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먼저 우수한 제품과 기술력은 필수다. 하지만 자금·인력적 한계로 내실 있는 지역 기업들 대다수가 수출에 애를 먹는다.
운 좋게 바이어와 연결돼도 계약에서부터 제품을 만들고 물류업체를 통해 선적, 실제 바이어 손에 제품이 들어가기까지 준비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라 힘들게 얻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수출 유망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점이다. 인증·특허·관세·법률 등 전문 지식의 역량을 갖춰야 하나 엄청난 비용을 들일 여력이 없다. 각 중소기업 연관 기관·단체가 중소기업의 수출을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전문 지식’을 주력으로 지원해 수출의 길을 닦아주는 곳이 있다.
광복 직후인 지난 1946년 출범한 민간 단체 한국무역협회(KITA)다. KITA 광주전남지역본부로 올 초 부임한 주동필 본부장(50)을 만났다.

-KITA는 어떤 지원기관인지 항상 헷갈렸다. 원래 무역업계를 지원해야 하지 않나.
△맞다. KITA는 당초 수출입업종 기업들을 돕기 위해 뜻있는 무역인들이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이 다소 바뀌었다. 규모가 작았던 무역 업체들이 현 SK네트웍스,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등 대기업으로 발전하면서 지원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업종과 무관하게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게 됐다. 국내 수출입 업체들은 계열사 제품은 물론 수많은 수출 중소기업이 있어야 잘된다. 무역 업체는 있는데 중소기업들이 수출에 애를 먹고 있었다.
따라서 수출 인프라를 구축하고 업계가 동반 성장해 국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자금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부터 시작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무역협회의 사업보다 더 큰 규모를 지원하는 만큼 특히 전문 영역에서 기업들을 돕고 있다. 현재 무역협회의 주력 업무는 수출 중소기업의 길을 닦는 일이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전문 지식 영역에서 준비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 내 회원서비스센터(1566-5114)로 전화를 걸면 관세·법률·계약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3명으로부터 기업 맞춤형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지역 현황은 어떤가.
△적은 인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을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지난 1월 광주에 온 뒤 가장 많이 한 일이 업체 방문 및 지역 탐방이었다.
지역본부에 부임하면서 아예 광주에 집을 얻었다. 물론 가족은 서울에 있지만 올라가지 않았고 주말에는 대신 지역 각지를 걸으면서 둘러보거나 민속촌 등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에 가서 지역민이 먹는 음식들을 시켜먹었다.
업체 방문도 하루 서너곳씩 묶어 동선을 잡고 진행했다. 광주의 각 산단은 물론 장성 넘어가는 길에 있는 나노산단, 여천산단 등 전남권에도 자주 내려갔다. 지금까지 만난 기업은 50곳이 넘는다.
업계를 둘러보니 ‘혹시나’가 ‘역시나’더라. 광주·전남지역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자체 제품·기술에 수출 경쟁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전문 지식도 물론 부족해 어깨가 무거워졌다.
지역적 특성도 파악했다. 부산·울산·경남은 조선·기자재 산업을 주력으로 ‘부울경’이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여수·광양·순천은 각 지역별로 유화(여천산단), 제철(포스코), 식품 산업이 강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약간의 경쟁 심리도 있다고 생각했다.

-파악을 빨리 한 것 같다. 업체들을 많이 방문했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업체는 있나.
△올 초 있었던 중기청 행사에 참석했을 때 만난 광주 콘택트렌즈 제조사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 주문량이 급증해 생산공장을 늘리고 싶은데 각 산단이나 광주시가 신규 유입된 업체들을 주력으로 지원해 부지·설비 등의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하더라.
지원 정책들을 들여다보니 주로 대기업이나 수도권 소재 중견기업 등을 지역에 유치하려고 하던데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규 기업 유치의 경우 지역 경제계의 오래된 문제점인 인력난 극복 및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타 지역에 있는 연구개발(R&D) 전문 기업이나 연구소 출신 기업들이면 지역과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대기업이 지역에 올 경우 오히려 의존도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생각에 광주시와의 회의에서 윤장현 시장께 사례를 얘기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규 유치보다 기존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행히도 즉석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져 이후부터는 신규 기업과 기존 기업의 공장 설립 지원 규모가 같아졌다. 현재 그 업체는 시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진곡산단 내 3개의 땅에 총 9900㎡에 달하는 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다.

-지역본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은.
△크게 두 기조로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들이 있다.
첫째가 무역아카데미다. 무역 전문 지식을 다루는 실무 강좌로 구성된 무역아카데미는 현재 광주와 전남에서 각각 진행 중이다. 전남무역아카데미는 권역이 넓어 주로 16시간 집체 교육을 하고, 광주무역아카데미는 매일 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돼있다.
먼저 광주는 원래 1일 4시간씩 15일, 총 60시간을 교육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니 가격만 고려하면 되는 물류업체 선정 등 필요성이 떨어지는 과정이 많았다. 양보다 질을 갖추자는 기조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없애고 교육 시간도 1일 3시간으로 단축하는 대신 지금까지 소홀했던 전문 영역을 다채롭게 넣어 커리큘럼을 다시 짰다.
내달 12일부터 15일간 열리는 광주무역아카데미에서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다음달부터는 무역아카데미에 기수제를 도입해 수강생 간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전에는 실무자 간 네트워크가 없었다. 물론 무역아카데미 수강생은 업체 대표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부터 먼저 모임을 만들어 서로 수출 애로사항과 해결방법을 공유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기수가 늘어날수록 네트워크 규모가 커지고, 이를 기반으로 궁극적으로는 지역 수출 중소기업계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또다른 신규 사업은.
△사업이기보다는 지원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지역 중소기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기업 의존도다. 지금까지 각 기관이나 지자체가 주력으로 육성했던 가전·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광주에는 식품이나 바이오 기업이, 전남에는 화장품 기업이 있는 등 주력 업종에서 소외된 산업군의 업체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그 중에서는 실력도 탄탄한 곳이 많다.
업체를 방문할 때 이처럼 지금까지 정책 수혜 대상에서 다소 배제된 산업군의 업체들도 여럿 갔는데, 하나같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고 최근에는 내수 시장 불황까지 겹치면서 수출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소외 산업군에 속한 중소기업 중 수출 경쟁력이 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전문지식은 기본이고 해외 전시회나 수출상담회 등 산업군별로 맞춤형 마케팅을 펼치게 할 계획이다.

-타 기관도 수출상담회나 전시회 지원을 하고 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 협회 본부에서 전문전시회주최TF, 전시컨벤션팀 등에 있을 때 자체 확보한 대형 해외 바이어 100여곳의 목록이 있다. 업종별로 이들을 구분, 상담회나 전시회에 나갈 때 초청하려 한다.
현재 계획 중인 것은 화장품·헬스케어·뷰티 업종에 해당하는 기업들을 모아 해외 전시회 중 해외 유통 바이어를 확보할 수 있는 B2B 성격의 행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소형 가전을 신규 사업으로 마련한 기존 가전 업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원하려 한다.

-계획들이 굵직해 어깨가 무겁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계획은 많지만 본부장 직위가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무엇보다도 사람 관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전 회원서비스센터장으로 있을 때 13명의 전문가를 데리고 일하는 게 쉽지 않더라. 친절도 등을 개선하는 데 애를 먹었다.
따라서 먼저 지역본부를 ‘일하고 싶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지역의 산업부·미래부 산하기관장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해 선배들의 경험을 귀담아 들을 것이다.
또 ‘광주시민’이 된 만큼 앞으로도 시간을 쪼개 지역 탐방이나 업체 방문 등을 할 예정이다. 특히 업체 방문을 통해 지역의 수출 유망 기업을 발굴, 바이어와 그때그때 연결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수출 유망기업이나 수출 장벽에 부딪힌 업체들이 무역협회의 사업에 참여, 해외 진출의 기반을 닦았으면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신규 기업보다 기존 향토기업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프로필
-경희대 행정학과·한림대 국제대학원(전시컨벤션 전공)졸업
-한국무역협회 입사(1992년)
-기획조정실 과장, 전문전시회주최TF, 전시컨벤션팀 과장
-전북지역본부 과장
-무역아카데미 연수기획팀, 전략연수팀 차장
-e-Biz본부 IT전략실 차장
-전시마케팅·마케팅협력·국제협력실 부장
-무역의날 포상

김주연 기자 sense@gwangnam.co.kr

김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