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으며 기지개 켜보면 어떨까

[book story] 봄이 오는 길목서 만난 책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2월 06일(일) 18:27
(2022년 2월 제105호=고선주 기자)겨우내 얼었던 계곡이 녹고, 동토 속 잠들어있던 생명이 하나 둘 깨어나는 2월, 봄으로 가는 길목인 것은 분명하다. 추위와 코로나 여파로 잔뜩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서서히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하다. 아직 추위는 완전하게 물러간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제 서서히 꽃망울이 터져 오를 일만 남았다. 봄을 앞두고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을 읽으며 기지개를 켜보
면 어떨까.

드들강변에서 농사 지으며 키운 詩心 펼치다
도시농부 김황흠 시인 세번째 시집 펴내

도시농부로 살며 분주한 농사일 중 틈틈이 창작활동을 펼쳐온 전남 장흥 출생 김황흠 시인의 세번째 시집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문학들 刊)가 문학들 시선 64번째 권으로 최근 나왔다. 그의 시편들은 드들강변을 끼고 살아가는 농부로서의 삶을 시화한 것들이 대다수다. 그만큼 그의 삶 한 가운데는 대지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마음과 정신적 본업인 시인 사이를 수시로 넘나드는 이모작을 매번 실행 중이다.
농부로서 욕심을 비운 채 스스로의 삶을 다독이며 이름없는 들풀과 곤충, 강물, 나무들과 기꺼이 동행한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했는가. 적어도 자연의 것들은 자신을 속 썩을 일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러나 삶에는 정도가 없는 법. 그의 시편들을 보면 얼마만큼 치열하게 삶을 관통하고 있는가를 직감할 수 있다. 느릿하고 고요할 것 같은 그의 삶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풍경들은 늘 분주하게 흘러가는 듯 여겨진다. 모두들 정도없는 삶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시인은 순리에 순응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는 길없는 길을 걸어간다. 광주를 생활권으로 하면서 농사일을 하는 작가들은 몇몇 있지만 그처럼 꾸준하게 창작을 병행하면서 처음 그 모습 그대로를 견지하는 이도 아마 드물지 않을까 싶다.
시인은 ‘바람이 메마른 억새를 건든다/간질간질/꼿꼿이 말라 가는 생을 간지럽힌다//…중략…//뱁새 몇 마리 찌이익 찌이익/물살은 갖가지 음원을 무료로 제공한다//물살 따라 가는 흘러가는/악보 없는 음표 길’(‘즐거운 음표들’ 중에서)이라고 노래한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지만 시인은 반드시 삶 중간 중간 즐거운 쉼표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황흠 시인은 2008년 ‘작가’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숫눈’과 ‘건너가는 시간’, 시화집 ‘드들강 편지’를 펴냈다.

말과 말 사이 놓인 ‘소소한 삶’ 다독이다
오선덕 첫 시집 ‘만약에라는 말’ 출간

‘실수라 하기엔 너무 아픈 말이 있다. 가시처럼 박혀 있는, 상처받은 말들과 상처 준 말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상처 입은 말들은 긴 세월 지나도 통증으로 남아 있다. 잘못 쏟아진 말들로 헐거워진 사이엔 나와 너만 있고 우리는 없었다. 늦었지만 이제 그 우리를 찾으려 한다.’
이는 오선덕 시인이 첫 시집 ‘만약에라는 말’을 걷는사람 시인선 53번째권으로 내면서 밝힌 작가의 말 전문이다. 이번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시집 출간 계기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어떤 심정과 마음으로 시집을 펴냈을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의 공포, 그리고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실감하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시편에 말로부터 실감했던 삶의 단편들을 차분한 시적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푸는 방식은 말과 언어에 대한 천착이 아니라 그로부터 출발된 삶의 양태들을 조목 조목 시적 촉수로 기워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말과 말 사이에 놓인, 소소한 삶을 다독이고 있는 셈이다.
살면서 우리는 낯설음과 낯익음을 넘나든다. 그런 대표적 시편으로 독특한 제목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나인 것 같아 하루는/차가워지고 하루는 뜨거워진다//것은 서로를 이어주는 징검돌/잊고 있었던 것을 소환한다//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어릴 적 그 맛/헤어진 연인과 닮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피운 꽃을 보고서야 생각나는 그 이름//무심코 지나쳤지만 낯익음으로 새겨 놓은 것’(‘것’ 전문)이라고 읊는다.
이번 시집은 ‘우리는 서로의 몸짓을 모른 척합니다’를 비롯해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 ‘했던 말들이 모두 사라졌다’, ‘모노드라마’ 등 제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한 시 50여 편이 실렸다.
오선덕 시인은 전남 장성 출생으로 2015년 ‘시와사람’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결핍의 1970년대…소시민의 아픔 형상화
성보경 두번째 창작집 ‘어쩌면 지금’ 출간

결핍의 1970년대, 소시민의 아픔을 작가만의 특유의 시각을 담은 연작소설이 나왔다. 제5회 목포문학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경남 창녕 출생 소설가 성보경씨(광주대 대학원 박사과정)가 펴낸 두 번째 창작집 ‘어쩌면 지금’(문학들 刊)이 그것으로, 2017년 첫 소설집 ‘국민교육헌장’의 표제작이었던 한 쌍의 소설 ‘유도화가 핀 여름’, ‘국민교육헌장’과 더불어 유년기를 보냈던 1970년 마산시 완월동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푸른 넥타이’를 비롯해 ‘어쩌다 그런’, ‘마지막 한 방’, ‘젖보살’, ‘도쿠 형님’, ‘공동수돗가의 사람들’, ‘해 뜨는 집’ 등이 수록됐다. 이 소설은 서럽게, 안타깝게, 당당하게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고향 집 주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찬란하면서도 두려웠던 1970년대, 내 청춘을 보낸 유신 시대, 도시 한복판에 서서 그때를 소환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소설은 창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란 순영의 시선을 통해 근대화·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역사적 단면들을 보여준다.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일본인 현지처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여공 금희의 죽음. 아버지가 결핵으로 죽자마자 금희의 엄마인 진도댁은 그녀에게 학교를 그만두도록 강요한다.
또 ‘젖보살’은 일본인 위안부로 강제징집 당한 미순이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과거가 등장하며, ‘도쿠 형님’은 일제 강점기에 결혼한 조선인과 일본인 가족이 해방 이후 겪는 사회적 갈등을 보여주고, 마지막 한 방은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삼촌이 오히려 ‘한 방’을 남겼다며 감탄하는 이야기다.
정지아 소설가는 추천사를 통해 "우리를 순식간에 1970년대 창원으로 데려간다. 여공들의 설움과 독재정권에 항거한 청년이 있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할머니 사후 자신의 삶 개척 과정 그려
김좌현 작가 동화 ‘하늘나무’ 출간

2015년 동시 ‘순돌이 바꿔주세요!’로 한국안테르센상을 수상한 김좌현 작가의 동화 ‘하늘나무’(문학들 刊)가 나왔다. 이 동화는 어린 소녀의 눈으로 그린 할머니의 죽음이 드러난다.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어린 아이가 할머니의 죽음을 딛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깊은 감동을 준다.
아홉 살 소녀인 아이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는 할머니가 그저 잠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잠든 할머니의 뱃살을 주물럭거리고, 시장에 생선을 팔러 가자고 팔을 잡아 당기기도 한다.
이 동화는 어린 소녀가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어린아이가 관 속으로 들어가 할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할머니를 허공으로 떠나보내며 하늘나무와 만나는 장면 등은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또 이 세상은 결코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가르쳐 준다. 할머니는 시장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늘나라로 무사히 떠날 수 있었고, 소녀 역시 그들의 도움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동화를 쓴 김좌현 작가는 전남 화순 동복 출생으로, 2010년 ‘한국평화문학’에 동시 ‘통일이를 찾습니다’ 등을 발표했으며, 음악극 ‘호랑아 엄마를 돌려줘’ 극본(2012년)과 뮤지컬 ‘호랑아 엄마를 돌려줘’ 극본(2016년)을 썼다.
삽화를 그린 전현숙 화가는 전남 화순 동면 출생으로,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제14회 개인전과 파리, 두바이, 북경 등 수많은 국외기획전과 국내기획전에 참여했다. 2008년 신세계미술제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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