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인증샷’ 남기며 눈이 바쁘게 돌아갔던 곳, 풍경에 압도돼 한동안 그 일대를 떠날 수 없었다 [문득 여행] 대구 청라언덕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4월 28일(일) 1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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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제71호=고선주 기자)광주가 기독교 전파지를 품고 있듯 대구도 기독교 전파공간이 별도로 보존되고 있다. 광주 양림동 같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다. 대구 청라언덕이 그곳이다.
기독교가 첫 발을 내딛는 주요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청라언덕은 대구 기독교 출발 본산이기도 하지만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구 3·1운동의 발상지여서 역사의 자취가 서려 있다.
청라언덕은 인구 250만을 자랑하는 대구의 기독교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할 것이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그 행간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돌아볼 일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도 볼거리가 작지 않은 공간임은 틀림없다.
그만큼 역사적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일 터다. 이 청라언덕을 답사하기 위해 달구벌 대구를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방문한 김에 숙소 가까이에 있는 청라언덕(대구골목투어 5코스 중 2코스)을 둘러본 것은 행운이었다. 대구는 지난 해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들렀었다. 그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대구과학관 등을 훑은 바 있다. 대구는 그 이전에 경상도의 생경한 한 도시에 불과했다. 몇년 새 대구에 완전 반했다고나 할까. 멀게만 느껴졌지만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곳이 대구다. 낯선 도시에 가면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번 방문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생경한 느낌을 지워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했다.
대구 근대로의 한 구간인 청라언덕에 들어서자 첫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공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때로는 직감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압도한다는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청라언덕이 꼭 그런 셈이다. 그냥 명칭만 알았지, 이곳이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 농도는 낮지만 미세먼지가 낀 초봄 날이 풀린 듯, 풀리지 않은 듯 헷갈리는 날씨다. 가방을 메고 외투를 한 손으로 들고 이동했다. 대구는 지하철 3개 노선이 개통돼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반월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뒤 한 정거장을 이동하면 그곳이 청라언덕이다. 지금은 신남역(척탑병원)으로, 9번 출구로 나가 청라언덕을 향했다. 중간 중간에 물어 찾아가는 길이었다. 청라언덕은 엘디스리젠트 호텔과 맞붙어 있었다. 엘디스리젠트 호텔에 짐을 풀고 청라언덕을 올랐다. 반대쪽 계단으로 오르면 3·1만세길(90계단)을 밟고 올라야 한다. 필자는 그곳으로 내려가 계산성당으로 이동했다.
‘대구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린다는 청라언덕은 필자에게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로 다가왔다. 이곳에는 문화재로 보존 중인 서양식 가옥인 선교사 스윗즈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4호), 챔니스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5호), 블레어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6호) 등 세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의료·선교·교육역사박물관으로 활용 중이었다. 또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으로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네개동의 교회당으로 출발한 제일교회도 자리하고 있다. 호텔 쪽에서 언덕을 오른 방문객은 누구나 그 끝자락에 소재한 교회 예배당 건축물을 접하는 순간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그 웅장함에 압도돼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야 했다.
그리고 청라언덕을 한 눈에 조망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덕 옆 동산아파트로 이동했다. 17층으로 올라 편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청라언덕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현대화된 도심 속 아담한 공원으로 이국적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흔하디 흔한 풍경과는 다른 결을 이루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3·1 만세운동길과 전통문화체험관, 계산성당(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 대성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항일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의 역사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민족독립운동가 서상돈의 고택으로 이어지는 1.64km의 길은 대구의 근대역사와 문화를 압축해놓은 공간 같았다. 대구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유익한 도심답사에 적격인 구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곳에는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성인을 기념하는 공간인 천주교 성지 관덕정 순교기념관, 그리고 70여년 동안 그리스 복음전파에 앞장서는 한편 건축물이 눈에 뛰는 대구 서현교회, 그리고 도심포교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는 원만사 등도 청라언덕의 종교적 외연으로 충분했다.
계산성당은 영남권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으로, 박정희와 육영수가 이곳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결혼식을 이곳에서 올린데는 결혼식 장소가 없어 성당을 부득이하게 결혼식장으로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계산오거리 매일신문사 옆에 소재한 계산성당은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건립됐다. 원래 한옥이던 성당이 1901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고딕식으로 건립됐다고 전해진다. 프와넬 신부는 명동성당을 건축하고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12사도와 성당 제대 뒷편에 위치한 성인상, 그리고 성당 입구에 있는 장미창은 초창기 스테인드 글라스이고, 한국 순교자들과 4대 복음사는 추가된 스테인드 글라스다. 대리석으로 된 마루바닥과 동판으로 된 함석지붕 등 볼거리가 넘쳐났다.
특히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개신교 예배당인 제일교회와 천주교 교당인 계산성당이 자리잡아 대구 그리스도교 역사의 출발지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밤에 야경이 궁금해 그 일대를 돌아보았다. 계산성당 첨탑 사이로 제일교회 첨탑이 한 풍경 속에 오버랩됐다. 압권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필자는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그 야경 풍경에 압도돼 한참동안 계산성당 일대를 떠날 수 없었다.
이외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하는 ‘동무생각’(박태준 작곡·이은상 작사) 기념비 및 동산의료원 100주년 기념 종탑,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공동묘지인 은혜정원 등도 이곳에 있었다.
100주년 기념 종탑 앞에는 다듬잇돌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 또 어머니의 어머니…. 어려운 시대를 소리없이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들의 다듬잇돌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들려오는 듯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다듬잇돌 소리야 말로 우리네 삶의 살아있는 가락이 아닐까 싶었다. 삶이 묻어나는 가락 같은 것 말이다. 밟고 건너기도 미안스러워졌다. 모처럼 눈이 바쁘게 돌아갔던 청라언덕은 인증샷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오면 인증샷 부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독교가 첫 발을 내딛는 주요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청라언덕은 대구 기독교 출발 본산이기도 하지만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구 3·1운동의 발상지여서 역사의 자취가 서려 있다.
청라언덕은 인구 250만을 자랑하는 대구의 기독교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할 것이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그 행간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돌아볼 일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도 볼거리가 작지 않은 공간임은 틀림없다.
그만큼 역사적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일 터다. 이 청라언덕을 답사하기 위해 달구벌 대구를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방문한 김에 숙소 가까이에 있는 청라언덕(대구골목투어 5코스 중 2코스)을 둘러본 것은 행운이었다. 대구는 지난 해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들렀었다. 그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대구과학관 등을 훑은 바 있다. 대구는 그 이전에 경상도의 생경한 한 도시에 불과했다. 몇년 새 대구에 완전 반했다고나 할까. 멀게만 느껴졌지만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곳이 대구다. 낯선 도시에 가면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번 방문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생경한 느낌을 지워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했다.
대구 근대로의 한 구간인 청라언덕에 들어서자 첫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공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때로는 직감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압도한다는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청라언덕이 꼭 그런 셈이다. 그냥 명칭만 알았지, 이곳이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 농도는 낮지만 미세먼지가 낀 초봄 날이 풀린 듯, 풀리지 않은 듯 헷갈리는 날씨다. 가방을 메고 외투를 한 손으로 들고 이동했다. 대구는 지하철 3개 노선이 개통돼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반월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뒤 한 정거장을 이동하면 그곳이 청라언덕이다. 지금은 신남역(척탑병원)으로, 9번 출구로 나가 청라언덕을 향했다. 중간 중간에 물어 찾아가는 길이었다. 청라언덕은 엘디스리젠트 호텔과 맞붙어 있었다. 엘디스리젠트 호텔에 짐을 풀고 청라언덕을 올랐다. 반대쪽 계단으로 오르면 3·1만세길(90계단)을 밟고 올라야 한다. 필자는 그곳으로 내려가 계산성당으로 이동했다.
‘대구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린다는 청라언덕은 필자에게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로 다가왔다. 이곳에는 문화재로 보존 중인 서양식 가옥인 선교사 스윗즈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4호), 챔니스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5호), 블레어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6호) 등 세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의료·선교·교육역사박물관으로 활용 중이었다. 또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으로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네개동의 교회당으로 출발한 제일교회도 자리하고 있다. 호텔 쪽에서 언덕을 오른 방문객은 누구나 그 끝자락에 소재한 교회 예배당 건축물을 접하는 순간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그 웅장함에 압도돼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야 했다.
그리고 청라언덕을 한 눈에 조망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덕 옆 동산아파트로 이동했다. 17층으로 올라 편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청라언덕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현대화된 도심 속 아담한 공원으로 이국적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흔하디 흔한 풍경과는 다른 결을 이루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3·1 만세운동길과 전통문화체험관, 계산성당(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 대성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항일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의 역사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민족독립운동가 서상돈의 고택으로 이어지는 1.64km의 길은 대구의 근대역사와 문화를 압축해놓은 공간 같았다. 대구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유익한 도심답사에 적격인 구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곳에는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성인을 기념하는 공간인 천주교 성지 관덕정 순교기념관, 그리고 70여년 동안 그리스 복음전파에 앞장서는 한편 건축물이 눈에 뛰는 대구 서현교회, 그리고 도심포교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는 원만사 등도 청라언덕의 종교적 외연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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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은 영남권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으로, 박정희와 육영수가 이곳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결혼식을 이곳에서 올린데는 결혼식 장소가 없어 성당을 부득이하게 결혼식장으로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계산오거리 매일신문사 옆에 소재한 계산성당은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건립됐다. 원래 한옥이던 성당이 1901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고딕식으로 건립됐다고 전해진다. 프와넬 신부는 명동성당을 건축하고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12사도와 성당 제대 뒷편에 위치한 성인상, 그리고 성당 입구에 있는 장미창은 초창기 스테인드 글라스이고, 한국 순교자들과 4대 복음사는 추가된 스테인드 글라스다. 대리석으로 된 마루바닥과 동판으로 된 함석지붕 등 볼거리가 넘쳐났다.
특히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개신교 예배당인 제일교회와 천주교 교당인 계산성당이 자리잡아 대구 그리스도교 역사의 출발지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밤에 야경이 궁금해 그 일대를 돌아보았다. 계산성당 첨탑 사이로 제일교회 첨탑이 한 풍경 속에 오버랩됐다. 압권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필자는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그 야경 풍경에 압도돼 한참동안 계산성당 일대를 떠날 수 없었다.
이외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하는 ‘동무생각’(박태준 작곡·이은상 작사) 기념비 및 동산의료원 100주년 기념 종탑,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공동묘지인 은혜정원 등도 이곳에 있었다.
100주년 기념 종탑 앞에는 다듬잇돌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 또 어머니의 어머니…. 어려운 시대를 소리없이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들의 다듬잇돌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들려오는 듯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다듬잇돌 소리야 말로 우리네 삶의 살아있는 가락이 아닐까 싶었다. 삶이 묻어나는 가락 같은 것 말이다. 밟고 건너기도 미안스러워졌다. 모처럼 눈이 바쁘게 돌아갔던 청라언덕은 인증샷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오면 인증샷 부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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