평가한 글 중 일부다. 현장성과 심연의 의미들까지 조망해 화폭에 투영한다는 의미다.
어쩌면 이런 의미망의 확장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전시회때 마다 ‘힘이 있는 그림’이라거나 ‘남자가 그린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작가에게 힘은 삶의 동력이자 추진력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힘 있는 그림을 선호한다.
이런 그가 화가로서 첫 단추를 꿰게 된 출발점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학교 때 자신이 다녔던 무안 몽탄북국민학교에 습자(현 서예) 교육이 개설돼 운영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미술과 습자가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했었다.
1962년 9월 무안군 주최 학술경진대회 습자 분야에서 이 학교 사상 처음으로 특선(최고상)에 뽑힌 데 이어 그해 12월 목포예총 주최 ‘목포예술제’ 서예분야에서 특선(최고상)을 잇따라 수상하면서 일찍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목포예총지부장은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인물인 남농 허건 선생(1908∼1987)이었다. 원본 그대로 보관해온 빛바랜 상장을 필자에게 보여줬다. 거기에 새겨진 허건이라는 이름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그림보다는 글을 먼저 익혔다. 이처럼 글에 대해 접근이 용이했던 데는 그의 집안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부친 등 집안 어른 5명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집안 분위기가 글들을 많이 짓고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각종 대회마다 어르신들이 집에서 쓰던 큰 붓을 들고 나갔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들보다 글씨가 힘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힘있는 그림에 대한 선호는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또 작가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968년 국전 대상 수상자이자 ‘평보체’라는 서체로 한획을 그은 전남 함평 출생 서예대가 평보 서희환 선생(1934∼1995)의 몇 차례 지도가 큰 힘이 됐다는 전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선생으로 알려진 평보 선생과의 만남 이후 작가의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 출중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360명만 선발했던 전남여중에 진학했으나 아쉽게도 서예부가 없는 대신 미술부가 있어 미술 공부를 하게 된다. 전남여고와 광주교대에 진학해서도 미술공부는 계속된다.
원래 그는 미술을 생각하지 않았다. 적성검사 결과 공대가 97% 맞았다. 건축과를 진학하려 했으나 가세가 기울여 사립대 진학이 어려워지자 당시 초급대학이었던 광주교대를 선택하게 된다.
나중에 계절학기를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집념을 발휘하기도 했다. 미술교육을 전공하다보니 한국화는 물론이고 판화와 조각, 디자인 등 미술의 모든 영역을 섭렵했다. 그의 작품에서 서양화의 느낌이 나는데는 바로 이런 과정에 힘입은 바 크다.
이처럼 그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미술이 늘 그와 함께 했다는 점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미술이란 존재에 대해 묻자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고 답한다.
"미술은 절대적으로 제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교직에서 퇴직하기 전에는 취미였죠. 지금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어요. 미술은 기본적으로 성취감이 있다고 보면 돼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하니까 즐겁습니다."
그에게 그림은 두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을 거쳐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때까지 해오던 습자와 미술이었다면, 두번째는 1999년 이후의 미술을 말할 수 있다. 그 스스로 말했지만 1999년에 석운 김재일 작가 밑으로 들어가 정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다보니 먹하고 가깝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때 수묵과 산수를 작업했다. 처음에 수묵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채색도 병행했다. 최근 들어서는 책색을 포함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석운 김재일은 이런 작가에 대해 "대부분 현장 스케치를 통해 그대로의 감흥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에게도 현장의 느낌과 포근하고 행복함, 작가의 상당한 화격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주의적 구상회화를 견지하면서 작업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고즈넉한 삶의 경륜이 느껴지는 회화작가라고 평한다"면서 사실주의적 구상회화에 방점을 찍는다.
아울러 스케치 여행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케치 여행을 통해 그는 대상에 대한 표현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등 많은 것들을 깨치는 계기로 삼은 것은 물론이다.

"서양은 면을 나누는 것이 삼각형이고, 집이 비탈지게 돼 있으며, 우리처럼 바위산이 없어 먹을 쓰는 것보다 유화나 수채화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자연하고 표현이 맞는구나 하고 깨달았죠. 또 어떤 곳은 아침에 가야 하고, 어떤 곳은 석양에 가야하죠. 어떤 곳은 봄에 가야하고, 어떤 곳은 가을에 가야 하죠. 이런 세세한 것들 모두 현장에서 깨친 것들입니다."
그는 올해 전시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그림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평안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모두 제 그림을 보면서 편안하다는 반응이 많으면 제가 미술적으로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죠."
그는 산수를 시작으로 정물과 동물,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작업을 펼쳐왔다. 특정 분야에 얽매이기보다는 다양하게 해보는 것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죽기 전에 어떤 그림을 해보고 싶냐’는 물음에 국내 명산을 대작으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리나라 명산을 엄선해 대작으로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명산마다 따로 따로 작업해 완성하는 방식이죠. ‘백산’전은 아니더라도 유작으로 대작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그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용기와 위안의 메신저가 되기를 희망했다.
"서울 인사동에서도, 광주에서도 개인전을 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이 힘이 차서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고 하거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을 접하면 제 그림이 보는 이들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 같아 기뻤죠. 앞으로도 늘 보는 이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한국화가 김은자는
△전남 무안 출생 △광주교육대 졸업 △개인전 4회 △단체전 200여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다수 입선 △일본 국제공모 전일전 특선 △무등미술대전·광주시 미술대전 ·전라남도 미술대전 다수 입상 △그리스국립미술관서 ‘한류미술의 물결’전 △네팔-히말라야 스케치전 △무등미술대전 초대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 △광주시 미술대전 추천작가 △광주미술협회원 △한울회원 △운림회원 △한국화여류화가회원 △광주시미술과여교사회원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