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제88호=고선주 기자)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1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 나무’ 연작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무에 등을 달아놓은 나무가 신기하고 오묘하기도 해 한참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나무에 등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 빛이었다는 알고서 이 작가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 전과 현재의 그는 수준이 완전 달라진 듯한 느낌이다. (간간이 그의 전시 소식을 듣긴 했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번의 심층 취재를 못해 아쉬움이 커 가던 차 그와의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의 작업실은 백운동에 자리하고 있다. 일이 일을 물고 들어와 그나마 20여분 늦게 그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자신의 작품들이 걸려져 갤러리라고 해도 무방한 공간에 앉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주인공은 1998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올해 22년차에 접어든 사진작가 이정록씨다.
이 작가의 작품은 단순히 카메라 앵글로 피사체를 담는 데 그치는, 단순 작업이 아니다. 그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 깊이가 없으면 해낼 수가 없다. 그의 작업은 사진에 조형과 설치, 현장 퍼포먼스가 융합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처음부터 사진 전공을 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뒤 대학원 때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대학 동아리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는 등 이미 학부 때 그의 관심은 사진으로 기울어 있었다. 때마침 집안 어르신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운명과 바꿀 수 없는 숙명을 언급했다. 숙명과 연관지어 그의 이름인 바를 정, 기록할 록을 풀며 "네가 네 길을 찾아간다"면서 이름에 맞는 해석을 제시해 큰 힘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 어르신이 풀이한 이름을 직역하면 기록하는 자이고, 의역하면 진리를 드러내는 자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
여기다 예민한 성격 역시 그에게 사진 작업에 몰입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의 영역은 예민한 것이고, 사진의 영역은 발견하는 것이라는 단정을 하며 자신과 사진이 잘 맞는다고 했다. 그는 이를 예민과 발견이 융합된 것으로 단언했다.
사진 작가로서 과정들을 차곡 차곡 밟으며 현재에 이른 그에게도 보통 사진 작업 패턴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사진 작업 초창기인 1990년대 초·중반에 그는 시대적인 조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흑백 풍경에 집중한 것이다.

산티아고

그러다 그의 사진 인생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네소타주 로체스터공과대학대학원에서 순수사진으로 석사학위를 마쳤다. 로체스터는 코닥의 본사가 있던 곳으로, 사진을 공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학교였다는 후문이다. 유학시절 사진을 하고 싶었으나 학생들이 모두 예술을 하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사진은 발견하고 재현하는 것인데 개념을 표현하는 등 파인아트를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 때는 주변의 영향이 컸습니다. 유학 시절 모두 예술가들이었던 셈이죠. 파인아트에 대한 공부를 접했고 깊이있게 접근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콘셉트로 개념을 만들고 이미지 형식을 추출해내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식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그의 작품은 그냥 보이는 외피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가닿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쓴다. 그것이 복잡함의 단계이더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운무를 잡아내기 위해 신새벽에 고창으로 이동하면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플래시를 장대에 매달아 칠흑같은 밤을 지나 기다림과 싸운다. 이를 수회 거듭했을 정도다. 그를 돕는 조수가 쓰러져나갈 만큼 강행군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깨치고 깨달을 때까지, 그리고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때까지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고창은 그가 젊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아끼는 장소다.
이같은 열정은 그의 사진의 깊이를 더한 첩경이었다. 그냥 보이는 세계였다면 그의 작업이 이처럼 복잡하지 않았을 터다. 여기서 복잡함은 깊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졌다. 작품세계가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턱대고 쉽게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구사하는 세계는 근원성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세계가 흔히 놓여 있지만 근원적 세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제 사진이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림으로 이런 세계를 그렸다면 판타지가 됐겠죠. 하지만 사진으로 구현한다면 이것은 리얼리티를 근본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서 힘이 생긴다고 보네요."
앞서 언급했듯 ‘생명 나무’ 연작에서도 봤지만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닌 셈이다. 무언가의 메시지를 반드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날이라고 해도 색감이 모두 달라 그는 그 색감을 앵글에 담아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음양 에너지가 뒤섞이는 새벽까지 연결해 찍곤 한다. 20여초에서 1분 정도 장노출을 시켜 원하는 이미지에 다가가는 것이다.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인내를 가지고 임한다. 카메라를 천으로 덮었다가 천을 걷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플래시는 장대에 매달려 빛을 하나 하나 터트린다. 나무에는 서치라이트를 쏴 준다고 한다. 그러면 나무가 하얗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컷을 위해 짧게는 2시간을, 길게는 7∼8시간을 기다린다. 한 컷을 위해 하루를 통째로 사용한다. ‘신화적 풍경’ 시리즈부터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풍경에 설치를 하고 연출하는 것 모두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 비로소 재현에서 표현으로 넘어간 것이다. 회화로 치면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간 셈이다.
신화적 풍경과 관련해 경관과의 차이를 잊지 않았다.

Tree of Life

"서양에서 랜드스페이스(LandSpace)가 경관입니다. 인간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과학적 바라보기가 경관인 것이죠. 우리가 고창 청보리밭 관련 사업을 풍경 사업이 아닌, 경관 사업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경관이 아니라 풍경을 추구한다는 이야기예요. 자연과 내면이 만나는 심상적인 것, 순간적이고 찰나적이죠. 풍경을 보면 내면의 심상이미지가 떠오르죠."
1998년까지 한국 사진계의 영향을 받아 흑백을 재현하는데 주력했다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파인아트를 공부하면서 조형적 실험을 시도해 작가만의 세계를 찾아갔다.
아울러 그는 신화적 풍경 시리즈를 하러 작업을 다니던 중 겪었던 특별 체험을 들려줬다.
"제가 자주 방문하는 장소가 있어요. 호수와 갯벌 등을 가는데 10년 넘게 가던 고창에 나무 한 그루로부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됐죠. 감나무였는데 나무 끝에서 에너지가 품어져나오는 것을 봤어요. 작가가 되기 전부터 나무로부터 신비스런 느낌을 받곤 했지만 여러 소재들 중 저는 나무가 너무 신비로웠어요."
그는 현실보다 피안의 세계, 물질보다는 정신세계, 역사보다는 신화세계를 중시하는데 모두 나무가 등장하고 그것을 숭배했다는 설명이다. 모든 신화에서 나무를 숭배했다고 하니 그게 신기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사고를 전환한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받은 나무를 현상해보면 그냥 말라비틀어진 나무인 것을 확인한 뒤 그것을 사진으로 찍을 것이 아니라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숭배의 느낌을 살려나가는 데 주력했다. 열어서 보여주는 개시체험도 빠뜨리지 않고 언급했다.
그의 작품에서 핵심 이미지의 하나로 보이는 운무 연출 과정도 스모그 머신에서 연막기를 거쳐 다시 스모그 머신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재는 담양의 한 공간에서 스모그 머신으로 작업을 진행해 그간 어려운 작업을 해소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과 아이슬란드 등 세계 각지를 넘나들며 전시와 작업활동을 펼쳐온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작가상에 대해 들려주면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존재 내면을 깊숙히 들어가 무엇인가 보고 충실하게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 싶죠. 제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깊이있게, 멀리까지 가보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해 갈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