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제86호=고선주 기자) 그는 오랜 공직생활을 거쳤다. 1985년부터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에는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마냥 사진이 좋아 첫 급여를 털어서 카메라를 구입했을 정도로 그는 사진의 매력에 푹 빠져 젊은 한때를 보냈다.
물론 그가 갑자기 사진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관심이 그를 훗날 사진가로 이끌었다. 공직에 있다보니 그가 역임했던 면장 출신 사진가나 공직자를 겸한 사진작가, 비주류 사진가 등 그에게 엄청 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녔다. 한때는 면장 출신 사진가로 화제성만 중시하는 여론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정년 5년여를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신청, 2014년 말 공직을 정리했다. 물론 후에 공직과 연이 더 닿아 담양군청 별정직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비서실장 직분을 소화하며 현재 그는 고향인 전남 담양 대덕면 금산길 213(시목리)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총 1300여평 부지에 카페 갤러리와 작업실, 안집, 그리고 300평에 달하는 잔디밭과 정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덕면 소재지를 가다 미암박물관 입구를 지나쳐 왼쪽 마을길로 접어들면 그의 갤러리를 찾아갈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 시골마을을 지나 산길로 올라챘다. 한참 진행하다 다시 왼쪽 길로 접어드니 그의 갤러리 건물 ‘달빛여행’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 갤러리
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무 한적한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올해 사진 입문 35년을 맞이한 라규채 사진가. 즐거워서 선택한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그를 지난 5월13일 오후 갤러리에서 만나 요즘 작업과 근황, 사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가 사진에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1976년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간다. 당시 담임이었던 신영우 선생께서 사진동아리를 했는데,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그 모습이 이상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생각이 ‘커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공직생활 첫 부임지가 전북 완주군청이었다. 첫 월급을 받아 카메라를 구입했다. 예전에는 할부라는 게 있어 그렇게 구입한 뒤 사진을 찍으면서 독학으로 사진공부에 돌입했다. 그때 애지중지했던 카메라는 지금도 보존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각 시절마다 유행했던 카메라가 가지런이 정리돼 선보이고 있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도서들에도 관심이 가지만, 그의 35년 세월이 녹아있을 사진기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어쩔 방도가 없었다.
물론 독학으로 한 사진가의 길은 늘 주류가 아니라는 공격이나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쁜 공직생활을 하면서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원래 행정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은 행정학 대신 사진학을 선택해 석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열의를 발휘했다. 또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려대사이버대학 문화예술대학 3학년에 편입해 문화예술에 대한 공부를 마저 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이론 공부와 현장 출사 등으로 20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개인전을 열네차례나 열었을 정도로 작가로서 소임을 다했다. 그의 작품은 크게 3기로 나눠 접근할 수 있다. 제1기는 1985년 입문 때부터 2003년까지이고, 제2기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이며, 제3기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로 나눌 수 있다.

제1기 때는 주로 야생화를 카메라 앵글에 담았으며, 제2기 때는 대나무와 바다를, 제3기 때는 추상적인 대나무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그가 현재 천착하고 있는 대나무는 그의 대표적 시리즈인 ‘공’(비움) 연작에 한층 더 농밀한 사진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대나무로부터 질긴 생명력과 비움, 올곧은 지조 등을 추출해내 접근했다. 이 공 시리즈의 출발은 그가 공직에 몸 담고 있을 무렵 군에서 면으로 내려가면서 비움을 자각했다. 더 나아가 몸이라고 하는 육신의 비움을 위해 생것과 날것으로만 식사를 하는 생채식을 2년 동안 감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 비움은 절대적 가치로 인식됐고, 카메라 앵글 안에서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이 비움 공부를 위해 스님들의 관련 도서들까지 챙겨봤고, 논문도 ‘공’ 시리즈로 작성했다
이런 그가 독학으로 사진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의 성품이 한몫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궁금하던 것을 누군가에게 묻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해 터득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학을 다룬 책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독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뭔가를 물어서 해결하는 성격이 아니예요. 오로지 관련된 책을 읽고 실습하면서 하나 하나 깨쳐나가고 터득하는 식이죠. 사진 이론에 관한 책들만 해도 리어카 한 가득은 될 겁니다. 그리고 필름은 몇 리어카분의 양을 소진했어요. 그로인해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저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 거죠."
이런 공력 덕분에 카메라나 사진과 관련된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사진의 표현 영역은 한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현장에 충실해야 하는 장르가 사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사진이 건강을 도모하는 데도 꽤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잊지 않고 들려줬다.
"글이나 시, 음악은 (아이템이) 착상이 되면 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사진은 반드시 필드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사진으로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장르보다 강력하게 기록할 수 있구요. 과학과 예술이 함께 가는데 사진 역시 마찬가지죠. 디지털화되면서 더 무궁무진해졌어요. 작가의 한계만 있지, 표현은 한계가 없어졌죠. 이게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요."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얼리즘 사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언급했다. 사진에 입문해 처음에는 리얼리즘에 충실한 사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다. 예술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매체를 통해 표출하는 것인데 사진활동을 펼치다보면 리얼리즘적 접근이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사진은 이해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이론과 담론, 철학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들을 뒤로 하고 추상사진으로 돌아선데는 눈이 갖는 본래적 한계로 읽혀졌다. 눈은 수많은 광선 중 단 하나의 빛만 본다는 것이다.
"저는 간혹 눈에 보이는 게 정말 다일까를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본질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죠.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본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광선 중 가시광선 하나 밖에 못본다는 거예요. 구분못하는 게 대다수인 것이 우리의 눈이죠. 이런 생각 끝에 제 추상이 출발하게 된 겁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임한 사진공부 덕에 대학에 출강해 후학을 양성한 바 있고, 미국 뉴욕 진출까지 이뤄냈다. 아쉽게도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뉴욕 전시가 연기됐지만 올 7월 뉴욕 전시 일정이 잡혀져 있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는 때를 기약한다. 그는 그간 전시 외에 사진집 6권을 펴냈을 정도로 사진의 열정에 대해 변함이 없다.
이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사진과 삶에 대해 묻자 물상들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물을 볼 때 무심코 보지 않아요. 굉장히 디테일하게 보죠. 눈이 카메라 앵글처럼 됐다고 봅니다. 사진 구도나 색감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작동된다고 생각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