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제70호=여균수 기자)에네모레나 에너사업장에서의 모니터링을 모두 마친 방문단은 귀국에 앞서 에티오피아의 역사문화투어에 나섰다.
첫 번째 방문지는 은토토산이다. 해발이 무려 2950m라는데, 그저 동네 뒷산 같다. 아디스아바바 평균 고도가 2400m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고작 높이 500m 정도에 불과한 평범한 산인 것이다.
은토토산은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겐 성스러운 산으로 통한다. 이 곳엔 메넬릭2세 황제의 기념박물관과 에티오피아정교의 첫 교회당인 세인트메리교회, 그리고 메넬릭 2세가 살던 궁성이 있다.
메넬릭2세는 1896년 에티오피아를 점령 중이던 이태리를 물리친 황제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에티오피아를 건국한 첫 황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구전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 에티오피아 북부와 예멘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시바여왕과 예루살렘의 솔로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메넬릭1세이다. 그가 지금의 에티오피아 위치에 악숨제국을 건국함으로써 에티오피아 솔로몬왕국의 시대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메넬릭2세 박물관에는 그가 사용했던 왕관과 칼, 방패, 의복,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세인트메리교회 앞에는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는 신도들이 보였고, 내부입장이 불가능해 교회 주위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8각 돔형 지붕으로 건축된 건물모양이 독특했다.
교회 뒤로 메넬릭2세의 궁성이 위치하고 있다. 궁성이라고 해봐야 나지막한 성벽 안에 황제의 집무실과 숙소, 접견실 등 3동에 불과해 이 곳이 황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지붕은 헐었고, 벽에 칠해 놓은 흰색미장도 떨어져 나가는 등 보존 상태가 시원치 않았다. 가난한 나라의 한계이려니 싶었다.
황궁 앞마당에 거대한 유칼립투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100년 전 처음으로 호주에서 이 나라로 유칼립투스를 들여올 때 심은 기념수라고 한다. 호주의 코알라가 늘 꾸벅꾸벅 조는 이유가 마약성분이 든 이 나뭇잎을 따먹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필자도 한 잎 따 먹어봤더니 쌉쌀할 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이 나라 산이나 들 어디나 유칼립투스 나무로 가득하다. 이 나무는 집을 짓는 건축자재와 땔감으로 널리 사용되는 등 에티오피아에서는 매우 중요한 산림자원이다.
방문단은 에티오피아국립박물관을 들렀다. 지하 1층에 지상 3층 규모이다. 1층엔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살레시에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왕관에서 안장, 의상은 물론 그가 사용하던 우산까지도 모아두었다. 살레시에 황제는 1934년 이태리가 다시 침략하자 7년간의 전투 끝에 나라를 되찾은 영웅이다.
한국전쟁 때 6000여명의 군대를 파병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국이 이태리에게 수난을 당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겪었던 설움을 생각해 우리나라에 파병을 결심했다고 한다. 교통수단이 열악하던 당시 아프리카에서 동아시아까지 선박으로 6개월간의 긴 항해를 마다하지 않고 파병시킨 고마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1974년 군부 구테타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난 비운의 황제가 되고 말았다.
2층엔 그림과 조각품 등 미술품이 전시돼 있는데, 주로 성서의 이야기와 관련된 성화들이다. 3층은 에티오피아 국민들이 널리 사용하는 전통의상과 장신구, 농기구 등 전통민속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 국립박물관이 유명한 것은 바로 지하전시실에 있는 ‘루시’ 화석 때문. 300만년 전의 화석으로 추정되는 루시는 현재 지구상에서 발견된 인간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세인트메리교회 앞에서 찍은 방문단 기념사진

하지만 이 곳 박물관에 있는 루시는 진품이 아니었다. 투명한 유리상자 속에 안치된 채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루시는 모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방문단은 트리니티교회를 찾았다. 에티오피아정교의 본산으로 과거 많은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지금도 대통령의 신년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는 햇살을 받아 웅장함을 연출했다. 내부 창문은 성서의 이야기를 담은 스탠드글라스를 설치해 성스러움을 강조했으며, 교회 안쪽에는 살레시에 황제의 황후 무덤인 커다란 석관이 놓여있다.
황후 무덤 외에도 트리니티교회 뒤편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영웅들의 무덤이 있다. 교회 전체가 마치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립묘지인 셈이다.
특히 트리니티교회 지하에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122명의 파병용사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방문단 일동은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위패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이번 방문단의 단장인 양남근 교장이 대표로 방명록에 전사자들의 명복을 비는 글을 쓰고 방문단이 돌아가며 서명했다.
역사문화투어를 끝낸 방문단은 마지막으로 커피판매점 2곳을 들렀다. 에티오피아의 특산물은 단연 커피이기 때문에 귀국 선물로 가져가기 위함이다. 이 나라 커피의 질은 세계인이 인정한다. 세계적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도 이 나라 시다모 지역에서 생산한 원두를 사용한다.
우선 예가체프커피 전문점에 들렀다. 예가체프지역에서 생산한 커피는 섬세한 향으로 인해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고급커피로 꼽힌다. 중후한 맛의 시다모를 남성적이라고 한다면 예가체프는 여성적인 커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어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각종 커피를 혼합해 세계시장에 납품하고 있는 토모카커피 본사에 들렀다. 필자의 입에는 신맛이 강한 예가체프보다 이 곳 커피 맛이 더 좋았다. 방문단은 두 곳의 커피전문점에서 다소 과할 정도로 커피를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가 좁아 모두들 짐을 꾸리는데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커피전문점 방문까지 방문단의 공식 일정이 끝났다. 7박9일간의 일정이 순식간에 끝난 느낌이다. 많이 아쉽다.
지금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해외자본의 힘에 기댄 개발이 한창이다. 무슬림들의 낮은 기도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던 도시는 이제 새벽부터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하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쑥쑥 올라가는 고층빌딩 때문에 도시의 얼굴은 매일 매일 달라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경제는 분명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필자가 이 나라에 처음 방문했던 2001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했으나 2015년 기준 국민소득이 1428달러로 무려 15배나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네 마리 사자’로 넣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고질적인 종족 간 갈등이다. 에티오피아는 80여개의 종족이 살고 있는 다종족 국가이다.
과거 살레시에 황제를 축출하고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선 것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종족 간 전쟁이었으며, 사회주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들어선 인민혁명민주전선 역시 종족 간 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종족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언어로 ‘태양에 그을린 얼굴의 땅’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에티오피아. 검게 그을린 얼굴의 국민들은 지금 종족 간 해묵은 갈등을 풀어냄으로써 가난의 굴레를 벗고 과거 영광을 회복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이번 방문단의 모니터링 활동을 위해 월드비전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네모레나 에너사업장 총지배인으로 방문단의 스케줄 관리와 안내를 맡아준 애들류씨와 사업장 식구들, 방문계획을 세우고 방문단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가며 현지 활동을 무사히 진행시키느라 진을 다 뺀 월드비전 광주전남지역본부의 정병원 본부장과 신동석 팀장, 김승열 대리, 그리고 코디역으로 행사진행과 통역을 맡아 준 월드비전 한국본부의 김지영 대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지영 대리는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행사 도중 눈물을 보여 방문단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긴 항공시간과 하루 평균 200㎞에 육박하는 비포장도로 주행, 열악한 숙소생활을 견뎌내며 젊은이들 부럽지 않게 열정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해 준 광주·전남 교육지도자 모든 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