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잃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생각 담는 작업에 집중"

[신문화탐색] 미디어아티스트 임용현
조연출·PD 거쳐 영국 유학 뒤 본격 예술가 길 걸어
영상·조형 등 여러 유형 시도…서사 집약해 시각화
"미디어아트에 영향 준 분 보다는 제 경험이 자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06월 04일(목) 03:40
(2020년 6월 제85호=고선주 기자) 예술가이든, 작가이든 경험만큼 좋은 교과서는 따로 없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호주와 영국을 거쳐 서울, 그리고 현재 고향 광주에 안착하기까지 그의 삶과 내면에는 차곡차곡 작품의 세계를 깊이있게 끌고 갈 소재가 하나하나 모였다. 이런 그가 지난 1월부터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기에 그의 작업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5월13일 오후 국제레지던시 2층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미디어아티스트이다보니 여타 다른 작가들과 조금 다른 풍경이다. 각종 자료들이 작업실과 모니터 등 벽면에 부착돼 있었다. 주인공은 임용현씨(39)다.
임 작가는 다른 젊은 작가들보다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것이 아닌, 영화 연출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한때 전공을 살려 영화 조감독을 염익했다. 그는 2007년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가 그곳에서 조감독 인연이 닿아 영화계 일을 하게 된다. 1년 후 귀국해 생활고 때문에 케이블TV PD를 역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본격적인 예술 작업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PD 일을 할 당시 다큐 제작차 미스코리아 당선자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떠나게 된다. 때마침 일행 중 미술전공자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제대로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 미디어아티스트로 발을 떼게 된 계기였다. 이때 그는 사진 작업을 조금 하고 있을 무렵이어서 결심을 더 빨리 굳힐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국 유학이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현지에서 미디어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로 돌아와 본격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에게 영국에서의 작업적 의미는 유학 전에는 미술적 사고를 하기 보다는 영화적 서사로 작업을 한데 반해 유학을 간 이후에는 서사를 집약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생각을 정리해 작업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어 북경에서의 1년간 체류는 영국 못지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2018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스튜디오에서 1년 동안 머무르며 작업을 펼쳤는데 이때는 기존 가지고 있던 작업적 생각을 펼치던 시기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갔기 때문에 이를 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다채로운 재료를 구할 수 있어 작업을 실현시키는데 유리한 여건이었다는 설명이다. 재료비를 절감할 수 있어서다. 그는 북경 시절을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많이 작업을 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는 온통 미디어 생각을 하며 일상을 꾸려가는 듯하다. 그가 추구하는 미디어에 대한 세계가 궁금했다. 먼저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으로부터 설명을 이어나갔다.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었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비평적 시각으로 미디어를 수용할 수 있어야 올바른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거기에 맞는 매체를 떠올립니다. 영상이나 조형, 기계 등 여러 유형을 시도하지요. 한가지 매체만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너무 구체적이지 않아 그의 작품세계를 조금 유추하기가 어려워지지만 주안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션 맵핑이라고 하면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주제를 잘 보여주기 위해 적합한 오브젝트 선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의 작업들은 본래적 모습을 다시 재창조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리얼리즘으로 규정되는 사물이 있다고 하면 이를 완전 다른 성격의 사물로 바꾸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코카콜라가 있다고치면 작가는 가상의 코카콜라를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우주 등을 추출해낸다. 물리적, 공간적 특징을 바꾸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Faces

올해 본격 예술 장르를 추구한 지 11년째 접어들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금전 문제를 초탈해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이 가족이나 집사람의 격려가 있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삶을 견딜 수 있고, 큰 창작의 에너지까지 얻고 있다. 물론 한때 그도 생활인이고 가장이다보니 상업적인 일에 집중했다. 영국 유학을 다녀와서 작업 중 아이가 생기면서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했다. 3년차 되던 해 작업에만 집중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다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다시 영국과 광주의 미디어 격차에 대해 묻자 격차가 있기 보다는 쉽지 않은 재료를 구할 때 온라인으로 구해야 한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영국에서 돌아와 광주로 바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서울에 3년간 머물렀다. 줄곧 작업을 해오면서 사진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는가 물었더니 사진 뿐 아니라 모든 경험이 미디어 작업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사진은 기본적인 매체로 가장 원천적 매체라는 점 또한 잊지 않았다.
요즘 그는 기계를 만들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제작 중이어서다. 무거운 쇠공을 꼭대기에 올린 뒤 밑으로 떨어뜨려 아래에 있는 사물을 조금씩 변화를 시키는 과정이다. 여기다 내부 벽면 전체를 영상으로 덮어 원래의 공간이 아닌, 영상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여정을 꾸준히 걷고 있는 그는 관련 분야 스승을 따로 두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취급한다.
"제 미디어아트에 영향을 준 분을 딱히 누구라고 꼽기는 어렵습니다. 제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죠. 저는 과거에 미디어를 생산하는 사람이었죠. 그때 생각했던 미디어하고, 지금 미디어는 느낌이 다르더군요."
이어 ‘미디어는 무기다’라는 주제의식으로 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그는 무기에 빗대 미디어를 설명했다.
"무기는 누군가를 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파괴를 억제하는 역할도 하죠. 현대 사회에서 핵이 가장 강력한 무기죠. 손가락 하나로 버튼만 누르면 지구상 모든 것들을 파괴시킬 수 있듯, 미디어 역시 그것이 가지고 있는 편의성과 영향력 때문에 핵처럼 무섭다고 볼 수 있어요. 미디어 문제 역시 본질적으로 사람의 욕망과 연결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업은 재료를 미리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향이 결정돼야 재료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 어떤 재료보다 알루미늄 작업이 편해 하는 듯 보였다. 정확하게 수치만 알려주면 배송된다는 것이다. 그는 2016-2017년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 레지던시, 2018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센터, 2019년 다시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 레지던시를 거쳤다. 그가 거쳐간 레지던시 이력을 나열하는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어서다. 레지던시를 옮길 때마다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떤 고정된 작업은 없다는 것과 궤를 함께 한다.
마지막으로 작업계획과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질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작업실이 별도로 있는데 너무 협소해 창고처럼 쓰고 있어요. 작업실을 작업하는데 편리하도록 꾸며볼 계획입니다.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할건데 홀로그램화 작업으로 관객 자체는 자신이 작업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 빛의 반사와 룸 전체에 거울을 설치해 구현하는 작업이죠. 앞으로 균형감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상업적인 작업보다는 제 생각을 많이 담는 작업에 집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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