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제77호=고선주 기자)올 4월호에서 한 차례 봄의 생기를 담은 시집들을 조명 했다.
이번 10월호에는 가을의 문턱에서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시집들을 살펴보았다. 광주전남 시인들의 근래 출간된 시집들은 각박한 창작환경과 독서하지 않는 풍토 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창작열을 불태워온 시인들 의 예술혼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시문학의 침 체를 극복하고 시(詩)의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최근 황 학주·김경윤·이상인·이성목 등 시인들이 잇따라 시집을 선보였다.
이들 시집을 집중 정리, 소개한다. 먼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분주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광주 출생 황학주 시인(시전문계간 ‘발견’ 발행인)이 제11 시집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문학동네 刊) 를 출간했다. 특유의 섬세한 촉수로 그 어떤 주제보다도 ‘사랑’을 기 저로 시의 온도를 구축해온 시인의 이번 시편들은 처음과 끝이 모두 무미건조한 세상살이와 인간성 파괴의 세태 속 ‘사랑’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집은 마냥 그리워하며 살포시 미소만을 띄 울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상실의 아픔이 내재된 사랑까지 를 함유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을 떠올릴 때마다 처음 사랑을 하던 당시의 몸과 정신으로 돌아가 흥분된 미소를 짓게 하면서도 동시 에 아쉬워 눈물짓게 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시편들은 각박 하게 생을 감내하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랑의 속살들 을 툭툭 건드려 일깨우는 셈이다. 작품 ‘당신을 위한 작은 기도’에서 시인은 ‘마음이 뛰면 감고 마음이 멎으면 풀어도 되는 사랑일 때/생각나는 사 람’을 오늘에야 만나 이렇게 고백하는 마음. ‘당신은 내게 너무나 첫사랑을 못한,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문학평론가 이강진씨는 해설을 통해 "무엇보다 그의 시 가 서정성을 온전한 장르적 장치로 활용해낸 성공적인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삶의 허무로부터 몸을 피하 기 위해, 생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숨막힐 듯 죄어오는 세계의 잔인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의 시들은 부단한 몸짓으로 서정성의 피난처를 쌓아올린다" 고 평했다.
이 시집은 ‘약여히 당신을 살아본 적이 없다’, ‘될 수 있으 면 마음이란 구전이어야 해’, ‘삶은 여기서 시 쓰는 조건인 데’, ‘한 송이를 당기는 한 수선화에게’, ‘여행을 빼앗겨 동 백꽃같이 질 때가 있으리라’ 등 5부로 구성,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그만의 독창적 어법으로 기운 작품 64편이 수록됐 다.
이어 전남 해남 출생으로 지난 8월 해남공고 교사를 퇴 직, 33년 동안 종사해온 교직을 떠난 ‘땅끝 시인’ 김경윤(민 족시인 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씨가 네 번째 시집 ‘슬픔의 바닥’(문학들 刊)을 펴냈다.
등단 30년을 맞아 펴낸 이번 시집은 시인에게 각별한 의 미를 갖는다. "스물넷의 나이에 피안의 별이 된 아들(김한 글)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라는 헌사 때문이다.

이 시집에 는 몇 해 전 잘못된 아들로 인한 지울 수 없는 슬픔들이 넘 쳐난다. 시인은 ‘위로받지 못할 슬픔’을 겪었고, 그것이 그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울 음’이라는 알게 된 것이다. 비로소 시인의 나머지 삶은 ‘차 마고도를 기어가는 수행자’(‘슬픔의 바닥’)처럼 나아갈 일이 될 지 모를 일이다. 또 평생 후학들을 길러온 교단을 떠나 자연인으로 출발 하는 기점에 펴낸 시집이어서 더더욱 시적 울림이 크다. 교 직에 종사하는 동안 시인은 군부독재와 광주항쟁을 겪고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교육운동에 투신, 해직교사로 지내 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이번 시집은 그 충격의 소산이자 시인의 새로운 시 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이는 시인의 그 슬픔이 오체투지로 생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구모룡(한국해양대 교수)씨는 해설을 통해 "시인의 삶과 시적 역정은 온전히 슬픔과 고통을 껴안는 자아나 이러한 자아를 내려다 보는 영혼의 표정을 만나게 한다"고 평했다.
‘슬픔의 바닥으로 침몰하는 우울한 자아 대신에 생의 이치를 품는, 영혼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한 듯하다.
황지우 시인은 표사(표4)를 통해 "그의 시집은 어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의 보편적 슬픔에 바쳐진 것 이며 김경윤은 모두를 대신해 울어 주는 자, 대곡자(代哭 者)"라고 했다.
이번 시집의 슬픔이 개인적 아픔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슬픔으로 승화되는 과정에 있음을 주목한 것이다.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59편의 시편이 실렸다.
또 광양중마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교육자와 창 작자의 삶을 병행하고 있는 전남 담양 출생 이상인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천년의시작 刊)를 시작 시인선 300번째권으로 내놓았다.
이번 시집은 몸의 울림인 울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 고, 자기의 실존적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시적 여정으로 읽힌다. 시인은 ‘울음’이라는 현상 자체보다는 대상의 내 부에서 생성되는 ‘울음소리’에 주목한다. 여기서 울음소리 가 갖는 상징성은 삶에 대한 자각이나 운명에 대한 부응의 의미로 확장되면서 깊은 정서적 충일감을 안겨준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보여 주는 청각적 상상력은 우리 의 존재성이 덧없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동시에 우주와 공명해 끝없는 영적 세계로 비상할 수 있음을 함축 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시인은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삶의 덧없음 혹 은 절망을 느끼더라도 인간의 흐느낌과 울음이야말로 아 름다운 한 세상으로의 승화일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주지시킨다.

문학평론가 김경복(경남대 교수)씨는 해설을 통해 "그 의 시편들을 찬찬히 여러 번 읽어보면 어느 새 우리들 몸 안에 여러 소리가 쌓여 울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며 "시편들에서 울음소리는 분명 삶에 대한 자각이거나 운명 에 대한 부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김준태 시인은 표사(표4)를 통해 "이상인의 시는 푸른 댓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맑고 둥글고 고요하다. 그 물방울 속에 담긴 해와 달의 운행 뿐이랴, 우리들이 평생 데리고 사는 어릴 적 고향마을 사람들의 숨결과 노랫소리, 논과 밭에서 익어가는 온갖 곡식들의 설렘과 오방색, 참새 떼들 의 비상, 아침노을이며, 저녁노을이 그립고 고운 무늬로 출렁거린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는 4부로 구성, 63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외에 경북 선산 출생으로 제주대를 졸업, 1996년 ‘자 유문학’으로 등단한 이성목 시인이 네번째 시집 ‘세상에 없는 당신을 기다리다’를 시작연애시선 세번째권으로 발 간했다.
경북과 제주를 거쳐 현재 광주에 머무르고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서정시의 본령이 사랑의 노래라는 점을 웅 변함으로써 사랑의 관계 맺기를 통해 가능해지는 것들을 낯선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나―타자’의 관계를 주목해볼 것 을 권고한다. 인문학적 접근이 아니라 시적 접근을 의미하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시 ‘자두가 익었다’처럼 완결된 삶을 지향 한다. 그 지향점에는 온전한 느낌이 자리하고 있으며 흐트 러지지 않은 일상이 자리하고 있다. 일탈의 시대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삶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자두가 익었다//시다는 말/달다는 말/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말을 혀에 굴리며/얼굴이 벌개지도록/자두를 추 억했다//맛이 들었다는 건/잘 견뎌낸 시간들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것//…중략…/우리도/조금씩 익어가 고 있었을까//그날, 우리는 함께 자두 안으로 들어가/눈부 시게 눈을 감았다.’(‘자두가 익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물상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극 명하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김익균씨는 해설을 통해 "그의 시집은 서정시의 본령이 사랑의 노래라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며 "그 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정시를 읽는 행위 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혹은 우리가 몸 없는 고통 과 신음을 견뎌왔음을 깨닫는다"고 평했다.
이 시집은 ‘몸이 먼저 아픈 것이 사랑이다’, ‘세상이 말 리는 사랑을 내가 하였으니’, ‘당신을 가져야겠다고’, ‘뜨거운, 눈물로 지고 싶다’ 등 4부로 구성, 56편의 작품이 실렸 다. 이들 시인은 지역 출신으로 광주 혹은 타지에 머물며 왕 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가 하면, 타지인 광주로 들어와 소리 소문없이 활동을 펼치는 시인에 이르기까지 일상과 창작이라고 하는 두 축을 견고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 시인들이 이번 시집을 계기로 독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가보다는 그에 앞서 ‘시를 제대로 쓰고 있는 시인들’ 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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