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으로 한발 한발 들어갈수록 사느라 들끓던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지는 듯했다

[문득여행] 전북 고창
고창읍성 1684m 성곽 한바퀴…건축물과 소나무 운치 더해
신재효 고택서 판소리 의미 새기며 노동저수지서 잠시 힐링
선운사 웅장한 공간 구성에 압도…석양 무렵 구시포 해변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3월 06일(일) 17:18
(2022년 3월호 제106호=고선주 기자)전북 고창은 여전히 낯선 곳이다. 처음 다가온 이미지는 수박이다. 대산으로 시집을 간 사촌누나 때문에 생긴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는 직접적 인연을 갖는 이미지는 없다. 다만 그 유명한 사찰 선운사와 고인돌, 몇몇 해수욕장에 대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정도다. 어찌보면 광주에서 고창가는 길은 전남 오지의 다른 시군 가는 것보다 수월하다. 호남고속도로 장성 방향을 타고 가다 서해안 고속도로 연결로에 진입해 가면 불과 30분 안팎이면 고창읍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이 다르기는 하나 남도가 질릴만할 때 전북 서해안으로 넘어가는 출구다.
전북의 명승지인 부안(모항 ·곰소·격포·채석강·내소사 등), 새만금, 선유도, 군산 등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창을 거쳐야 해서다. 그만큼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하는 곳이 고창이다. 여행에서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풍천장어와 선운산 복분자주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 여행은 개인 취향에 따라 확연하게 갈린다.
고창은 호들갑스런 여행지가 아니다. 조금 조용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하는 느낌이다. 입춘이 지난 2월, 눈이 내린 뒤끝이지만 너무 싱겁게 빨리 녹아버려서 허망하기는 했다. 요즘 눈은 운치를 느끼려는 찰나, 금방 녹아버리는 게 특징이다. 하지aks 여행자에게는 미끄러운 길을 걱정 안해도 돼서 더할 나위 없이 다녀오기 좋은 조건이다. 토요일 오전 다소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고창읍에 도착해 중식집에 들어갔다. 조그만 읍내라 하더라도 방송 탄 맛집은 있기 마련이다. 고창전통시장 안에 자리한 중식집으로 예능프로그램 tvN의 ‘놀라운 토요일’과 KBS ‘배틀트립’, E채널의 ‘노는 언니2’에 나온 집이라 했다. 소문난 집 먹을 게 없다고 하지만 이 집은 허름한 듯 보이면서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처럼 중식집에서 다소 여유를 부린데는 고창읍성(모양성)이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창읍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렀을만한 곳이 읍성일 것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으로,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돼 호남 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1965년 4월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됐다. 이 성의 규모는 둘레가 1684m, 높이가 4∼6m, 면적이 16만5858㎡에 각각 달한다. 동·서·북문과 3개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해 성밖의 해자(垓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성내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兵火)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며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현재도 부녀자들의 답성(踏城)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남북 지역에서 독특한 지점을 이루고 있는 고창읍성에 대한 첫 기억은 대학 시절 한권의 시집으로 인한 것이었다. 40여 년 전 당시 여고생이던 김옥진 시인이 답성놀이를 하다가 추락해 전신마비가 된 사연을 알게 돼서다. 그렇게 다가온 고창읍성은 요번에 방문하고서야 그 가치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모든 문화유적들은 한두번 봐서는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고창읍성은 언젠가 방문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으나 이번이 세번째 방문으로 기억된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시간에 너무 쫓겨 성곽을 잽싸게 한바퀴 돌고만 떠나왔기 때문에 성곽의 가치를 알 수가 없었다. 북문을 통해 들어가면 옥사 건물이 나온다. 방문객들에게 역사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 흔치않은 곤장과 주리 체험을 할 수 있다. 직접 하옥 경험까지 더할 수 있다.
옥사 건물을 지나 본격 답사가 시작된다.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은 포기하기도 한다. 가파르게 올라갈수록 조망 뷰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숨은 찼지만 제일 위쪽까지 올랐다. 평지가 나올만한 위쪽까지 갔더니 나뭇가지들 때문에 조망이 방해가 돼 다시 중간 지점까지 내려온 뒤 사진 몇컷을 담고 성곽 길을 다시 밟으며 이동했다. 눈이 온 뒤끝이라 응달이 진 구간은 눈이 녹지 않아 꽤나 위험해 보였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다잡기 위해 발에 힘을 주며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아래로는 고창읍내가 한눈에 들어왔고, 나무 사이를 지나 이동하다 멀지 않는 곳의 노동저수지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문과 서문은 단청 등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읍성은 성곽이 압도적인 곳이다. 건축물은 대개 현대에 와서 복원을 하다보니 고풍스런 맛은 덜했다. 건축물 외에 주목해야 할 것들로는 고송들이었다.
고창읍성 북문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소나무는 그 껍질만 봐도 오랜 세월 읍성과 함께 해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고송들은 성곽의 운치를 한껏 배가시켜줬다. 읍내에 이런 성곽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곽과 성곽 내 향청 등 건축물들을 둘러본 뒤 성곽 밖으로 나왔다. 읍성 매표소 직전 입구에 자리한 민속자료 제39호인 신재효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순조 시대에서 고종 시대를 산 전북 고창 출신의 판소리 대가로, ‘춘향가’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등 여섯 편의 판소리계 소설을 정리한 장본인이다. 교과서에서 만난 인물을 현지에서 직접 만나는 즐거움은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다. 머지않는 곳에 신재효 선생(1812~1884) 묘소까지 자리하고 있어 그를 이해하려는 방문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빼놓을 수 없는 답사코스다. 동리국악당 및 고창군립미술관 등과 연계돼 둘러보는 재미가 작지 않았다. 이외에 동리 신재효 선생 추념비와 만정 김소희 여사 국창 기념비도 자리하고 있다.
읍성 답사를 마치고 성곽에서 조망했던 노동저수지를 향했다. 노동저수지는 매월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매월정 외에 저수지 한 가운데로 노동수상길이 구축돼 있어 물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매월정 도착 직전에 저수지 아래 쪽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돼 있다. 물살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수면이 가깝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석양 무렵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방문한 날은 바람이 드세었다. 노동수상길을 왕복하고 나니 귀가 얼얼했다. 춥다 보니 빠르게 주차해놓은 차로 발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고창읍성과 노동저수지의 여운을 뒤로 하고 선운사와 구시포로 이동했다. 선운사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만한 사찰이다. 주차를 한 뒤 1㎞ 넘게 숲길을 걸어야 선운사와 대면할 수 있다. 진입로가 잘 닦여져 있지만 그 옆으로 평지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자리하고 있어 묘한 여운이 일었다. 노동저수지와는 달리 숲 속으로 들어오자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하천은 군데 군데 얼음이 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산골의 날씨는 봄을 앞두고 있다 하더라도 매서웠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욱 몸이 움츠러 들었는지 모른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 꼽히는 선운사는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뤘다고 한다. 지붕보수공사로 보물 제290호인 대웅보전의 온전한 전경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관음전·영산전·팔상전 등과 대웅보전 앞 6층 석탑과 괘불대·당간지주·석주 등을 접할 수 있어 사찰의 웅장한 공간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선운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종주 백파긍선 스님의 비인 백파율사비, 검단선사가 지었다는 만세루, 정감어린 돌담, 천연기념물 367호 송악나무 등을 꼭 챙겨 봐야 한다. 선운사를 둘러본 뒤 석양 무렵 구시포를 잠시 들렀다. 구시포 모래사장을 조금 거닐다 멀리 등대를 카메라에 담은 뒤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갑자기 폭설이 내리고 강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저녁을 포기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피곤이 더 빨리 몰려왔으나 매서운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영광 법성포로 넘어와야 했다. 발이 묶일까 봐 걱정이 앞서서였다. 이날의 일정은 매우 요란스럽게 저물었다.
하지만 선운사 진입로에서 느낀 단상을 기억하기로 했다. 왕복 2㎞가 넘었지만 수행이라 생각하니 훨씬 덜 힘이 들었다. 그날 필자는 "삶이 버거울 때마다 길을 가라 했다. 오늘 선운사를 걸었다. 늘 가지런한 오후를 꿈꾸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길 위에는 바람만 멈칫하다 지나갔다. 숲 속으로 한발 한발 들어갈수록 사느라 들끓던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지는 듯했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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