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제82호=여균수 기자) 순천 주암초등학교 담벼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구산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15세기 중반 옥천조씨 조지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주암면소재지인 광천리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주암천이 흐르고 뒤로는 주암호에서 발원한 보성강이 흐른다. 옥천조씨의 옥천은 전북 순창의 별호이다. 요즘은 옥천조씨보다 순창조씨로 더 많이 불리우고 있다.
구산(龜山)의 이름은 거북이 모양의 마을 형상에서 따왔다. 이 곳에 종가를 이루며 대대로 살아왔던 집이 바로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인 조승훈 가옥이다.
조승훈(64)은 이 집안의 19세 종손이다. 그는 순천에서 은행에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한 뒤 종택을 지키고 있다. 조 씨는 주로 서울의 아들 집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제사가 있거나 명절 때면 내려와 집안을 청소하고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이 종택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숙종 임금 때 조성됐다. 많을 때는 15채까지 구성돼 있었는데, 현재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 제실, 아래채, 중문간 등 8채만 남아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안채는 20세기 초기에 지어졌다. ㄱ자형으로 꺽인 누마루 구조이다.
4.2칸 규모여서 아담하다.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올렸다. 기단은 자연석 허튼층으로 처리했다. 허튼층이란 불규칙한 자연석을 흐트려 쌓았다는 말이다.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가공하지 않은)이다. 전체적으로 터가 경사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지를 정리하지 않고 경사면을 활용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립됐다. 전체적으로 자연미를 살리고 있다.
당초 사랑채는 2채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1채만 남아있다. 사랑채를 2채로 지었다는 것은 집안끼리 돈독하고 손님 접대에 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채 뒤쪽으로 제실이 있으며, 이곳에서 조상 제사를 모시고 있다. 솟을대문이 있던 곳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고, 대문 옆으로 마굿간(당나귀간)이 두 칸으로 세워져 있다.
현재 우물은 1935년에 새로 만들었다. 본래 우물은 위에 있었는데, 당나귀가 빠져 죽자 메꿔버리고 아래에 다시 파서 만들었다고 한다. 샘 이름을 구천(龜泉)이라고 붙였다.
곳간채는 옛날에 지하실도 있었다. 상당히 깊고 커서 사다리 타고 내려갔으며, 나락이나 책 같은 자료를 보관했으나 보수 공사하면서 메꿔 없애버렸다. 종택 뒤편 대밭에 야생 녹차가 많아 집안 어른들이 녹차를 만들어 즐겼다고 한다.
이 집에는 후손들에게 내린 교지·영지·전령·고서 등이 여러 점 소장돼 있다. 또 식기류와 교지통 등 생활집기류 200여 점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조승훈 가옥은 조선시대 종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고 하겠다.
마당 한켠에 거대한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밑동 크기가 어른 두 사람이 두 팔을 벌려야 감싸질 정도이고, 밑동에 커다란 구멍이 난 모습을 볼 때 수백 년은 족히 됐을 법하다. 이 집의 역사를 대변하는 랜드마크인 셈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동네사람들이 종택 뒤편 대밭에서 농사에 쓸 대나무를 트랙터 가득 채취하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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