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세상만물의 美 수놓다.

[남도명인] 송현경 수향한국전통자수연구소 소장
스무 살 때 입문해 50년 한국전통 자수 ‘한 길’
금강8경·골베개 등 작품 활동·후학양성 힘 쏟아
"자수는 생의 전부"…여든 살 기념 개인전 계획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4월 24일(수) 17:59
(2019년 3월호·제70호=박세라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 맨 손에서도 향긋한 향이 날 수 있다면 바로 그의 손일 것이다. 열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여서 그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총총 수놓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아름다움을 오직 촘촘한 실로 꿰어냈다. 새봄 분홍빛의 꽃눈도, 하얀 설원의 절경도 한 땀 한 땀의 바느질로 그려냈으니 과연 향기 나는 손, 수향(手香)이다. 마치 봄날처럼 따뜻했던 2월의 어느 날 한국전통자수 명장 송현경(수향한국전통자수연구소 대표)씨를 만났다.
그의 작업실인 수향한국전통자수연구소로 갔다. 띵동~ 벨을 누르자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송 명장이 반겨준다. 그 뒤로는 단박에 ‘우와’하고 감탄사를 자아내는 그의 작품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더욱 입이 떡 벌어진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꿰어낸 색색이 실들이 8폭 병풍으로도 서 있고, 오방색의 골베개 위에도 수놓아졌다. 이를 가만 가만 쓸어보면서, 온통 작품에 쏟아냈을 송 명장의 시간들을 가늠해 본다.
송 명장의 기억 속에 첫 자수는 베갯잇을 짰던 일이다. 그의 친정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전통 복식을 하셨던 분이다. 송 명장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골베개를 배웠다. 대대로 물려받은 솜씨로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싱자수와 십자수 등 실과 바늘로 꿰는 것들은 대부분 섭렵했던 그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가정 선생님들이 저를 욕심내하셨어요. 자수면 자수, 바느질이면 바느질. 손으로 하는 일들은 꼼꼼하게 또 야무지게 잘 해냈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당시 YWCA 총무였던 고아라 선생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전문 자수 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됐어요."
그렇게 3년간 기계 자수, 미싱자수, 손자수를 가르쳤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특히 전통 손자수의 매력에 깊게 매료됐다. 기계로 수를 놓는 것은 대량 생산을 할 수는 있었지만, 손 자수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없었다. 한 사람의 시간과 정성이 오롯이 배어있는 손자수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내 작품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일었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전통 자수에 빠져 살았어요. 50년이 넘는 세월이죠. 바늘을 잡고 있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에요. 몸과 마음을 다해서 수를 놓아야 하죠. 잡념이란 게 없어야 해요. 필요치 않은 상념이 끼어들면 자수에도 반드시 표가 납니다. 한번 앉으면 밤샘 하는 게 일쑤였죠. 오늘의 목표치를 설정해 놓으면, 그것을 끝내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으니까요."
지금에야 의자에 앉아 작업하지만, 이전엔 양반다리로 앉아 수를 놓은 탓에 송 명장은 고관절이 좋지 않다.
어디 이뿐일까. 집중한 탓에 눈이 피로한 것은 당연하고, 목도 어깨도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가 주는 기쁨은 아픔도 잊게 만들었다. 바늘이 꿰고 지나간 자리가 색색이 실로 채워질 때, 그것이 또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때 송 명장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워낙에 조용하고 차분해요. 지금껏 어디 가서 된소리 한 마디 못하는 성격이죠. 그저 내가 할 일에만 사명감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보람이 없었다면 ‘아이고 그만두자’ 했겠죠. 보통의 정신력으로는 힘든 게 전통 자수이니까요."
송 명장이 전통규방공예품 전수교육을 하고 있다.

그가 한 평생 자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힘도 크다. 자수를 놓기에 앞서 도안을 그려야 하는데, 한국화에 능했던 송 명장의 남편과 미술을 공부한 딸이 도맡아주었다. 기존 인쇄 그림이 아닌, 가족의 밑그림 위에 수를 놓는 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 어떤 응원보다 더 든든했고, 울컥하는 감동도 있었다. 한 수를 놓아도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그다.
대작인 ‘금강 8경’의 밑그림은 그의 부군 작품이다.
명주 천에 그려진 ‘금강 8경’에 송 명장이 수를 놓았다.
하늘, 땅, 나무, 흙 등 대자연의 절경이 8폭 병풍에 담겼다. 이를 완성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송 명장의 자식 같은 작품들 중 ‘금강 8경’에 가장 애정이 가는 이유다.
앉아서 수만 놓기에도 바쁜 나날이었지만, 송 명장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50세가 다 되어 성균관대 전통복식학과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해 공부를 했다.
그것도 양에 차지 않아서, 졸업 후 한국전통건축공예학교에서 불화 장르를 공부했다. 전통 자수와 불화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송 명장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다.
"불화에도 전통자수기법이 사용됩니다. 저는 이를 성화에 접목시켜봤어요. 실을 꼬아 14첩 성화를 완성시켰고, 베네딕토 교황님 계실 때 봉헌을 했죠. 서양에서는 전통 자수가 생소한 분야인데다, 자수에 새겨진 저의 정성을 높게 평가해주셨어요. 1년간 성화 자수에 몰두했는데 그 소식을 전해 들어 정말 기뻤죠."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제자를 길러내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수향한국전통자수연구소에는 늘 수강생들로 북적인다. 그는 광주에서 자수의 맥을 잇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 또한 그의 몫이라 여겨왔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저만의 철학이 있어요. 자수 기법을 완전히 마스터하게 하는 것이죠. 기법을 익히지 않은 채 작품을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요. 그럴싸하게 수가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든 티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기본부터 충실하게 닦아놓
아야만 소작을 하고, 대작까지 이어졌을 때 빈틈없이 내공 깊은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주저앉고 걸어온 길 위에는 다디단 열매도 영글었다.
‘2009 제34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골베개로 문화재청장상을 받았고, 같은 해 자수공예부문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자수로 새겨 온 그에게 주어진 빛나는 훈장들이다.
생의 대부분을 수놓는 것에 할애해 왔지만 여전히 송명장은 분주하다.
"팔순이 되는 해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지금껏 자수인생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죠.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해, 바위, 소나무, 거북, 학 등 십장생을 수로 놓을 생각이에요. 지금 수틀은 잡아놓은 상태지요. 여기다가 한지에 사군자를 새겨 넣은 8폭 짜리 작품도 준비 중입니다. 5년 계획을 잡고 차근차근 해나가야죠."
마지막으로 전통자수란 송명장의 삶에 무엇이냐고 물었다. 주저 없는 대답이 나온다.
"자수는 제 생의 전부예요. 내 삶에 축복처럼 주어진 바늘과 실에는 50년의 사명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수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만 아름다운 수를 놓을 수 있다고 믿어왔어요. 정말로 제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온 정성을 쏟아 수를 놓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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