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관계없이 현실 직시하고 각자 세상 성찰하는 계기 됐으면

[문득여행] 천주교 중요 문화유산 둘러보다
모두 요란스럽지 않은 곳으로 마음 평안 얻기에 적격
노안성당 국가등록문화재 44호…근대 대표 성당건축
장성 매남 공소 규모 작지만 유서깊은 천주역사 증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06월 04일(목) 02:22
(2020년 3월 제82호=고선주 기자) 설 연휴가 지났고, 입춘마저 지났다. 근데 자주 비가 온다. 겨울비도 내렸지만 입춘 지나 내린 비는 봄비일 것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비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한 여름날 비처럼 내린다는 것이다. 올들어서는 눈 덮인 하얀 세상 한번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겨울은 졌다. 봄이 순식간에 와버렸다. 지금 내리는 비는 마치 세상의 눈물같기도 하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돼 전세계로 퍼져버린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감염될까 몸과 마음을 사려야 하니 피곤함은 몇 곱절 늘어난 듯하다.
외출이 어려운 형국이 됐다. 마스크를 끼는 것은 물론이고, 되도록이면 사람많은 곳은 피해야 할, 가지 말아야 할 제1순위 지역 혹은 공간이 됐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없는, 건강한 세상 되도록 해달라’라는 것이 기도 단골 주제가 됐을 터다. 집 근처 마트 방문도 자제하며, 심지어는 사무실에서 감기걸렸거나 기침하는 직원 옆에 가기까지 주춤거려진다.
늘 매달 한차례씩 문득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힘들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장거리보다는 광주 인근을 선택해 다녀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것도 사진만 찍고 얼른 광주로 돌아와야 하는 마음이 앞섰다. 가까이에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의미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일전에 방문했지만 글로 쓰지 못했던 전남 장성 사거리 성당의 매남공소가 떠올랐다.
매남공소처럼 ‘이곳을 가면 좋겠다’ 떠오른 곳이 전남 나주 노안성당이었다. 집에서 20여 ㎞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초행이었다. 근대 건축 문화유산으로 일찍부터 접해왔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집에서 꼼지락 거리다 갑자기 나서는 길이었지만 비가 온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갔다가 다시 유턴해 우산을 챙겼다.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나들이라면 우중기행이 여행객들에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움직이는데 불편하기도 하지만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낭만 기행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는 ‘오히려 운치있어 좋겠다’고 말하지만 초보사진꾼(?)에게는 카메라가 비 맞을까 신경쓰다 보니 자유로운 창작력은 실종되고 만다. 필자 역시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기는 사진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기에 신발이 젓고, 바짓가랑이가 젓는 것에는 개의치 않게 된다. 지금은 광천사거리에서 하남을 거쳐 나주 IC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나주 IC만 도달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나주 노안이다.
나주 IC를 빠져나가자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의 모든 갈은 나주로 통한다’라는 문구다. 그만큼 나주가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 10여분을 달려 천주교 신자들의 집성촌이자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이슬촌(계량) 마을에 도착했다.
이슬촌 마을은 아침 무렵 풀잎에 이슬이 잘 맺혀 붙여진 이름으로, 매년 성탄절을 맞아 크리스마스축제를 열고 있다. 이외에도 깻잎김치 담기를 비롯해 인절미 떡매치기, 모종심기, 대나무 물총놀이, 감자캐기, 옥수수 수확하기, 홀테 벼 탈곡하기, 고구마캐기, 천연비누 만들기, 고추따기, 손모심기, 계란꾸러미 만들기, 천연염색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를 열어왔다고 한다.
짚미끄럼타기 체험장을 지나 안쪽으로 접어들자 몇몇 고목들 사이로 성당 본당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노안면 이슬촌길(양천리)에 자리한 노안성당은 나주 최초의 천주교회이자 지역 대표적 근대 성당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44호로 2002년 9월13일 지정된 이후 성당 본당 입구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명패가 붉은 벽면에 부착돼 있다. 110년이 넘은 건축물답게 한참동안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자료에 따르면 노안성당은 초기 평면은 장방형의 강당형 평면 구성이었으나 1957년 트랜셉트(Transept, 翼廊) 부분을 동·서 방향으로 증축하면서 라틴십자형 평면이 됐다는 설명이다. 정면의 탑신부 1층은 거칠게 표면을 다듬은 화강석을 사용했으며, 건물 곳곳에 다양한 아치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성당 건물 정면 출입구는 돌을 쌓아 3면에 아치를 두었고, 그 위쪽으로 종탑을 벽돌로 쌓아 십자가를 올린 형국이다. 1992년에는 지붕을 현재와 같은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교체했다. 맞배 형식의 붉은 아스팔트 지붕을 씌워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안 성당의 역사는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피신 온 정락(요안)이 인근 함평 나산에서 약방을 운영하면서 노안면 양천리 이민숙(바오로), 이진서(토마스), 이학서(바오로)에게 전도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 3명이 1900년 무안에서 요양 중이던 이내수(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찾아가 세례를 받으면서 이들이 중심이 돼 ‘계량공소’가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것이다. 1908년 프랑스의 카다르 신부가 지은 ‘一자형’ 벽제 사제관을 1927년에 ‘十자형’ 건물로 증축,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됐으며, ‘나주천주교회’로 개칭됐다. 그 이후 1935년 나주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다시 명칭이 노안천주교회가 된다. 1957년 ‘十자’ 모양으로 성당을 증축하고, 사제관을 신축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성당 입구 ‘성 골롬반 중학교’ 건출물도 눈에 띈다. 1936년 김창현 신부가 세운 ‘신성학술강습원’이 시초로 1961년부터 1984년까지 운영, 지역사회의 중등교육을 도맡았으며 현재는 청소년수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본당 앞 여러 고목나무들이 이 성당의 역사를 우회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듯했다. 나무 그늘에 매달려 있는, 앙증맞은 눈사람 인형이 나무 아래 빈 의자와 어우러져 한껏 여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성당 뒤로 갔더니 비에 젖은 동백이 화사하다. 붉은 동백은 마치 찬연한 봄이 올 것이니 용기를 가지라는 무언의 손짓 같았다.
또 필자가 주목했던 성당은 최근 다녀왔던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 소재한 사거리 성당의 매남공소였다. 입구에는 아치형으로 ‘천주교 매남성당’이라는 명패가 부착돼 있다. 매남공소는 성진공소와 함께 유서깊은 천주역사를 이루는 곳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자리한 매남공소는 북일면 매남길(문암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1866년 조선 조정에서 가톨릭 교도를 대량 학살한 병인박해 때 교우촌을 형성하고, 신앙을 지켜왔다고 한다. 매남은 마을 뒷산 매남봉에서 유래했다. 제8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가 1897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6·25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65년 모 미카엘 신부에 의해 지금의 공소건물을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소 한쪽에는 ‘전주이씨천주교신앙비’가 세워져 있다. 인근에 축령산 자연휴양림과 금곡 영화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오다 가다 매남공소를 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원래 장성 임씨 집성촌이었으나 병인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피신 온 이봉귀 후손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교우촌을 이뤘다는 것이다,
매남공소흫 방문할 당시에는 매우 쾌청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적당한 높이에 걸린 십자가가 드높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뽐낸다.
매남공소가 속한 사거리 성당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으로, ‘사랑과 자비의 집’도 자리하고 있다. 1935년 6월 전남 지방의 선교를 담당한 골롬반회 선교사들에 의해 사거리 성당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됐다가 1954년 8월 공소 건물(면적 약 130㎡)이 재건됐고, 1993년 2월10일 다시 본당으로 승격돼 장성군 북일면 일부와 북이면·북하면을 관할하고 있다. 시간 많이 안 들이고 가볍게 의미를 찾으면서 나들이 하기에 적격인 곳이다. 이곳은 모두 요란스럽지 않은 공간이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정은 천주교 신앙의 성지 두 곳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앞서 언급했듯 세상이 수상하면 할수록 신앙의 힘은 절대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비상이 걸린 세상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우울한 요즘이다. 천주교 신자든, 아니든 종교에 관계없이 차분한 가운데 현실을 직시하고 일상을 다독이며, 각자 세상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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