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일상 내려놓고 만난 이국적 풍경의 항구 ‘여행자 마음’ 움직이다

[문득 여행] 제주 도두항
도두봉 정상서 제주국제공항·한라산 ‘조망 포인트’
어선 정박된 항구 볼거리 풍성…장안사·벽화 등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1월 27일(일) 14:58
(2019년 1월호·제68호) 제주의 햇빛은 따스하다. 겨울 초입이어도 이상하게 따스하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두고 떠나온 자의 여유 때문일까 싶다. 번잡한 일상이 얼마나 마음을 위축시키는가를 익히 잘 알고 있다. 우리네 삶은 하루에도 몇번이고 위축되는 일 투성이다. 자극 안받은 척, 충격 안받은 척 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더더욱 제주에서 맞는 아침의 평온은 그 깊이가 아스라하다. 행운이었을까. 제주에 올 일이 많았다. 방문할 때마다 정작 제주 일대는 그저 도심이려니해서 지나쳐 버렸던 것이 패착이었다. 도두봉도 그렇다. 제주국제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10년 전 한번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제주공항만 유심히 내려다봤다. 낮게 속도를 죽인 비행기들이 꽤 근사해 보였다. 그 근사한 비행기를 보느라고 그 반대와 측면 방향에 있던 바다와 항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일정을 접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정말 여행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 하나 컨닝하지 못하던 때로 생각된다.
이번에는 미세먼지로 인해 제주공항과 멀리 한라산에 대한 완벽한 조망은 어려웠다. 흐릿하지만 이곳이 왜 유명한 ‘조망 포인트’인가를 알 수 있었다. 헉헉 숨이 차 올랐지만 비경을 조망해보자는 심산으로 올랐던 산행이다. 아담했지만 지친 여행자에게는 이마저 쉽지 않았다. 나름 사투 끝에 오른 도두봉 정상치고는 한쪽 조망을 접어야 해 아쉬웠다. 그나마 정상에서 만난 하트데크, 그리고 바다와 도두 항구가 눈에 들어와 위안을 삼았다.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평화로웠다. 가끔 바다는 작은 어선들에 주름진 등살을 내밀 뿐 아득했다. 도두봉은 제주의 머리 쪽에 자리해 붙여진 이름이다. 도두봉 일대를 ‘섬머리 도두봉공원’이라고 부르는 근거다. 이 일대에는 도두봉 전망대와 등대, 도두항, 장안사, 올레길 17코스 및 보시의 길(참나를 찾아 떠나는 길) 코스, 마을벽화 등이 자리해 가벼운 걸음으로 둘러보면 제격이다.
도두봉 정상에서 고기잡이배들과 요트가 한 눈에 들어 왔다. 항구로 가까이 다가가자 어느 풍경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붉은 등대와 흰 등대가 바다 길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자리해 있었다. 따로 따로 등대를 둘러봐야 해서 지루할 정도로 이동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도두항교를 건너 붉은 등대로 이동할 때 좀체 보기 드문 풍경과 마주했다.
바라만 봐도 낭만적인 요트 강하식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그곳에 머물며 눈에,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았다. 등대로 이동하는 방파제 중간 중간 낚시꾼들도 만났다. 뭘 낚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여유가 새삼 부러웠다.
붉은 등대에 이르자 키큰 등대의 그늘이 필자를 먼저 맞는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젊은 연인이 손을 꼬옥 잡고 먼바다를 응시했다. 아직은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들만의 푸른 바다를 꿈꾸고 있는 듯 보였다.
언제부턴가 좋은 곳에 가면 카메라에 담는 것이 주된 일 혹은 습관이 됐다.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담고 하는 식이다. 사진에 있어 빛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햇빛이 내리쬐는 쪽에서 도두항을 전망하기 위해 흰 등대 쪽으로 이동했다.
다시 도두항교를 건너 흰 등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오징어잡이 배의 행렬은 밝기가 센 등을 켜지 않았는데도 둥근 등 때문에 장관이 연출됐다. 밤이면 바다의 별 같은 불빛을 선사했던 바로 그 등이다. 이동하는 중에도 한참 동안이나 뒤돌아 봐야만 했다.
도두항에는 내륙의 여느 항포구처럼 신성한 곳이 있다.
‘소득모실’이라는 곳이 그곳이다. 바다를 관장하는 신성한 곳으로, 어민들이 출항해 만선과 무사귀환을 비는 바다신을 모시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을 둘러보고 요트가 정박해 있는 곳에 닿았다. 물론 가는 길에 요트를 손질하는 인파를 만날 수 있어 도두항이 더욱 운치있게 다가왔다.
조금 역광이었다. 눈으로 담은 정경은 그야말로 제주 최고로 손꼽을만했다. 방파제에 올라 빛을 받아내면서 카메라를 기울여 아래 쪽으로 향하자 다행히도 요트와 도두항구 정경이 모두 렌즈에 잡혔다. 사진을 찍으면서 확인하고 다시 셔터를 눌러댔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거듭했다.
먼저 핸드폰으로 찍어 사진 상태를 확인했다. 이국적 한컷이 찍혔다. 어쩌면 ‘인생샷’ 혹은 ‘역대급’ 사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핸드폰을 집어넣고 소형카메라(일명 똑닥이)로 담았다. 그리고 나서 EOS 카메라로 담았다. 그날 사진찍기는 거기까지였다. 수많은 풍경 앞에서 셔터를 누른 것 중 가장 기민하게 누른 곳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무리 사진이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의 눈만큼은 아니다.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그것을 감성으로 버무려 기억에 저장까지 할 수 있지 않는가.
아무튼 도두항은 한국 어디쯤이 아니라 해외 아주 근사한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필자 역시 해외에 온 듯한 착각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명소들을 찾아갔지만 이보다 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온 곳은 단연코 없었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해가 정중앙에 걸쳐진다. 해처럼 삶이 정중앙에 걸쳐져 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럴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사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밤 늦은 시간에 도두봉 자락 아래 아모렉스 리조트에 짐을 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은 더 주어지지 않았다. 일출과 일몰 풍경은 다음으로 기약했다.
김녕미로공원으로 이동하는 여정 중 맛집으로 소문난 구좌읍 동복로 소재 해녀촌을 만난 것은 여행의 덤이었다.
그곳에서 회국수와 한치물회, 회덮밥, 전복죽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가족 모두 폭풍 흡입했다는 고백을 전한다. 제주 바다같은 웅숭깊은 맛이었다. 가격대비 꽤 만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두항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여행은 보는 재미, 먹는 재미일 것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느냐가 관건이다. 그것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양념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비싼 여행지이든, 널리 소문난 여행지이든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행지로서 결격사유라는 믿음이다. 이번 제주 도두항의 여정은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여행공간이었다. 입맛 까다로운 딸내미가 또 가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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