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선진국형 맞춤형 복지 실현 ‘에너지바우처’ 시행 3년의 명암 에너지 취약계층의 현주소 송대웅기자 |
2017년 11월 26일(일) 1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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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겨울, 고흥에서 60대 할머니와 여섯 살 난 손자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바로 ‘촛불’이었다.
6개월 동안 밀린 전기요금 15만원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자 촛불을 켜고 자다 화마에 휩싸인 것이다.
전 국민은 충격과 비통에 잠겼고 이 사건은 일명 ‘고흥 촛불 화재’로 불리며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정책의 허점을 여실히 들춰냈다. 곧장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결과 도출은 더뎠다.
방법부터 예산까지 걸림돌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론회나 세미나가 꾸준히 열렸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가운에서도 공감대는 있었다. 적어도 ‘저소득층이 돈이 없어 추위에 떨며 고통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3년이 지난 2015년 8월11일, 정부는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10차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에너지바우처 도입’을 확정했다. 어느덧 에너지바우처가 시행된 지 3년째가 됐다. 에너지바우처의 도입은 선진국형 맞춤형 복지의 실현으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신청절차는 간단해지고, 소액이지만 지원금도 늘었다. 특히 수요자 맞춤형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지원대상 문제, 실효성 등 아직도 다수의 문제점이 상존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에너지복지’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봤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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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팍팍한데…" 연탄값 인상에 에너지 빈곤층 한숨
절기상 입동이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 날씨로 접어들면서 난방시설 가동을 시작한 가구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서민들의 주요 난방수단인 연탄 가격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에너지 빈곤층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찾은 광주 대표적인 ‘달동네’로 불리는 북구 우산동 거리는 꽁꽁 얼어붙은 날씨를 반영하듯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화려한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길게 뻗은 비탈길을 오르고 성인 한 명이 들어서기도 힘든 골목길을 따라가자 박정자(77) 할머니의 보금자리인 판잣집이 나타났다.
집 입구에서부터 매케한 연탄가스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내부 연탄창고에서는 박 할머니가 연탄 아궁이에서 모두 타버린 연탄을 새 것으로 교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40년째 살고 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아들, 두 딸과 함께 살았지만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뒤 두 딸과 살다가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남게 됐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부양 능력을 갖춘 딸들과 사위가 있어서다. 때문에 할머니는 일주일에 3번 두암초등학교로 청소 근로를 나가 얻는 월급(27만원),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24만원), 매달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각 10만원) 등 모두 71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그나마도 병원비와 생활비, 각종 세금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쥔 돈은 10만원 남짓하다.
현재 박 할머니의 연탄창고 한 켠에는 40여장의 연탄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난해 동 주민센터로부터 지급 받은 450장(연탄쿠폰 23만5000원)의 연탄을 겨우내 하루 평균 2장만 떼며 아껴 쓰고 남은 것이다.
올해도 480여장을 지원받을 예정이지만 할머니는 무턱대고 연탄을 마음대로 뗄 수 없는 처지다.
11월부터 연탄보일러 가동을 시작한 박 할머니는 이듬해 4월까지 연탄보일러를 가동한다. 따라서 지난해와 같이 연탄을 사용하더라도 겨울을 나는 데는 360장 가량의 연탄이 소요된다.
겨울을 보내면 120장 가량의 연탄이 남을 것으로 보이지만 집이 노후 된 탓에 여름에도 곰팡이와 습기를 잡는데 연탄을 떼야 해 이마저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다행히 매년 복지재단 및 종교시설 등지에서 보내주는 연탄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탄값 인상을 추진하면서 현재 할머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연탄값이 오르면 이를 후원하려는 손길도 자연스레 줄 수 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연탄 공장도 가격을 기존 개당 373.5원에서 446.75원으로 19.6% 인상했다. 올해도 작년 수준으로 인상되면 공장도가는 536원 정도가 될 것으로 관련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광주에는 모두 2065세대(동구 476세대·서구 266세대·남구 469세대·북구 414세대·광산구 440세대)가 연탄을 사용하며 힘든 겨울을 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곧 ‘연탄이 생명줄’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박 할머니는 "집이 노후화 되고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요즘 보급화 된 도시가스 설치는 엄두도 낼 수 없다"며 "연탄이 곧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이지만 가격이 또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에너지바우처 월 평균 2만원…"실효성 갖춰야"
현재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관련 복지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노후주택에 단열이나 창호공사 등을 통해 에너지효율을 개선, 비용을 절감하는 ‘에너지효율 개선사업’과 가스나 등유, 연탄 등 난방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는 ‘에너지바우처’가 그것이다.
‘에너지개선 효율사업’은 한국에너지재단이 주로 맡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진행된다.
이는 단순히 난방비만 제공하던 과거 에너지복지 시스템만으로는 저소득층의 연료비를 원천적으로 절감 할 수 없다는데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공감대가 형성돼 탄생했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전체 소득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주거효율 개선사업으로 낭비되는 소득지출을 줄여 전체적인 소득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광주시가 시행 중인 ‘저소득층 및 복지시설 조명교체’ 사업 역시 에너지개선 효율사업 중 하나다.
올해 시는 18억5400만원의 예산을 편성, 저소득층 930가구와 120개소의 복지시설의 LED 조명을 무상으로 교체했다.
또 산자부와 광주시가 총사업비 1708억원을 투입, 에너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서민층 가스시설 개선사업’도 에너지개선 효율사업의 일환이다.
지난 2011년 3153세대, 2012년 2762세대, 2013년 502세대, 2014년 993세대, 2015년 1825세대, 2016년 784세대가 관련 사업으로 혜택을 봤고, 올해는 이달 말까지 269세대를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시는 가스로 인한 각종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나아가 서민층 생활안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 취약계층의 최대 관심사는 시행 3년째를 맞이한 ‘에너지바우처’로 모아진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사업인 ‘에너지바우처’는 최초 시행 당시 97.2%의 신청률을 기록했다.
광주에서도 대상 가구 1만8209세대 중 1만7386가구가 신청해 95.5%의 신청률을 보였다.
일반적인 복지사업의 신청률이 70%대에 머무는 것을 고려했을 때,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임에도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빈곤층이 에너지 복지에 목말라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처럼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에너지바우처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최초 논의가 이뤄졌지만 재원문제 등에 부딪혀 번번히 도입이 유예됐다.
이후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고흥 촛불 화재’를 계기로 에너지복지의 신기원을 연 ‘에너지바우처’가 탄생하게 됐다.
소득이 없거나 아주 적은 가구 가운데 에너지 사용에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전기, 가스, 등유 등 난방에너지원 일부를 구매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전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공단을 시행기관으로 지정, 본격 작업에 착수해 2015년 11월 지원신청을 받고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정금액의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으로 첫 사업이 시작했다.
특히 등유, 연탄만 지원하던 기존 복지사업과 달리 사회적 흐름을 반영해 전기, 도시가스, LPG 등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의료 급여을 받는 1인 이상 가구이면서 노인(만 65세 이상)과 영·유아(만 6세 미만),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 장애인(1~6급)이 지원 대상이다.
이들은 카드 형태의 전자 바우처를 이용, 난방에너지원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짧은 사용기간 및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금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부딪혔다.
당초 정부는 지원 금액을 1인 가구의 경우 8만1000원, 2인 가구 10만 2000원, 3인 이상 가구는 11만 4000원으로 책정했다.
이 금액은 그 해 단 1회 제공되는 금액으로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내에 모두 소진해야 한다.
즉, 12월부터 3월까지 4개월로 나눌 경우 1인 가구 기준 월 평균 2만원으로 겨울을 나야한다.
동절기 원룸 등지에서 홀로 도시가스를 이용할 경우 한 달에 최소 5만원 이상의 난방비가 드는 것을 고려하면 지원금은 턱없이 낮은 셈이다.
이 같은 논란에 부딪히면서 결국 정부는 올해부터 사용 기간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7개월로 늘리고 지원금도 1인 가구의 경우 8만4000원, 2인 가구 10만8000원, 3인 가구 이상은 12만1000원으로 소폭 증액했다.
하지만 적은 금액에 사용 기간만 길게 늘면서 되레 ‘에너지 취약계층을 더 옥죄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상자 선정 역시 관할 읍·면·동을 통해 모집을 하는 것이 아닌 신청제로 운영하고 있어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에너지시민연대 관계자는 "겨울은 가난하고 쓸쓸한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혹독한 계절이다"며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각종 에너지복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사업 추진으로 난방을 못하고 보조기구인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취약계층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대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