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생기 덧난 상처에 새살 돋다

[book story] 장정희·차노휘·김경희 등 女소설집 잇따라 출간
장정희·차노휘·김경희 등 女소설집 잇따라 출간
다양한 인간군상 호출…이야기 끌고 가는 힘 역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9월 18일(수) 10:58
(2019년 9월호 제76호=글·고선주 기자) 글쓰기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이 포진돼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숙명인 글쓰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창작의 길을 꿋꿋이 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미래 한국 문학의 희망을 유추할 수 있을 터다. 연초 5∼6명의 여류 소설가들이 펴낸 작품집을 통해 소설의 힘을 느낀 지가 엊그제인 듯한데 벌써 한해 중간을 지나는 시점에서 다시 작품집을 잇따라 펴내 주목된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새삼 와닿는다.
먼저 광주 대광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창작을 병행하고 있는 전남 영광 출생 소설가 장정희씨가 두번째 청소년 소설인 ‘사춘기 문예반’을 서유재에서 펴냈다.
‘빡치GO 박차GO’를 2015년 펴낸데 이어 4년만에 선보인 작품집이다.
‘빡치GO 박차GO’는 2016년 어린이도서연구회와 학교도서관저널 및 행복한아침독서운동본부 추천도서, 2016년 ‘씨앗’ 재단 진로 추천도서, 2017년 전남도립도서관 ‘올해의 책’ 선정 등 다양한 타이틀을 거머쥔 바 있다. 8쇄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평범한 인문계 여고 동아리인 ‘문예반’을 배경으로 한이 소설은 상처투성이 사춘기 여고생들이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통과 슬픔, 상처를 산문과 소설, 시 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드러내며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문예반 소녀들을 통해 날로 황폐해져 가는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한 해법을 조망하도록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크고 작은 상처를 글쓰기의 질료로 삼아 서로를 보듬고 일어서고자 애쓰는 문예반 소녀들이다.
이들은 아픔과 고통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면서 “작품 속 문예반 소녀들처럼 글쓰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힘,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전남 순천 출생 소설가 차노휘씨가 장편소설 ‘죽음의 섬’을 청어에서 펴냈다. 스토리는 설지원이 실종되는 것으로부터 전개된다.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은데다 무연고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제보도 없다. 그런데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으로, 다달이 6개월 동안 삼백만원이 입금된 것이다. 현존하지 않는 사람의 통장으로 말이다.
그가 평소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고 했듯 사라졌으나 사체와 유서는 발견되지 않아 논외가 된다. 가족의 가출 신고에 따른 탐문수사도, 사람을 찾는다는 친구의 신문 광고도 모두 헛수고였다.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른 채 5년이 지나 끝내 실종자 사망으로 처리됐다는 것으로 스토리의 궁금증은 더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일상에서 끊임없는 탈출을 시도했다.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길(900㎞)과 포르투갈길(700㎞)을 걸었다. 물 공포증이 있던 내가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 다이브 마스터(DM)를 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죽음의 섬’과 마주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수웅 교수(스토리텔러·단국대 문예창작과)는 이 소설에 대해 “그의 소설에서 공포를 느꼈다면 강렬한 소재나 긴박한 진행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했다.
광남일보 신춘문예(2000년) 출신이자 광주여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한 뒤 조선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전북 부안 출생 소설가 김경희씨가 소설집 ‘새들 날아오르다’를 펴낸 뒤 9년만에 두번째 소설집 ‘켄타우로스, 날다’를 문학들에서 펴냈다.
기이한 소재나 실험적 문체보다는 자신이나 이웃의 이야기를 마치 누이가 옆에서 들려주듯 차분히 써 내려간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 ‘켄타우로스, 날다’는 소재나 문체, 이야기들은 평범한 듯한데, 읽고 나면 그 ‘평범함’ 속에 담긴 견고한 현실인식이 깊은 여운을 던져준다.
채희윤 교수(소설가·광주여대)는 “사람됨의 단아함이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작가들이 있다. 김경희가 그렇다. 그녀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식이 뚜렷하나 그것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아주 낮게 깔아, 독자들이 그 향기를 하나하나 집어내어가며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했다.
장마 끝 열대야로 치닫는 여름, 이들의 독창적 시각에 의해 얼키설키 씨실과 날실로 얽힌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에어컨 앞 냉기나 선풍기 앞 바람을 쐬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제각각 분주한 일상을 견뎌내고 발표한 이들의 소설에서 이 무더운 날 또 다른 산문을 읽는 즐거움을 얻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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