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사회와 소통에 중점 열린 재단 목표 [클릭인터뷰] 오월 앞두고 만난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7월 14일(일) 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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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호·제72호=윤자민 기자)5·18기념재단과 오월단체들은 지난 2017년 11월 옛 광주교도소 내 암매장 발굴작업을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처음으로 진행했다. 5·18 당시 희생자들이 암매장 됐을 곳으로 유력하게 지목돼 왔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5·18기념재단과 오월단체들은 암매장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자 한차례 실망했지만 이내 5·18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암매장 발굴 조사는 잠시 중단하고 자료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동안 모은 제보 등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리, 출범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적극 협조해 국가 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길 기대했다. 지난 2018년 2월28일 국회에서 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1년이 넘도록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올해 정초부터 일부 국회의원들이 5·18을 폄훼하면서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39주년, 내년 4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나봤다.
지난해 5월 18일 부임한 이후 1년이 지났는데.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5월 진상규명과 5월 정신 계승을 위한 현장에 계속 참여해 왔지만 막상 이사장직을 맡고 보니 과분한 직책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문에 나의 부족한 부분은 직원들과 시민단체, 시민들과 소통하며 보완하려 노력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지는 데 필요한 이사장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1970년대 목회자로 활동하기 전, 젊은 시절 유신 독재와 싸우다 3년의 징역살이를 하는 등 감옥에도 몇 차례 다녀올 정도로 역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본격적인 목회 활동도 그런 방향으로 시작됐다.
1980년 5·18 직후(11월부터) 목회활동에 나섰다. ‘무등터야학’을 세우고 도시산업선교로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이를 특수선교활동이라고 한다. 노동자와 함께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조직이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처럼 노동자들 스스로 조직을 구성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육체적·심리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첨단 월계동에 쉼터를 제공했다. 1997년도에 시작했으니 벌써 22년째다.
이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탐방, 한국 가정체험을 진행해왔고 무료로 상담, 한글교육 등을 실시했다.
이 이사장이 기억하는 1980년 5월의 광주는?
1980년 5월 16일 한 정보과 형사가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몸을 피하라. 지금껏 경찰이 해왔던 수준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언질을 줬다. 국제엠네스티 전남지부 간사를 맡고 있었으며 1970년대부터 광주 목포 등지에서 유신 반대 운동을 펼치다 투옥된 경험이 있어 나는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18일 오후, 양림교회에서 학생들이 계엄군과 대치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YWCA 건물로 달려갔지만 이미 전날 계엄군이 주요 인사들을 연행해 간 뒤였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일단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21일 다시 시내로 나왔지만 당시에는 두려움에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만약 사무실로 들어갔다면 무엇인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군 600명 개입설’·‘유공자 뻥튀기 설’, 어떻게 생각하나.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면 은행과 시장이 마비됐어야 하는데 본 적도 없고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주가 보여준 공동체 정신을 한국교회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
광주 80만 시민은 잠깐이나마 ‘절대 공동체’가 됐다. 부족한 식량을 나누고 부상자를 함께 치료하는 공동체 정신은 교회가 항상 바라던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고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시민단체와의 소통 및 오월단체들과의 화합이 진실규명에 대한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5·18은 1980년 5월 그날의 관련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당시 80만명의 전 광주시민들이 함께 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5·18이 당사자 주의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와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시민단체와의 소통을 우선으로 뒀다. 5·18과 관련된 중요한 사업들을 추진해 나갈 때 항상 같이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재단의 발전협의회도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행사를 진행하거나 회의를 할 경우 시민단체와 함께 추진한다.
재단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우선 5·18 민주화운동 선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성지순례, 나눔 행사, 체육행사, 5·18 역사체험(영창·법정체험, 주먹밥 나눔, 음악회) 5·18 자원활동가 육성, 그리고 장학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연대 사업을 들 수 있다.
전국 권역별 기념행사(기념식 및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와 5·18 정신 계승 공동사업의 발굴 및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국내·외 5·18 등 민주화운동에 대한 연수도 적극 돕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 출범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면.
참 안타깝다. 5·18이 일어난 지 39년이 지났고 지난해에는 특별법 제정이 됐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을 해야 되는데 정국이 꼬인 것 같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부딪히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도 공당이고 제1야당이다. 나중에 정권을 잡을 수도 있는 당이다. 하루빨리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광주시민들도 이를 용서해 제주 4·3처럼 화합을 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올해 5·18 전까지 잔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해 내년 40주년 행사 전에 어느 정도 진상규명이 이뤄졌으면 한다.
39년 만에 전두환씨가 광주 재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소감은.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으로 전씨가 광주에 왔다.
광주시민들의 바라는 것은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였을 것이다. 설사 발포명령을 부인하더라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5·18이 일어난 지 40년이 다 돼 가는데 광주에 와서 그 한마디 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많은 사람들에게 작지만 위로도 되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마디 없는 뻔뻔한 행동을 보면서 사죄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인데 끝까지 잡아떼는 모습을 보면서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되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올해 39주년, 내년이면 40주년이다. 어떻게 진행되나.
지난해에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하고 진상규명이 속도가 붙으면 40주년에 맞춰서 보고서를 준비해 발표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올해 39주년 행사는 5·18의 전국화에 힘쓰고 있다. 광주에서 매년 진행하는 기념식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도 기념식을 열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또한 5·18 당시가 아닌 이후에 발생한 피해자들을 초청해서 위로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내년에 있을 40주년은 세계화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세계 인권상, 아시아 포럼 등 세계적으로 5·18을 주제로 하는 행사를 치러 세계 인사들을 초청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예를 들어 오페라 형식으로 5·18에 대해서 제작해 해외 공연도 예정에 있다.
현재 오페라는 제작 중이며 올해 5월 중 시범 공연을 할 수 있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광주 시민들은 5·18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랑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가치를 널리 전하려고 노력한다. 5·18기념재단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때문에 5·18기념재단이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혹시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면 시민들의 질책을 달게 받겠다.
오월단체, 시민단체, 광주시 및 유관기관, 정부,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해 나갈 것이다.
항상 소통하겠고 누구나 언제든 재단을 찾을 수 있도록 열린 재단을 지향하고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게 협조하겠다.
이에 암매장 발굴 조사는 잠시 중단하고 자료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동안 모은 제보 등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리, 출범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적극 협조해 국가 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길 기대했다. 지난 2018년 2월28일 국회에서 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1년이 넘도록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올해 정초부터 일부 국회의원들이 5·18을 폄훼하면서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39주년, 내년 4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나봤다.
지난해 5월 18일 부임한 이후 1년이 지났는데.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5월 진상규명과 5월 정신 계승을 위한 현장에 계속 참여해 왔지만 막상 이사장직을 맡고 보니 과분한 직책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문에 나의 부족한 부분은 직원들과 시민단체, 시민들과 소통하며 보완하려 노력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지는 데 필요한 이사장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1970년대 목회자로 활동하기 전, 젊은 시절 유신 독재와 싸우다 3년의 징역살이를 하는 등 감옥에도 몇 차례 다녀올 정도로 역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본격적인 목회 활동도 그런 방향으로 시작됐다.
1980년 5·18 직후(11월부터) 목회활동에 나섰다. ‘무등터야학’을 세우고 도시산업선교로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이를 특수선교활동이라고 한다. 노동자와 함께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조직이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처럼 노동자들 스스로 조직을 구성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육체적·심리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첨단 월계동에 쉼터를 제공했다. 1997년도에 시작했으니 벌써 22년째다.
이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탐방, 한국 가정체험을 진행해왔고 무료로 상담, 한글교육 등을 실시했다.
이 이사장이 기억하는 1980년 5월의 광주는?
1980년 5월 16일 한 정보과 형사가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몸을 피하라. 지금껏 경찰이 해왔던 수준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언질을 줬다. 국제엠네스티 전남지부 간사를 맡고 있었으며 1970년대부터 광주 목포 등지에서 유신 반대 운동을 펼치다 투옥된 경험이 있어 나는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18일 오후, 양림교회에서 학생들이 계엄군과 대치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YWCA 건물로 달려갔지만 이미 전날 계엄군이 주요 인사들을 연행해 간 뒤였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일단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21일 다시 시내로 나왔지만 당시에는 두려움에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만약 사무실로 들어갔다면 무엇인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군 600명 개입설’·‘유공자 뻥튀기 설’, 어떻게 생각하나.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면 은행과 시장이 마비됐어야 하는데 본 적도 없고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주가 보여준 공동체 정신을 한국교회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
광주 80만 시민은 잠깐이나마 ‘절대 공동체’가 됐다. 부족한 식량을 나누고 부상자를 함께 치료하는 공동체 정신은 교회가 항상 바라던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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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고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시민단체와의 소통 및 오월단체들과의 화합이 진실규명에 대한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5·18은 1980년 5월 그날의 관련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당시 80만명의 전 광주시민들이 함께 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5·18이 당사자 주의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와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시민단체와의 소통을 우선으로 뒀다. 5·18과 관련된 중요한 사업들을 추진해 나갈 때 항상 같이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재단의 발전협의회도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행사를 진행하거나 회의를 할 경우 시민단체와 함께 추진한다.
재단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우선 5·18 민주화운동 선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성지순례, 나눔 행사, 체육행사, 5·18 역사체험(영창·법정체험, 주먹밥 나눔, 음악회) 5·18 자원활동가 육성, 그리고 장학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연대 사업을 들 수 있다.
전국 권역별 기념행사(기념식 및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와 5·18 정신 계승 공동사업의 발굴 및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국내·외 5·18 등 민주화운동에 대한 연수도 적극 돕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 출범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면.
참 안타깝다. 5·18이 일어난 지 39년이 지났고 지난해에는 특별법 제정이 됐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을 해야 되는데 정국이 꼬인 것 같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부딪히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도 공당이고 제1야당이다. 나중에 정권을 잡을 수도 있는 당이다. 하루빨리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광주시민들도 이를 용서해 제주 4·3처럼 화합을 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올해 5·18 전까지 잔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해 내년 40주년 행사 전에 어느 정도 진상규명이 이뤄졌으면 한다.
39년 만에 전두환씨가 광주 재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소감은.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으로 전씨가 광주에 왔다.
광주시민들의 바라는 것은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였을 것이다. 설사 발포명령을 부인하더라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5·18이 일어난 지 40년이 다 돼 가는데 광주에 와서 그 한마디 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많은 사람들에게 작지만 위로도 되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마디 없는 뻔뻔한 행동을 보면서 사죄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인데 끝까지 잡아떼는 모습을 보면서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되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올해 39주년, 내년이면 40주년이다. 어떻게 진행되나.
지난해에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하고 진상규명이 속도가 붙으면 40주년에 맞춰서 보고서를 준비해 발표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올해 39주년 행사는 5·18의 전국화에 힘쓰고 있다. 광주에서 매년 진행하는 기념식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도 기념식을 열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또한 5·18 당시가 아닌 이후에 발생한 피해자들을 초청해서 위로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내년에 있을 40주년은 세계화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세계 인권상, 아시아 포럼 등 세계적으로 5·18을 주제로 하는 행사를 치러 세계 인사들을 초청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예를 들어 오페라 형식으로 5·18에 대해서 제작해 해외 공연도 예정에 있다.
현재 오페라는 제작 중이며 올해 5월 중 시범 공연을 할 수 있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광주 시민들은 5·18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랑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가치를 널리 전하려고 노력한다. 5·18기념재단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때문에 5·18기념재단이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혹시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면 시민들의 질책을 달게 받겠다.
오월단체, 시민단체, 광주시 및 유관기관, 정부,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해 나갈 것이다.
항상 소통하겠고 누구나 언제든 재단을 찾을 수 있도록 열린 재단을 지향하고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게 협조하겠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