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제69호) 그는 집을 짓는다. 그의 집들은 안온하다. 가진 게 없어도 기성 세대들에게는 그리운 고향과 같은 풍경일 수 밖에 없다. 모두 가난하던 시절 닥지닥지 붙은 방에서 기거했을 터다. 지금은 대개 철거되고, 기억에만 또아리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집을 되살리는 것이 그의 일과 중 중요한 여정이 됐다.
잘못 행간을 해석하면 마치 다주택을 확보한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 같지만 그것이 아니다. 회화 속 집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집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게 들어차 있다. 대중 대충 만들어지는 집은 없다. 정교하기 이를데 없다. 우스갯소리로 현실 공간에 저 많은 집들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웃어보인다. 적어도 그는 작품 속 집 부자다. 젊은 서양화가 양나희씨(37) 이야기다.
그의 회화세계에 대해 디테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여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지난 1월2일 입주해 활동 중이다. 올해 말까지는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에게 이번 레지던시는 네번째다. 중국 북경 99미술관을 비롯해 상해 윤아르떼, 호랑가시나무 등의 레지던시에서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주기적으로 크리틱 기회를 갖거나 교류 및 소통하기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다 외국작가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가동되는 점을 레지던시의 장점으로 꼽았다. 지난 1월17일 오후 방문했던 그의 작업실은 단정해 보였다. 입주한 지 오래되지 않아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작업용 의자에 앉아 단편적으로만 접했던 그의 작업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전남 순천에서 보내던 유년기부터 미술을 즐겼지만 본격 입문은 2009년 대학원 수료 이후 인물화를 주제로 광주롯데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 전후라고 밝힌다.
이처럼 2009년은 작가에게 갈림길의 해로 기억된다. 전시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등 화가의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이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광주 중흥동프로젝트 이후 중흥동 재개발지구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그곳을 다녀왔다. 그는 공폐가가 많은 그곳에서 세상의 쓸모없는 것들과 대면하게 된다. 폐지가 가득 실린 빈 수레를 보며 마음이 우울했다고 전한다. 생존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해요. 누군가는 살기 위해 하루종일 모아야 하죠. 그런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구요. 이 무렵 인물 작업을 하다가 폐지를 활용, 만든 집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혹은 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줘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그에게 폐지는 폐지라고 하는 사회적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폐지는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매개물로 읽혔다. 설령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는 가치가 있는 양면성에 주목한 것이다.
폐지가 작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그에게도 그저 처치 곤란한 것에 불과했다. 초창기 그는 폐지를 쌓는 데 급급했다. 아무런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손수레를 끄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박스를 그들에게 나눠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치없는 것들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친 셈이다. 생각은 물론이고 작업 방식도 변화했다. 인물에서 집으로 바뀌었고, 폐지의 초기작업 또한 변화가 찾아왔다.
지금은 평평한 폐지 위에서 작업을 한다는 설명이다. 일일이 잘라서 입체감있는 집 한채 한채 만들어 마을을 완성한다. 따로 따로 하는 것이라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따라 붙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은 두 가지 형태로 분화돼 존재한다. 실존마을과 상상마을이 그것이다.
"실존마을은 기록성을 갖고 있어요. 유치원생들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모두 아파트에 사는 경우가 많아 네모로 그린다고 하잖아요.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사라지는 마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 대표작의 하나인 ‘해동네’를 발표한다. 빛이 먼저 드는 의미로 명제를 ‘해동네’로 했다는 전언이다.
그 해동네에는 밤과 새벽, 아침의 풍경이 공존한다. 집의 높낮이는 있되, 굳이 계층간 위화감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한다. 이런 작업을 하다보니 없는 사람들, 또 소외된 사람들, 약자들을 닮으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폐지는 이런 의미 외에도 소비적이거나 일회적인 현대사회에서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해동네’는 지난해 뽕뽕브릿지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서 차용한 ‘쉽게 그려진 그림’, 그리고 ‘고산의 성’ 등이 근작 중 그의 기억에 각인된 작품들이다. 이 전시에서 그는 기존 작업 방식을 탈피해 초현실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고산의 성’ 같은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더 나아가 그는 작업실 한쪽에 걸어져 있는, 액자로 구현한 작품에 대해 상당시간 설명을 할애했다. 액자 안팎의 프레임을 통해 풍경을 더하고, 빼고 하는 식의 작품으로 여기에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간극을 드러내 보여줬다. 화가인 부친의 것까지 활용했지만 액자는 화가들에게 짐같은 존재라는 설명을 더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에게 액자가 액자만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알아챌 수 있었다.
"액자는 어떠한 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액자를 벗어난다는 것은 틀을 벗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액자를 자르면 조각이 쓰레기처럼 또 나옵니다. 이런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한때 계속되기도 했어요."
그에게는 이 작품들 외에도 ‘삶, 풍경’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목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작업했다고 말한다. 2012년 동구재개발 전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으로 담고 작품으로 완성했다.
그곳은 그에게 칙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따뜻한 기억들을 재생하고 복원시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접근했다. 폐지 이미지를 주기 위해 회화 속 집을 포함한 건축물들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냈다. 100호 3개를 붙여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장기불황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큰 위안이다.
꾸준한 반응이 있다보니 스스로 복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여전히 쓸모있는 것을 가지고 고귀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 하면 보통 집으로 통하죠. 그 집은 그냥 유지하구요. 다른 실험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따뜻함이 있는 작가, 그러면서 서사가 있는 작가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