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제83호 =고선주 기자)그는 줄곧 교육계에 종사했다. 1977년 전남 함평 신광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한 뒤 2017년까지 나주 영산포여중 교장으로 퇴임하기까지 40년 동안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재직했다. 동심을 단 한차례도 떠나지 않고, 어린 고사리손들의 선생님으로서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아동문학은 운명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인간성마저 쉬이 무너져내리는 현실 속 어른이 동심을 유지해가며 문학활동을 한다는 게 가당하기나 한 이야기일까 의구심이 들지만 그에게는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동심의 텃밭에서 동 심을 전하는 작가로 사명을 다해온 것이다. 전남 나주 출생 아동문학가 이정석씨(66·아동문학동인회 ‘별밭’ 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그렇게 요란을 떨며 문학 활동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사색하며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교직에 발을 내딛은 이후 몇년 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것과 무관치 않다. 5·18을 목도하면서 그의 동시에 관한 주요 메시지는 역사의식으로 가닥이 추려진다.
"첫 동시집을 펴냈을 때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였습니다. 5·18 뒤여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삼국시대나 삼국유사 설화를 바탕으로 역사 동시를 주로 썼죠. 이미 1980년대 이순신 장군을 다루는 윤삼현씨나 박성만씨 등 역사적 부류의 동시를 집필하는 작가들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일정 부문 역사동시가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최근의 동시 흐름을 꺼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시와 동시의 경계에 혼선 이 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심과 동심이 융합된 시를 많이 쓰려는 데서 빚어진 것 같다는 풀이다. 그래서 요즈음 동시를 위시로 한 아동문학이 가벼우면서 생활에 기댄 것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진중하고 시적인 맛이 융숭한 작품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동시단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다 2009년 교육과정 초등학교 국어 ‘읽기’ 6-1 교과서에 수록, 앞서 언급했듯 ‘어린이’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지만 그는 의외 로 동시단에 폭넓게 각인돼 있다. 제6동시집인 ‘촛불이 파도를 타면’은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 수상도 했다.
하지만 그는 줄곧 역사의식을 버리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시창작 뿐만 아니라 아동문학평론가로 데뷔한 만큼 평론쓰기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아울러 전통적 동시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동시 창작도 지속하고 있다. 먼저 동시집 ‘촛불이 파도를 타면’에 대해 언급했다.
"‘촛불이 파도를 타면’은 청소년시에 가깝습니다. 다른 장르보다 아동문학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요. 그럼에도 1부에서 과감하게 촛불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했죠. 연작시 열편을 집필했던 것도 그 의미들을 되새기기 위한 저만의 방도였죠. 또 2부에서 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편들을 실었어요. 밥이 갖는 생래적인 욕구까지 탐구해보자는 취지였죠."

그는 일상에서 ‘찬밥 신세’나 ‘밥줄이 끊어졌다’라고 표현하듯 실제 ‘찬밥 신세’와 ‘밥줄이 끊어졌대’라는 작품을 쓸 정도로 사회에 대해 귀를 닫아두지 않았다. 물론 몇몇 시인은 동시같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역사의식에 무게를 뒀지만 늘 그는 서정성을 각인하며 활동을 펼쳐왔다. 문학작품이 서정성을 버리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아울러 그는 동시조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
"시에 자유시가 있듯이 정형성(율격)을 가진 시조처럼 동시문학에도 율격없는 자유로운 형식이 있는데 그게 동시이고, 시조의 3장 6구처럼 정형율을 포함한 것을 동시조로 이해하면 됩니다. 가치가 있는 일로 생각해 시도하고 있어요."
그는 동시조가 1990년부터 국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박경용 작가를 대표로 하는 ‘쪽배’ 동인들이 주축이돼 동시조의 부활이나 현대화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 바람이 전 동시문단에 불었지만 수준은 다소 떨어졌다는 것으로 진단했다.
자신의 동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메시지가 분명한 동시로, 시심이 비교적 강렬한 시세계를 추구한다. 되도록이면 3연 이상 벗어나지 않게, 짧게 쓰려고 노력한다. 3연 이상을 벗어나게 되면 동시의 힘이 흐트러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서결 형식의 3장을 선호하는 것 역시 짧 은 시를 추구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동시 창작과 교직을 병행해온 아동문학가다. 그에게 동시와 교육의 상보적 관계가 궁금하다 했더니 동심(童心) 발현에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다.
"애들하고 늘 같이 있다 보니까 동심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죠.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의 물상들을 바라보고 하다보니 생활 속에서 동심이 발휘되더군요."
동시와 시, 아동문학평론에 정식 데뷔해 글쓰기를 해온 그는 평론의 시작을 자신의 동시를 평해보기 위해서였다고 밝힌다. 동시의 가치를 알기 위해 평론 공부를 해 등단한 케이스다. 요즘에 그는 동시보다 평론쓰기가 더 많을 정도라고 전한다. 평론 작업이 규격화하고 정형화하며, 논리화를 하는 과정이어서 경직될 수 있는 데 서정성을 유연하게 지켜가려는 노력 또한 병행한다고 말했다.
"평론에 주력하면 메시지적으로는 더 선명해져요. 그래서 서정성의 파괴를 주의하며 창작에 임합니다. 평론을 하다보니 관련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평론잡지에 여건이 될 때마다 평론을 발표하고 있어요."
그는 근래들어 북한의 정치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동시문학을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 시대로 나눠 접근 중이다. 김일성 시대를 4기로 나눠 접근 중인 가운데 현재 1기와 김정은 시대의 동시에 대해 집필을 마무리 지었다. 김정일 시대의 아동문학 집필에 조만간 착수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작가와 작품을 써나갈 계획인가’라고 묻자 용아 박용 철의 ‘시적 변용(詩的 變容)에 대하여’(1938년 刊) 부분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용아는 ‘열 줄의 좋은 시를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 줄의 좋은 시 도 못 쓰리라. 다만, 하나의 큰 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무런 꽃도 못 가 지리라.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서는, 그보다 작을지라도, 덜 고울지라도 수다히 꽃을 피우며 일생을 지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시와 꽃, 일상에 견준 용아의 구절을 되새기게 했다. ""용아는 문학인들이 자주 꽃을 피워야 한다는 표현을 했었죠. 용아가 한 말처럼 저는 한편의 시를 기다리며 꽃을 피우듯 그런 동시를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주위에서 동시인은 물론 아동문학평론가로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 부응하며 동시를 써나갈 거구요. 노마드족(유목민)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대신, 동시와 아동문학평론을 넘나들며 글쓰기를 지속해갈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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