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의 힘 강해 행복 에너지 전하고파 [화제의 인물] 포크가수서 영어학원장 변신 이미랑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4월 28일(일) 17:44 |
|
(2019년 4월호·제71호=박세라 객원기자) 그는 남도의 아침을 깨우는 사람이었다. 이른 새벽, 골목을 누비는 쓰레기 수거차 스피커에서 곱디고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남도학숙에서는 일명 ‘기상송’으로 그의 노래를 틀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빛고을 하늘아래 말없이 서서/어머니 사랑으로 다가오는 산/봄바람 일렁이면 꽃구름 잔치/벌 나비 춤을 추는 맑고 고운산/원효사 풍경소리 맑게 퍼지면/메마른 가슴마다 시냇물 소리/아리랑 아라리요 무등에 살자/내 사랑 무등 보듬고 풀잎처럼 살자
1990년대 초, 광주MBC ‘무등산을 사랑하자’ 캠페인 송으로 불렸던 ‘무등아리랑’이란 곡이다. 광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봤을 목소리. 포크 가수이자, YB비상영어학원 원장인 이미랑씨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지난 3월11일 그를 만나러 학원을 찾았다. 이씨가 활동하고 있는 ‘오번줄밴드’의 첫 음반 소식을 알릴 때 인터뷰차 한번 왔던 곳이라 익숙했다. ‘선생님~’하고 부르니 청아한 목소리로 ‘어머, 어서 오세요’ 하고 반겨준다. 언제고 또 들어도 좋을 음색이다.
흔히 아름다운 목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하는데, 그를 보면 꼭 맞는 말 같다. 구태여 예쁜 소리를 내려 애쓰지 않아도 그는 듣기에 참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마이크’와 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내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합창단의 에이스로도 활약했다. 어린이 노래자랑 ‘누가 누가 잘하나’ 지역 결선에서 대상을 탄 일도 있었다.
"학창시절을 되뇌어 보면, 늘 마이크랑 함께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든지, 학교 행사에서 진행을 보든지, 시낭송을 하든지.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익숙하고도, 재미난 일이었어요."
이씨가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선 때는 대학교 때다. 조선대학교 캠퍼스 송 가요제에 나가 ‘작은요정’(이건한 작사·작곡)이란 곡으로 입상을 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광주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 프로그램에서 각 대학 입상자들을 프로그램으로 초대한 것이다.
라디오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때, 그의 가슴을 더욱 뛰게 했던 것은 별밤 연출자 김승재 PD에게 들었
던 말이다.
"노래잘한다는 말보다, ‘너 참 목소리가 좋다. 우리 별밤가족으로 들어올래?’ 이러시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았죠. 전파에 제 목소리를 실어낸다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러다 그해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꿈에 그리던 별밤 가족이 됐죠."
이씨를 눈여겨보던 음악계 선배들은 그를 ‘꼬두메’로 이끌었다. 한보리, 오영묵, 배창희, 기현수 등 광주에서 활동하던 이들과 함께하면서 공연은 물론 음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가수 이미랑이란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1년 무등산 캠페인 송을 비롯해 광주전남의 여러 광고 음악들을 녹음했다. 그의 목소리가 TV에서나 라디오에서 또 여러 CM송으로도 퍼지자 팬들도 여럿 생겼다. 별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할 때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한테 그렇게 팬레터가 왔다. 팍팍한 군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활력소가 돼 주었던 셈이다.
"분명 초면인데도 입을 떼면, 깜짝 놀라면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제가 ‘무등아리랑’을 부른 사람인지 모르고, 남도학숙의 ‘기상송’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들을 때면 꼭 악마의 목소리로 들리고, 밥을 먹을 때 들으면 천사의 목소리로 들렸다고요. 그게 바로 저예요, 라고 밝히니 정말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작곡자들은 그의 목소리에 곡을 붙이고 싶어 했고, 노래를 부르던 선배들은 이씨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했다. 맑고 고운 그의 음색은 듣기에 편안했고, 묵직한 남성 음역대와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제 목소리가 쓸모 있었던 모양이에요. 1990년부터 5년간 충장로 ‘라보엠’이란 레스토랑에서 한보리·오영묵·이미랑 트리오로 공연을 했어요.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꾸준히 활동을 했는데, 서울로 가서 활동하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의 중심은 어쨌든 서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린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광주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앞에서 뒤에서 마음으로 이끌어줬던 선배들이 있었던 덕이기도 하죠. 광주는 제 음악의 발판이자, 엄마 품 같은 그런 곳이에요."
그는 분주하게 살았다. 무대에서 노래했고, 도종환 시인 시낭송음반 ‘흔들리며 피는 꽃’, 오번줄밴드 ‘익어가는 색깔’ 등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3년간은 광주가톨릭평화방송의 ‘행복한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팬들을 만났다. DJ로 마이크 앞에 앉을 때 그는 참 행복했다고 기억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용기를 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것이다. 음악 활동과 더불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천직’이라 표현할 만큼 기쁘고 보람되는 일이다.
"더 어렸을 때는 음악과 교육을 따로 두고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모두 연결돼 있음을 느낍니다. 내 음악 안에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을 보면서 또 음악을 꿈꾸게 되더라고요. 음악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모두 소중한 제 업입니다."
봄이 왔으니, 더 바삐 움직일 시간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요양원·병원·학교 등 찾아가는 음악회는 계속된다. ‘오번줄밴드’로 무대에 서면서 그가 가장 애정을 쏟는 일이다.
"흔히들 공연을 보면서 힐링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노래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면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특히 작년 요양병원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한 공연이었는데, 제가 ‘동백아가씨’, ‘찔레꽃’ 등 옛 노래를 부르니까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기억이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겁니다. 음악의 힘은 진짜 강한 것 같아요."
그가 앞으로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이씨는 ‘행복’이란 키워드로 설명한다.
"예전에는 산소 같은 목소리, 비타민 같은 목소리로 인식되길 바랐다면, 지금은 그저 제 목소리가 행복을 전해줬으면 해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공연을 보는 것 그 시간이 행복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 행복의 에너지가 저로부터, 관객에게 또 관객으로부터 저에게 연결될 때, 더 행복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빛고을 하늘아래 말없이 서서/어머니 사랑으로 다가오는 산/봄바람 일렁이면 꽃구름 잔치/벌 나비 춤을 추는 맑고 고운산/원효사 풍경소리 맑게 퍼지면/메마른 가슴마다 시냇물 소리/아리랑 아라리요 무등에 살자/내 사랑 무등 보듬고 풀잎처럼 살자
1990년대 초, 광주MBC ‘무등산을 사랑하자’ 캠페인 송으로 불렸던 ‘무등아리랑’이란 곡이다. 광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봤을 목소리. 포크 가수이자, YB비상영어학원 원장인 이미랑씨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지난 3월11일 그를 만나러 학원을 찾았다. 이씨가 활동하고 있는 ‘오번줄밴드’의 첫 음반 소식을 알릴 때 인터뷰차 한번 왔던 곳이라 익숙했다. ‘선생님~’하고 부르니 청아한 목소리로 ‘어머, 어서 오세요’ 하고 반겨준다. 언제고 또 들어도 좋을 음색이다.
흔히 아름다운 목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하는데, 그를 보면 꼭 맞는 말 같다. 구태여 예쁜 소리를 내려 애쓰지 않아도 그는 듣기에 참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마이크’와 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내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합창단의 에이스로도 활약했다. 어린이 노래자랑 ‘누가 누가 잘하나’ 지역 결선에서 대상을 탄 일도 있었다.
"학창시절을 되뇌어 보면, 늘 마이크랑 함께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든지, 학교 행사에서 진행을 보든지, 시낭송을 하든지.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익숙하고도, 재미난 일이었어요."
이씨가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선 때는 대학교 때다. 조선대학교 캠퍼스 송 가요제에 나가 ‘작은요정’(이건한 작사·작곡)이란 곡으로 입상을 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광주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 프로그램에서 각 대학 입상자들을 프로그램으로 초대한 것이다.
라디오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때, 그의 가슴을 더욱 뛰게 했던 것은 별밤 연출자 김승재 PD에게 들었
던 말이다.
"노래잘한다는 말보다, ‘너 참 목소리가 좋다. 우리 별밤가족으로 들어올래?’ 이러시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았죠. 전파에 제 목소리를 실어낸다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러다 그해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꿈에 그리던 별밤 가족이 됐죠."
이씨를 눈여겨보던 음악계 선배들은 그를 ‘꼬두메’로 이끌었다. 한보리, 오영묵, 배창희, 기현수 등 광주에서 활동하던 이들과 함께하면서 공연은 물론 음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가수 이미랑이란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91년 무등산 캠페인 송을 비롯해 광주전남의 여러 광고 음악들을 녹음했다. 그의 목소리가 TV에서나 라디오에서 또 여러 CM송으로도 퍼지자 팬들도 여럿 생겼다. 별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할 때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한테 그렇게 팬레터가 왔다. 팍팍한 군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활력소가 돼 주었던 셈이다.
"분명 초면인데도 입을 떼면, 깜짝 놀라면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떤 분은 제가 ‘무등아리랑’을 부른 사람인지 모르고, 남도학숙의 ‘기상송’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들을 때면 꼭 악마의 목소리로 들리고, 밥을 먹을 때 들으면 천사의 목소리로 들렸다고요. 그게 바로 저예요, 라고 밝히니 정말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
작곡자들은 그의 목소리에 곡을 붙이고 싶어 했고, 노래를 부르던 선배들은 이씨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했다. 맑고 고운 그의 음색은 듣기에 편안했고, 묵직한 남성 음역대와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제 목소리가 쓸모 있었던 모양이에요. 1990년부터 5년간 충장로 ‘라보엠’이란 레스토랑에서 한보리·오영묵·이미랑 트리오로 공연을 했어요.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꾸준히 활동을 했는데, 서울로 가서 활동하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악의 중심은 어쨌든 서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린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광주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앞에서 뒤에서 마음으로 이끌어줬던 선배들이 있었던 덕이기도 하죠. 광주는 제 음악의 발판이자, 엄마 품 같은 그런 곳이에요."
그는 분주하게 살았다. 무대에서 노래했고, 도종환 시인 시낭송음반 ‘흔들리며 피는 꽃’, 오번줄밴드 ‘익어가는 색깔’ 등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3년간은 광주가톨릭평화방송의 ‘행복한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팬들을 만났다. DJ로 마이크 앞에 앉을 때 그는 참 행복했다고 기억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용기를 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것이다. 음악 활동과 더불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천직’이라 표현할 만큼 기쁘고 보람되는 일이다.
"더 어렸을 때는 음악과 교육을 따로 두고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모두 연결돼 있음을 느낍니다. 내 음악 안에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을 보면서 또 음악을 꿈꾸게 되더라고요. 음악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모두 소중한 제 업입니다."
봄이 왔으니, 더 바삐 움직일 시간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요양원·병원·학교 등 찾아가는 음악회는 계속된다. ‘오번줄밴드’로 무대에 서면서 그가 가장 애정을 쏟는 일이다.
"흔히들 공연을 보면서 힐링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노래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면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특히 작년 요양병원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한 공연이었는데, 제가 ‘동백아가씨’, ‘찔레꽃’ 등 옛 노래를 부르니까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기억이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겁니다. 음악의 힘은 진짜 강한 것 같아요."
그가 앞으로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이씨는 ‘행복’이란 키워드로 설명한다.
"예전에는 산소 같은 목소리, 비타민 같은 목소리로 인식되길 바랐다면, 지금은 그저 제 목소리가 행복을 전해줬으면 해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공연을 보는 것 그 시간이 행복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 행복의 에너지가 저로부터, 관객에게 또 관객으로부터 저에게 연결될 때, 더 행복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