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제72호=박세라 객원 기자) 그의 춤을 보는 것은, 꼭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과 같다. 진양조부터 휘모리까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선율 속에서 춤꾼은 장단과 장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내면의 깊은 한이, 또 가슴을 두드리는 신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전통춤을 사랑하는 춤꾼 강혜림(한국전통춤협회 광주시지부장·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7호 호남산조춤 이수자)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전통을 바로 잇는 춤꾼이다. 한국 전통 춤에는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선조들의 얼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춤 동작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가 전통에 반한 것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전통 한복에 욕심을 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알록달록 색이 고운 한복을 가지고 싶었다. 밤새 울며 부모님을 졸라 한복을 사 입었다. 초록 저고리에 빨간색 치마였다. 그렇게 끌렸던 한복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업’을 얻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본격적으로 춤 공부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처음 접한 것은 현대무용이었다. 한두달 다녔는데 어쩐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한다. 그러다 찾은 곳이 한국무용학원이었다. 그때 첫 스승인 채정희 선생을 만나 살풀이 춤, 호남검무, 남도굿거리춤, 화관무, 장고춤, 산조춤 등을 공부했다.
"그때부터 한국 전통춤에 매료됐죠. 우리나라 춤은 민족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화려하면서 소박하고 정적인 듯하면서 역동적이죠. 우리민족이 순수한 흰색을 좋아하지만 또 화려한 오방색을 좋아하잖아요. 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듯이 잔잔한 평화로운 심성을 지녔으면서도 집단적인 신명을 좋아해서 마을마다 풍물굿을 하고 잔치를 좋아하지요. 우리 춤의 매력은 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따라 음양의 조화를 갖추고 있는 것인 것 같아요."
강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27호, 97호 승무 살풀이춤 이수자 김은희 선생에게 승무 살풀이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7호 호남산조춤 보유자 이길주 선생에게 호남산조춤을 각각 사사받았다.
그는 무엇보다 스승의 몸짓을 고스란히 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스승의 발밑에서 춤을 바로 잇는 것이야 말로 한국 전통춤을 다음 세대에 올곧게 전승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래요. 스승의 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고요. 하지만 우리 민족정신이 깃든 춤사위를 스승으로부터 배워 갈고 닦아 나가는 작업이 과연 단순한 답습일까요. 어쩌면 아주 천천히 ‘나의 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춤을 바르게 잇는다는 것은 우리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 선조의 우수한 예술성을 이어받아 현대에 맞게 되살리고 재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통춤이 근본 없이 변형돼 가는 것을 보는 게 그는 가슴이 아프다. 전통을 활용한 창작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 져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나, 그만큼 전통춤의 내공을 탄탄하게 정립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설명이다. 전통이 있어야만 좋은 창작도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전통춤을 바르게 이어야하는 이유는 바르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계보나 전통성을 무시한 채 작위적으로 창작된 춤을 전통춤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서거나 복색이나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전통춤을 추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엄격함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그러면 대중은 전통예술의 참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고집스럽게 전통예술을 지키고 바르게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 같아요."

제2회 정기공연을 마친 뒤 출연진들과 함께 한 강혜림씨.(맨 왼쪽 두번째)

그가 이끌고 있는 한국전통춤협회 또한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2017년 창립된 한국전통춤협회 광주시지부는 ‘전통춤’ 만을 전문적으로 계승하는 춤꾼들이 뭉친 단체다. 1회 창립공연으로는 ‘전통의 맥을 바르게 잇다’는 뜻을 담은 ‘정연’(正連)을 올렸고, 이어 지난해 제2회 정기공연 ‘화합하여 춤추니 상서롭구나’란 의미의 ‘화기치상’(和氣致祥)을 선보여 광주 전통춤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올해 정기공연 ‘하월지무’(下月知舞:달빛아래 춤을 알다)도 준비됐다. ‘이제 조금 춤을 알 것 같은데…그 마음마저도 아직은 부끄럽다’는 전통춤을 추는 사람들의 고민을 담았다.
"우리 춤꾼들은 전통의 기반을 갈고 닦아 갖춘 후에 재창조 작업을 시작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선조들의 수준 높은 몸짓 예술인 전통춤을 몇 해 배운다고 해서 그 깊이를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많은 시간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춤에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스승을 뛰어넘지는 못해도 그만큼의 세월을 그 춤과 함께 보낸 후, 나의 삶과 정신이 담긴 나의 춤이 만들어진다면 그 춤이 다음 세대의 전통이 되겠지요. 그러니 바르게 잇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예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대로 계승한다는 것은 조금 천천히 나의 춤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그림 그리듯 춤을 춘다. 꼽아 말하자면 여백이 많은 수묵화와 같다. 그의 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그의 남편은 강씨의 춤을 하늘색이라 표현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 있어서다. 그 스스로도 춤으로서 ‘위안’을 건네는 이가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저는 우리전통춤이 매우 철학적이고 내면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명상적인 느낌을 많이 주는데 널리 알려진 외국의 명상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아요. 다만 지금은 형식이나 외향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발전하고 있지만 저는 우리전통춤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움직임과 영적인 부분을 아우르면, 명상적인 춤으로서도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춤이 그저 아름다움을 즐기는 춤을 넘어서서 추는 사람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에게 나이 듦 이란, 한편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내내 젊으면 좋겠지만 삶을 더 살아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있어서다. 생의 희로애락을 몸짓으로 그려내는 전통춤에서는 ‘나이 든다는 것’은 곧 ‘익어간다’는 의미와 같다. 춤꾼의 발짓, 손짓, 그리고 눈짓에는 그가 걸어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그 깊이는 걸어온 삶의 농도와도 같으므로.
"전통춤을 잘 춘다는 것은 생의 깊이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봐요. 내면의 한 그리고 흥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하죠. 전통춤은 인간 삶의 보편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국 춤추는 이의 삶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여전히 제 실력은 부족하지만, 노년을 맞기까지의 시간이 남아있고, 그 시간동안 춤을 추고 있다면 제 삶의 깊이만큼 춤도 익어가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기분이에요. 춤을 춰 온 제 온 생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열심히, 충실하게 춤을 출 작정입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