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오려내 버릴만한 풍경 없는데 혹시 지워질까봐 가슴 깊이 새기면서 일상 지칠 때마다 꺼내 보기로 했다

[문득 여행] 제주에서 만난 풍경 다섯
실용적 코스 포기…지그재그로 넘나들며 일정 소화
바다 낭만 의자·드넓은 메밀밭 끝자락 포토존 운치
감귤타르트로 달달한 오후…서귀포 새섬 정경 압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9월 05일(목) 18:46
(2019년 7월호 제74호=고선주 기자)제주는 풍경 부자다. 가는 곳마다 명승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풍경은 명승지에 몰려 있다. 제주는 국내에서 명승지가 가장 많은 곳이다. 여기다 이국적 풍경까지 더해져 풍경에서만큼은 절대 갑이다. 물론 일상의 공간이 명승지로 부각되기도 한다. 굳이 명승지에서만 풍경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제주는 야자수와 종려나무 등 이국적 수목이나 돌담 끝으로 앵글을 맞춰 찍어도 엄청난 풍경이 연출된다.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아쉬웠던 점은 눈으로만 풍경을 복사했을 뿐 스토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늘 스토리를 가지고 제주를 방문했더라면 10여회 찾은 제주는 그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을 터다. 뒤늦게나마 풍경이 스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친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 6월7일부터 10일 오전까지 제주에 머물며 풍경들을 탐색했다. 첫날인 7일 밤 늦게 도착했다. 숙소인 서귀포시 표선면 소재 대명 샤인빌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밤에 만난 풍경은 조명효과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날 밝았을때 만나는 풍경이야 말로 민낯의 풍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명 샤인빌 리조트에 대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겠다. 지면 아깝게 시설이 좋니, 안좋니 읊어대는 것이야말로 소모적 행위 그 자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날이 밝자 드러난 풍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만난 듯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 뒤편 끝자락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 작은 수영장이 몸을 풀고 있었다. 국내에 이런 수영장이 몇곳이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압권이었다. 수영장이 바다의 뒤꽁무니를 잡은 듯한 형국이었다. 바다가 탁 트인 자리에 수영장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어느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다. 여기다 바다를 향한 낭만 의자들은 운치를 더했다. 앉아서 머리와 가슴, 마음에 바다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네 의자의 등받이에는 ‘LOVE’가 선명하다. 사이좋게 한 글자씩 새겨져 있었다. 이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라는 뜻 같았다. 또 두 사람을 뜻하는 ‘느영 나영’과 사뭇 사랑한다의 제주방언인 ‘ 랑햄수다’가 새겨져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의자였다. 연인들에게는 더없이 애정운 뿜뿜 솟구치게 할만했다. 이런 이미지를 블로그 같은 곳에서 접한 적이 있다. 언젠가 한번 이런 곳을 찾아 사진도 찍고, 앉아도 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현실이 됐다. 의자 하나로 이같은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 풍경을 만나러 발길을 재촉했다.
보롬왓

대정 안덕면 소재 마르노블랑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핑크 뮬리를 만난 기억이 새롭다. 아름다운 풍경과 카페가 만나는 콘셉트가 요즘 핫한 풍경으로 부각되고 있기는 하다. 핑크뮬리가 그랬다. 이번 제주여정에서는 이것과 유사한 콘셉트의 공간 한 곳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자리한 보롬왓이었다. 보롬왓은 ‘바람부는 밭’의 제주방언이다. 이곳 보롬왓은 라벤더와
메밀밭, 삼색버드나무, 카페, 화분체험, 보라 유채, 깡통열차, 화원, 메밀 젤라또 등 나름 다양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페에서 멀리 바라다보면 마치 고창 청보리밭 같은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돌담과 항아리 또한 정겹게 다가왔다. 메밀밭 끝자락에는 지평선이 몸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이곳에는 나무 세 그루가 있고, 그 나무를 배경삼아 사진찍을 수 있도록 사각의 틀(포토존)이 설치돼 있다. 수국꽃까지 흐드러져 있어 그냥 지니가는 사람은 없다. 그곳에서 연신 카메라 앵글을 맞춰 셔터를 누르느라 분주했다. 때마침 이슬비가 내렸다. 저마다 우산을 펴들었지만 필자는 온몸으로 맞으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카페 건너 하우스에서 만난 수염 틸란드시아로 꾸며진 식물터널과 해바라기 등 다양한 식물들도 존재감을 뽐냈다.
서귀포와 표선을 주로 오갔으나 함께 한 아이들의 체험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실용적 코스를 포기했다. 여행가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지그재그식 코스를 잡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코스를 잡게되면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 데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서귀포에서 제주로 넘나드는 코스를 잡아야만 했다.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토토 아뜰리에를 가기 위해서다. 그곳에서는 요리 체험을 할 수 있다. 성인랩실과 키즈랩실이 갖춰져 있고, 200평 규모의 텃밭과 감귤농장의 재료가 식재료로 사용돼 로컬 푸드가 가능한 곳이었다. 또 개인용 터치패드를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전문가 레시피로 요리 체험을 할 수 있어 만족감을 높여줬다. 감귤타르트를 요리하기 전에 텃밭에서 어린이가 직접 뽑은 당근 한 그루가 함께 한 가족에게 주어졌다. 아이들은 감귤타르트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필자는 잔디밭에서 제주공항에서 힘차게 이륙하는 항공기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심에 살다보면 항공기 비행하는 모습도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별것이 신기하다 하겠지만 큰 덩치의 항공기가 청명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날 감귤타르트의 단맛이 더해져 달달한 오후를 꿈꿀 수 있었다.
표선해수욕장 등대

이어 표선해수욕장과 서귀포시 서귀동 소재 새섬을 찾았다. 이곳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쳤다. 이 아름다운 자연은 고스란히 명품 풍경으로 다가왔다. 표선해수욕장은 올초 천사대교가 개통된 이후 다녀온 전남 신안군 자은도의 백길해수욕장 같은 곳이었다. 드넓은 해변과 마주하다 보니 답답한 가슴이 뚫렸다. 그런데 해변보다는 등대 쪽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가장 비싼 숙소로 알려진 해비치리조트 앞쪽 조그만 항구에 자리한 등대는 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다낚시꾼들의 은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등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더 진하게 바다내음이 코를 찔렀다. 제주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새섬은 연륙교 형태의 다리가 놓여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낮에 땀에 절어있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밤에는 다리에 형형색색의 전등이 켜져 풍경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새섬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1960년대까지 유인도였다고 한다. 산책로가 꾸려져 있는데 길이가 1100m 정도로 새섬광장, 갈대숲, 연인의 길, 언약의 뜰, 선라이즈광장, 바람의 언덕, 팔각전망대, 소나무 오솔길 등을 거쳐오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섶섬과 문섬, 범섬을 조망할 수 있었다. 정말 선물같은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다섯군데의 풍경들은 저마다 개성이 듬뿍 담겨 스토리를 쓰고도 남았다. 가위로 오려내 버릴만한 풍경은 없었다. 혹시 지워질까봐 가슴 깊이 풍경을 새겼다. 살면서 지칠 때마다 꺼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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