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한 가운데 달려 도착 드넓은 해변 풍경에 압도 감흥 마음 안으로 섬 들여놓았다

[문득 여행] ‘천사대교’로 육지 된 신안 섬
자은도 백길해수욕장…고운 모래사장 ‘진경’
안좌도 김환기 생가 ㄱ자형 기와집 보존 양호
암태도 소작인항쟁기념탑 ‘항일’ 역사적 자취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7월 14일(일) 17:43
(2019년 5월호·제72호=고선주 기자) 섬과 육지의 분간은 이제 시대에 뒤쳐지는 발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섬 주민들은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얻는 대신,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양단의 날 같은 것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섬은 기본적으로 이동에 대단히 불편이 큰 공간이다. 하지만 섬 특유의 문화와 풍경은 다른 내륙의 공간들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의 큰 자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섬으로 고립돼 있다보니 자체적으로 문화가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유한 섬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섬이 발달되려면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다. 아직은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섬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섬을 여행하려는 답사객이어서다. 꼭 이런 고민을 안겨주는 곳이 전남 신안 일대 섬지역이다. 이들 섬이 연륙교로 연결되고 있는데다 심지어 육지와 한데 묶이면서 답사객들의 접근이 한층 쉬워졌다.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해 방문이 꺼려지던 섬이 가까워진 것이다.
훗날 섬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유의미한 일로 기록됐으면 한다. 너무 깊게 생각했나 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불경스러운(?) 상상에 대한 대가이지 않나 싶다. 이번 문득 여행은 천사대교로 정했다. 스타일상 ‘어디로 떠날까’에 대해 고민을 오래 끌지는 않는다. 여행에 관한한 무한긍정의 에너지가 샘솟는다.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활력소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 활력소를 맛본 사람은 여행을 어렵게 계산하지 않는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천사대교 투어는 꾸물꾸물하지 않고 바로 떠난 경우다. 그나마 언론 매체를 통해 4월4일 개통 소식을 듣고 얼마되지 않아 떠난 길이었다. 천사대교는 압해도의 서쪽 끝 송곡리와 암태도 신석리 사이를 이어 놓았다. 자그마치 길이가 총연장 7.224km에 달한다. 너비 11.5m. 왕복 2차로 규모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국내 네번째로 길고, 해상 장대교량이다.
이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압해도를 비롯해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자라도가 한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자라도를 제외하면 모두 면단위이어서 섬 크기도 작지 않다. 하루 가지고는 모두 둘러보기 어렵다. 물론 압해도는 2008년 목포와 연륙교가 개통돼 일일 생활권이 된지 10년이 지났다. 이들 섬은 섬끼리 연륙교로 연결됐지만 육지와는 연결되지 못해 내륙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배편을 활용해야 했다.
그러나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섬 사람들의 육지 나들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해졌다. 천사대교의 위용을 보고 싶은 마음에 우선 급하게 모객을 했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딸만 공부를 이유로 기권하고, 나머지 가족과 동행하기로 했다. 마음은 바빴지만 화장실도 갈겸 해서 함평 나비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휴게소를 들른다는 것은 지갑이 무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지없이 둘째딸에게 핫바를 기부하고 나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압해도에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무안공항 쪽으로 해서 무안군 운남면과 신안군 압해읍을 연결한 김대중대교를 건너 압해도에 들어갔다. 일전에 천사섬 분재공원을 둘러보느라 송공항을 일대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하얀 눈을 흩뿌려놓은 듯한 배꽃을 구경한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소문난 압해읍 학교리 소재 맛집에서 돈가스를 폭풍 흡입한 뒤 천사대교로 이동했다. 식사하느라 시간을 소진, 진짜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천사대교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길이 막혔다.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었다. 천사대교가 머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천사대교 초입에 도착하자 거대한 교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행 중 정차할 수 없어 조수석 애 엄마를 통해 차창에 핸드폰을 바짝 대고 촬영을 부탁했다. 똑딱 똑딱 시끄러울 정도로 찍었다. 다다익선은 아니었지만 그 수많은 사진 중에 하나라도 걸려야 한다는 주문같은 것이었다. 대교 위의 운행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어서다. 섬들이 뒤로 밀려가며 지워졌다. 한참을 달려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강풍시 통행제한을 하는 모양이었다. 교각이 높게 진행된 곳에서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였다. 한참 지났을까. 다리가 다소 출렁출렁 거려 오금이 저리기도 했다.

압해도는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암태도는 초행이었다.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암태도의 소작인들이 벌인 소작농민항쟁인 ‘암태도소작쟁의’를 통해 암태도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뿐이다. 10여년 전에 안좌도 김환기 생가를 다녀갔다. 그때는 차량이 없어 안좌면 소재지에만 머물다 배편으로 목포로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은도든, 팔금도든 방문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섬들을 두고 말이다. 차편으로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암태도에 들어가서 더욱 실감이 났다. 지도에서만 봤던 섬지역인데 이곳을 차로 돌고 있다니 그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태도에 도착하고 나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기로 하고 맨 북쪽 섬인 자은도로 이동했다. 은암대교를 건너 자은도에 도착, 전국을 통틀어 가장 깨끗한 바다의 한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백길해변으로 향했다. 자은도 남쪽에 자리한 이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3km가 넘는 광활한 해안선이 펼쳐져 있다. 처음 백길해변을 접한 사람들은 입이 쩍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여름 해수욕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 방문을 해도 드넓은 해변 풍경은 압도적이다. 감흥을 주체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렇게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일찌기 본 적이 없다. 망망대해로 몸을 숨기는 석양 또한 볼거리다.
백길을 둘러보고 난뒤 제일 끝섬 자라도로 갔다. 자라포구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소두랑섬의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선착장과 대합실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해가 키를 낮추고 있는 오후, 한쪽 해안에는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다. 한참동안 그곳을 바라봤다. 햇살이 갯벌을 간지럽히고 있는 듯하다. 물길이 돌아나가고 있었다. 안좌도와 자라도를 잇는 교각도 눈에 들어왔다.
일정 때문에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안좌도로 들어와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서양화가 중 한명인 수화 김환기(1913∼1974) 생가를 찾았다. 수화 김환기는 절제된 조형언어와 명상적인 색감, 그리고 추상부터 우주적 질서, 한국적 소재, 반복적 구획과 면의 구성 등이 돋보이는 한국 근·현대 대표적 작가다. 모더니즘의 제1세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피카소’로도 불린다. 생가는 ‘ㄱ자형’ 목조 기와집으로 보존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다. 1920년대 건축인데도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 지금 이런 정도의 보존형태를 보이는 1920년대 주택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좌도에서는 부속섬 부소도도 둘러봤다. 시멘트길인 진입로가 우리 일행처럼 엉금엉금 갯벌을 지나 섬 안으로 들어갔다. 길이 바다에 잠길까 걱정이 앞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자라도를 오가다 만난 안좌도 벚꽃길과 팔금도 장목길의 유채꽃밭은 바삐 움직이던 발길을 붙잡았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느라 더 분주해졌다. 육지는 벚꽃이 비바람에 모두 져버렸는데 이곳에는 흐드러져 만발한 채 가지가 부러질 듯 피어있었다. 바다라 바람이 더 세게 불어왔는데도 용케 꽃잎들이 가지를 잘 붙잡으며 버팅기고 있었다. 꽃핀 풍경을 뭐라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와’ 이 한마디 외에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름답다보니 말문이 막혀버렸다고나 할까.
암태도로 올라오는 길,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암태도는 국내 소작쟁의 운동의 발원지로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항일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역사의 섬이다. 그래서 소작인항쟁기념탑을 지나칠 수 없었다. 잠시 그곳에 머무르며 그 의미를 되새겨봤다. 기념탑 옆 원둑길도 걸어봤다. 힐링의 길 같았다.
암태도나 자은도, 안좌도, 암태도는 일명 생활 섬들이다. 섬인 것만 다르지 육지의 한 부분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농토가 넓고 저수지도 여럿 있다. 바다만 없다면 여느 농촌 지역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비경을 숨기고 있는 곳들이 많다. 이곳을 하나 하나 섭렵하면 하루 가지고는 다 둘러볼 수 없다. 일정이 너무 촉박해 이동하다 끝이 난 듯하다. 시간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숨겨져있는 비경들을 다시 보러 가까운 시일 안에 방문을 하기로 하고, 아쉬움 가득 안고 섬을 떠나왔다. 분명한 것은 방문 이후 마음 안으로 그 섬들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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