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남을 클래식 발레 선사…‘무향’ 자존심 세울 것"

내년 상반기부터 매월 두 차례 ‘상설 발레’ 운영
12월 첫 정기공연 ‘호두까기 인형’으로 관객 만나
단원 역랑 강화…"시민 사랑받는 예술단 발돋움"

박세라 기자
2017년 11월 14일(화) 16:54
가장 사랑받은 발레리나이자, 존경받는 발레마스터 최태지가 광주로 왔다. 12년 동안 한국 발레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 수장으로 활약했던 그가 단장 자리를 내려놓은 지 4년 만이다. 그간 내로라하는 예술단 수장 자리를 한사코 마다하던 최태지의 선택은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이었다.
최근 그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은 아마도, "왜 광주입니까?"일 것이다. 딱히 꼽을 만 한 광주와의 연도 없는데다, 누구도 예상 못 한 행보였기 때문.
지난달 -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시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역시나 궁금했던 ‘광주행’ 연유에 대해 묻자, 단출한 답을 내놓는다. 바로 단원들의 추천을 받은 ‘청빙제’ 때문이라는 것.
"저를 추천한 것은 발레단의 단원들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위에서부터의 ‘임명’이 아니라, 단원들이 최태지를 필요로 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어요. 특히 전국 유일의 공립발레단인 광주시립발레단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도 들었습니다."

그의 광주행이 시립발레단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평소 ‘롤 모델’로 삼았던 이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단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발레단에는 활기가 넘친다. 늘씬한 여자 무용수들은 또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남자 무용수들은 ‘금연’을 선언하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언제라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잡으리라는 단원들의 진심이 읽힌다.이에 최 예술감독도 "우리 애들 잘 키우겠다"고 응답한다. 그는 단원이 살아있어야, 발레단이 산다고 믿는 이다. 우선 그는 단원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부터 소극장 상설발레를 매달 두 차례 올린다. 규모는 작더라도, 자주 ‘판’을 벌일 작정이다. 이유는 단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최 예술감독은 이를 ‘보석을 캐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무용수로서 발레 인생은 짧습니다.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가 전성기이죠. 때문에 단원들에게 무대에서 주역으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누구라도 ‘빛’을 보아야 해요. 우리 발레단의 보석들을 캐내어 더 좋은 무용수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사실 발레단이 선보이는 대작은 1년에 많아야 두 차례다. 40여명의 발레단 단원들 중 주역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그래서 작은 작품으로라도 많은 단원들에게 주역의 역할을 맛보게 할 생각이다.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박수 소리에서 춤 출 이유를 찾거든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기억의 힘으로 다음날 또 다시 연습실에 서는 거죠. 가능성이 보인다면 끌어주고 싶어요. 작은 무대이지만 주역으로서 춤을 추면 무용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거든요."
발레단 내 역량을 끌어올리는 일은,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픈 그의 욕심과도 맞닿아 있다. 최초로 ‘해설이 있는 발레’, ‘찾아가는 발레’를 선보여 발레대중화에 앞장섰던 그의 행보가 광주에서 다시 이어지는 셈이다.
실제 최 예술감독은 1990년 초창기에 공연장 앞 분수대 앞에서 발레 작품을 올린 적이 있다. 소극장 공연도 잘 하지 않던 때, 마당에서 판을 벌였으니 뒷말도 나왔다. ‘발레를 슈퍼마켓에서 파는 격’이라는 지적이었다.
"말하자면 수준 높은 문화를 끌어내렸다는 소리죠. 하지만 전 작품의 질은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자부해요. 탁 트인 곳에서 발레를 선보이니,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들 어린아이들,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전 세대가 공연을 즐길 수 있었죠."

최 예술감독은 "관객이 없는 무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예술 장르에 있어 든든한 뿌리는 ‘팬심’이란 소리다.
"발레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공연장에서 벗어나 ‘찾아가는’ 이유 또한 어떤 어려움 때문에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죠. 오히려 이러한 찾아가는 공연이 예술 본연의 역할에 충실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러주는 곳 어디라도 가 20분이라도 공연하고 올 각오가 돼 있습니다."
단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과, 시민들에게 박수 받는 예술단으로 나아가는 일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좋은 작품을 자주 선보이게 되면, 자연스레 시립발레단 ‘팬’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게 최 예술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광주 발레 보러 KTX 타고 내려오고, 매 공연이 매진 됐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새 수장을 맞은 시립발레단의 첫 작품은 12월 13~15일 ‘호두까기 인형’이다. 애초 11월에 공연을 올릴 생각이었으나, 조급하게 하느니 ‘제대로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호두까기 인형’은 1987년부터 매해 시민들에게 선보여 온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이번 작품은 스토리는 끌고 가되, 최태지 예술감독만의 색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올릴 계획이다.
"발레단의 재산은 레퍼토리입니다. 각 발레단 마다 ‘클래식이냐 창작이냐’하는 색이 다 달라요. 앞으로 1~2년 동안은 클래식 발레를 선보이는 데 집중할 생각이에요. ‘지젤’,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등 후에 어느 예술가가 와서 다시 작품을 올리더라도, 광주시립발레단 대표 레퍼토리 화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만들겠습니다."
발레단의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이 발레단 식구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외부 초청 무용수들로 무대를 채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간 발레단은 과도한 ‘스타 마케팅’으로 지역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최 예술감독은 ‘우리 애들(단원) 키워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다.
"훌륭한 안무·연출가를 초청할 수는 있겠지만,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들만큼은 단원들을 올릴 생각이에요. 외부에서 유명한 무용수, 외국 유수의 춤꾼들을 데려와 올리면, 반짝 주목 받을 수는 있겠지만 발레단의 미래를 위해서는 좋지 않죠. 우리 발레단원들과 최고 수준의 클래식 발레를 선보이겠습니다."
창작 발레 작품으로는 시립예술단과의 협업무대를 꿈꾸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각 예술단 수장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데, 협업작품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해준다. 교류하면서 좋은 창작품으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창작 발레는 한국적 색이 묻어나는 작품이었으면 합니다. 외국 무용수들이 물어봐요. 한국은 국악기가 많은데, 왜 교향악을 쓰냐고요. 각 예술단들과 협업하면 광주의 색을 담으면서도 한국적인 창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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