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제84호=정채경 기자)‘거리 낙서’로 알려진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는 1970년대 미국 뉴욕 브 롱크스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예술의 한 분야다. 브레이크 댄스, 랩과 함께 힙 합 문화의 한 축을 담당, 스프레이와 페인트로 건물 벽과 경기장, 지하철 등에 그려져 사회적으로 도시 문제로 전락하기도 했다. 길거리 낙서에서 현대미술의 범주안에서 자리잡게 된 건 자전적 이야기를 표현한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퇴치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그 림을 그린 키스 해링(Keith Haring)에 의해서다. 현재 미국에선 완전히 자리 잡았고, 유럽에서는 거리 예술(Street Art)로 안착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그 래피티는 춤, 랩과는 다르게 조명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막을 내린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그래피티 아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극중 등장인물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 터 ‘단밤’의 배경 등이 그의 작품으로 원작 웹툰과 감각적인 연출이 어우러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래피티는 광주에 거주 중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이종배 씨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팝핀현준이라는 이름의 가수이자 공연예술가 남현준씨, 그래피티 아티 스트로 활동 중인 부기블랙 나관범씨와 함께 힙합크루 L.O.L로 활동한 게 인연이 돼 그래피티 아티스트 ‘STAZ’라는 이름으로 드라마에 참여하게 됐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아끼고 돌봤으면 해서 그래피티를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드라마의 배경을 작업한 게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태원 클라쓰’ 외에도 KBS 수요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살림남2)에서 공개된 팝핀현준의 집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그래피티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가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군산을 거쳐 현재 광주에 터를 잡고 활동 중인 그는 엠씨 해머(MC Hammer)의 브레이크 댄스에 매료돼 15세부터 춤에 매달렸다. 그 뒤 비보이로 활동, 21세에 레코드사 전속 댄서가 돼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량현량하의 ‘춤이 뭐길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9년에 그래피티 아트를 시작, 2006년에 군산 서해대학 광고디자인과에 진학해 그래피티 아트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으며,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힙합에 빠져있던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 남동부 조지아 주 워너 로빈스시에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그래피티로 표현해 화제를 모으며, 뉴저지와 워싱턴 등에서 그래피티 제안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전북 군산과 전남 담양에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대형 벽화화해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로부터 총 3번에 걸쳐 국민참여기념사업으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세월호 아이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노란 리본을, 광주 충장로에 5·18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벽화를 그렸다.
스프레이를 분사하며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물론, 어두운 곳에 특유의 다정함과 밝은 분위기로 희망을 키워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사회복지법인 일맥원과 군산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에 재능기부 활동을 해왔으며, 광주패밀리랜드 스트리트 아트, 전주 비보이 광장 아트 조성, 한국관광공사 벽화거리 공모 사업, 익산 예술의거리 아트프로젝트 등 굵직한 정 부 사업 등에도 참여한 바 있다.
‘2019한류힙합문화대상’에서 그래피티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광주에서는 충장로 인근 4층 건물 외벽에 존 레논의 얼굴로, 광주문예회관 주차장과 상무소각장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래피티 아트의 본고장인 미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그는 "체육관 내부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전개했다. 진정한 영웅인 독립운동가들의 강한 의지와 희생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라며 "자유로운 미국에서의 활동은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인물을 주요 소재로 삼는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작용했다. 비보이로 활 동할 때 함께 한 후배가 생을 마감하면서 깊은 상처를 받아서다. 후배를 추모하는 벽화 이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로 인해 저와 제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작품에 ‘러브 아워 라이브즈’(Love our lives)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 문이죠. 사람들이 서로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그는 이같은 가치관을 근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일정이 미뤄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국내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 등 해외 무대에서 그래피티 아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