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제73호=고선주 기자) 광주시 북구 중흥동 그의 화실을 찾아가는 길, 일전에 이 근방에서 명인 한분을 찾아가다가 헤맨 경험이 있어 오늘은 바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출발했다. 그의 화실은 넓은 차도에서 2차선 도로로 접어들어 50m정도 가면 부동산이 있는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적으로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화실에 도착하자 문이 빼꼼 열려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그가 반갑게 맞아줬다.
그의 화실은 정돈이 잘돼 있었다. 그에 따르면 정리를 조금 했다고 한다. 그냥 깨끗하다기보다는 구획 분할이 잘 이뤄져 있어 복잡하지가 않았다. 한쪽에는 각종 도서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캔버스들이 놓여 있었다. 정돈된 그의 화실을 보면서 주인장의 성격의 한 단면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11년째 이곳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펼쳐왔다고 gks다. 꽃의 변주들을 꾸준하게 화폭에서 펼쳐보인 한국화가 장용림씨의 이야기다.
화실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그림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작가의 화실에서는 그림보다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한쪽에 웬만한 독서광보다 많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져 있었고, 그것이 모자라 바닥에 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서모임에 나가며 깊이있는 책읽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봉선동 카페 ‘살롱 드 테오’에서 이뤄지는 독서모임에 3년째 나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독서모임 외에 강연과 음악회, 낭독모임 등이 이뤄진다는 전언이다. 그가 이처럼 독서모임에 열심인 이유를 물었다.
"단순히 사물묘사를 넘어 사고의 폭이 확대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각적 조망을 초월해 사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어요. 학창시절에는 시인이 꿈이었지만 대학 때 전공은 미술이었죠. 대학 때 수묵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꽃을 그리고 싶은데 수묵으로 잘 되지 않았더군요. 미술에 수 만가지 표현법이 있기는 한데…. 글로 쓰고 싶지만 글로 다 못해 그림을 그리듯 수묵에서 다 표현되지 않아 채색으로 옮긴 것이죠."
그는 책을 가까이 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단어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힘의 발현을 언급했다. 앞서 밝혔듯 그는 수묵에서 채색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색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는데, 수묵에서는 막히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채색은 의외로 아날로그적이어서 매력인 것 역시 자신이 채색을 하는 이유로 들었다. 채색은 처음부터 하나 하나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해서 그 과정이 좋았다고 한다. 다만 채색은 바탕 색칠만 최소 일주일 정도 걸리는 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바탕 색칠을 마무리하는 동안 생각을 무르익게 할 수 있는 것을 강점으로 꼽았다.
특히 화면과의 대화 시간을 길게 끌어갈 수 있는 점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꽃이 핀다-사랑이다’

그가 채색 작업을 한지 20년이 넘었다. 이 채색의 과정은 복잡하지만 천천히 과정을 끌고 가는 것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그는 이 채색을 통해 주요 소재로 내세우고 있는 ‘꽃’의 형상화에 주력해왔다. 개인전 6회를 여는 동안 그의 캔버스에는 줄곧 꽃이 자리하고 있었다. 첫 전시 때는 꽃그늘을 다뤘고, 두번째 전시 때는 바람을 다뤘는데 바람이 흔들어줘야 꽃이 핀다는 것을 제시했다. 세번째와 네번째 전시 때는 꽃의 생장과 사멸을 논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꽃의 일생을 다룬 것이다. 다섯번째 전시 때는 꽃과 자신과의 거리를 조망했고, 여섯번째 전시 때는 꽃숨에 대해 화폭에서 펼쳐 보였다.
이처럼 그의 회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꽃이었다. 꽃과 꽃다발, 꽃과 조각보, 보자기로 연결돼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단순한 꽃의 외형을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니라 조망한 것들에의 사유들을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전시를 조금 더 상세하게 들려줬다.
"다섯번째 전시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의 ‘저만치’라는 표현에 주목해 그것을 풀었다고 봐야죠. 어감과 거리가 궁금했어요. 꽃을 바라보는 거리가 ‘저만치’라는 생각이었고, 그 거리가 적절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 타이틀을 ‘저만치 피고 지고’로 했던 것입니다. 또 여섯번째 전시 때는 꽃숨을 탐구했는데 여기서 숨은 숨을 쉬는 것과 멈춤을 말하는 것이죠. 숨을 쉬는 게 결국 지는 것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면 돼요. ‘쉬다’의 여러 의미 중 목쉼도 있는데 그것도 쉬는 것이에요."
그가 전시 때마다의 타이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는 폭넓은 독서의 영향으로 직감됐다. 그는 ‘꽃’ 중심으로 하다가 지금은 ‘달항아리’와 ‘꽃’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화단에서 매화나 달항아리가 많이 그려지는데 이는 가장 자연스런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고, 가장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도 어쩌면 이 본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는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듯하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표현이 다 되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초등학교 때 남과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발견했는데 독서와 사색의 힘이 뒷받침됐다는 전언이다. 요즘 작업 중간중간에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틈틈이 책을 읽기 위해 가장 가까운 장소에 책을 놓아둔다. 다른 사람들은 그림 하나도 버겁다고 하는 데 작가는 책과 그림을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끌고 가는 것으로 읽혀졌다. 그릴 것이 많고, 생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데 서두르지 않는다. 생각을 천천히 숙성시키려 한다. 이렇게 그림을 접근해도 잘 되지 않을 때는 꽃숨처럼 잠깐 쉬는 것을 택한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화폭 속 꽃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궁금했다. 사진을 찍었을까, 현장을 다녀왔을까 말이다. 그의 답은 후자다. 현장을 누빈 것이다. 한때 매화와 동백을 그리려고 거의 현장을 누볐다. 그는 사진으로 찍어 하는 작업을 거짓으로 생각한다. 그가 얼마만큼 현장을 누볐는가는 꽃그림으로 가득한 스케치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꽃을 안보고도 그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그는 다 같은 꽃이더라도 현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꽃을 봐야 하나의 주제로 그릴 수 있다고 귀뜸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어떤 화가로 평가받기를 바라는가를 묻자 ‘자신만의 작업’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죠.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 미술이에요. 젊었을 때는 조급하고, 빨리 주목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별거 아니더군요. 대학 때 들은 이야기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실력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이 실력이라고 했는데 딱 그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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