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책의 ‘힘’ 믿는 세상 되길"

[신문화탐색] 동네책방 현실 조명한 ‘타인의 책 지음책방’ 김정국 대표

부부가 20여년 모은 문학·시집 등 6000권 빼곡
연 주제 지정도서만 판매…올해 주제는 ‘전라도’
"동네·책방 상생할 수 있는 동명동 책마을 꿈 꿔"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1월 08일(화) 18:11
(2019년 1월호·제68호) 딱 한 권의 책만 판매하는, 조금 이상한 책방이 있다. 책방 안 서고에는 문학·인문학·사회과학·만화책 등 6000여권의 도서가 빼곡한데,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종류이다. 주인장이 고르고, 읽어보고 또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엄선된 책이다. ‘함께 읽고 싶다’는 공유의 욕구가 이는 도서들만이 ‘이달의 책 판매대’에 올라갈 영광을 맞는다.
동명동 농장다리 인근에 자리한 ‘타인의 책 지음책방’(이하 지음책방)은 책을 지독히도 사랑한 한 부부가 차려놓은 공간이다. ‘차려놓다’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그저 도서를 사고 파는 거래의 장이 아니다. 누구나 들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교류의 장이 펼쳐지기도 하고, 책 세미나와 북 콘서트도 여러 번 열렸다. 지음책방에서는 ‘책’을 매개로 늘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이곳의 별칭이 ‘재미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12월13일 지음책방을 찾았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책 내음이 방문객을 맞는다. 책들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에서 몇몇은 맛있는 한끼 식사를 하고, 또 몇몇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적당한 소음, 잔잔한 배경음악, 맞춤한 온도와 조도까지. 책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책방 안을 휘이 둘러보고 있자, 책방지기인 김정국 대표가 자연스럽게 동행하면서 이곳저곳을 설명해준다. 당연히 책 소개가 먼저다.
"이곳엔 6000여권의 책이 있어요. 1층 공간에는 만화책이나 시집, 화집, 잡지 등이 주예요. 비교적 집중력을 덜 요하는 분야의 도서들이죠. 소설이나 전문서적들은 아래층 서고에 있습니다. 1991년 무렵부터 사서 읽었던 책들이에요."
그는 책벌레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 다락에 올라가서 몇 시간이고 책과 함께 놀았다. 책을 사랑했지만 책방 주인장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근무하던 연구직 공무원이었는데,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일을 그만 두고 광주로 내려오게 됐다. 주말부부 생활도 청산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더니 답이 쉬웠어요. 처음엔 작은도서관을 열까 했는데, 더 자유롭게 책과 놀 수 있는 공간은 책방이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2017년 7월 문을 열었어요. 오픈 때부터 식사와 차 그리고 술 한 잔도 할 수 있는 책방으로 꾸며놓았죠."
지음책방은 해마다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책만 선정해 판매한다. 주인장들이 추천하는 책만 판매하는 일종의 큐레이션 책방인 셈이다. 2018년에는 문학계에 화두가 됐던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판매했다. ‘나는 오늘도 브래지어를 안했다’(백장미 엮음), ‘지금, 바로, 여기!’(황경민 지음),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최승범 지음) 등이 이달의 판매도서로 꼽혀 독자들을 만났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시작해 전문서적까지 달에 1권씩 총 12권을 소개할 생각이었어요. 책을 모두 읽은 후 연말에는 관련 전문가, 독자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열고 싶었죠. 1년 장기 프로젝트가 되니까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2019년부터는 주제와 관련한 책들을 병렬식으로 선보일 작정이에요."
올해 지음책방의 주제는 ‘전라도’다. 전라도 역사·문화와 관련한 것들은 물론 전라도 출신 작가들의 작품, 남도의 색을 꾸준히 가지고 가고 있는 출판사들의 책들을 조명하는 큐레이팅을 계획 중이다.
사실 이곳은 책방이지만, 도서 판매 수익으로는 기본적인 운영조차 어렵다. 골목의 동네 책방들이 간단한 식사나 마실거리를 팔거나 출판업을 겸하는 이유다. 실제 광주에 있는 17곳의 작은 책방지기들은 대부분 ‘투잡’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책이 좋아서 책방을 열었는데, 이리 저리 바쁜 탓에 정작 본인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책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네 책방은 책을 사고 파는 장소를 넘어섰어요. 책을 매개로 한 사랑방 역할을 짊어지게 됐죠. 책을 읽는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독서를 한다는 것 그 내면에는 타인 그리고 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있습니다. 즉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동네 책방은 이 같은 요구들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책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하죠."
지음책방의 ‘지음’은 이 같은 공동체적 성격이 짙게 묻어있다. ‘책 지음’, ‘시 지음’, ‘밥 지음’, ‘함께 지음’이란 네 가지 의미를 아우른다. 책을, 시를, 밥을 함께 짓는다는 것, 곧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책방육아’였어요. 아이 엄마들이 이곳에 모여 책을 읽고 정보를 나누죠. 아이들은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책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자를 해독하는 것을 넘어, 책은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는지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 책을 일종의 장난감으로 보는 것이죠. 그래야만 책 읽는 아이로 커나갈 수 있다고 믿거든요."
김 대표가 책으로, 책을 통해, 책과 함께 벌이고픈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책방육아부터 문학작품 속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요리프로그램도 기획했다. 지난 한 해 이어온 심야책방의 날에는 자정까지 문을 열고 독서토론회·보드게임·타로점보기·음악회·네트워크 파티 등을 열어 독자들을 맞았다.
이제 김 대표의 꿈은 책방 울타리를 넘어섰다. 그는 1970년대 그 모습을 간직한 골목을 ‘책 마을’로 꾸미고 싶다. 그가 꿈꾸는 책 마을의 풍경은 이렇다.
"어느 집 대문 앞에 한 권 책이 놓이는 겁니다. 그 집 아들이 보던 교과서일 수도 있고, 이제는 절판된귀한 책일 수도 있죠. 저마다 집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책들이 가가호호 전시되는 거예요. 또 작가들과 독자들을 위한 북 스테이를 진행할 수도 있고, 도서제작의 전 과정을 살펴보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되면 좋겠죠. 동명동에 자리한 공방들과 연계해서 직접 책을 디자인해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제 그의 꿈은 한 발짝 현실화돼 가고 있다. 동구에서 책 마을 조성사업에 관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는 것. 지리적 여건은 물론 옛 정취가 남아있는 마을풍경, 보석 같은 작은 공방 등 이곳이 품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관건은 장기 사업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이죠. 이벤트성이나 축제 형식으로 펼쳐 단기간성과에만 급급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과 책방 그리고 각 공방들이 어떻게 상생해 나갈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지음책방에서 이루고픈 그의 꿈은 무엇일까 물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해져 온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어요. 전자책의 비중은 높아질 것이고 종이책은 늘 종말의 위협에 서 있겠죠. 다만 책의 힘, 인문학적 소양이 갖는 힘을 믿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책은 인간을 규정하는 기본적 매개체입니다. 책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지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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