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알리지 않고 개인적 봉사를 계속 할 거예요"

[이사람] 정춘남 광주 동구 학운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찰밥과 봉사의 어우러짐…독거노인 굶주림 해소 노력
14년 간 어르신 등에 나눔 앞장…한 끼 전하며 온정
민관 협력해 선한 영향력 발휘…임기 후 봉사 지속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3월 06일(일) 18:46
(2022년 3월호 제106호=글 송대웅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이지만 그는 한 쪽 귀에 최신형 무선 이어폰을 항상 꼽고 다닌다. 유독 한쪽 귀에 쏠리는 타인의 시선에 "나이를 먹으니 휴대전화를 깜빡깜빡해요.
정작 봉사가 필요한, 중요한 전화를 못받겠다 싶어(무선 이어폰을) 끼고 다녀요"라고 했다.
올해로 4년 째 광주 동구 학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이끌고 있는 정춘남 위원장의 얘기다.
지역에서 정 위원장을 부르는 애칭(?)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위원장님 또는 센터장님이라고 호칭하지만 그에게 봉사 수혜를 받은 이들은 ‘찰밥 봉사 왕’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수식어가 붙게 된 데는 그의 선행의 시작이 ‘찰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9년부터다. 이 시기는 그가 거동이 불편해 집 밖을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돌보겠다며 ‘천사재가노인복지센터’를 세운 시기이기도 하다.
좋은 취지로 센터를 세웠지만 주변 이웃들이 더 많이 찾았다. 마음이 맞는 이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학운동의 사랑방으로 센터는 이용됐다.
"센터를 세우고 보니 매일 같이 찾는 이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들과 함께 진정한 봉사에 나서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곧장 실천에 옮겼죠."
정 위원장의 뜻에 이웃 7~8명이 함께했다. 그리고 이들은 머리를 맞댄 끝에 매달 말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메뉴가 문제였다. 수 많은 어르신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메뉴. 정 위원장은 오랜 고민 끝에 답을 내렸다. 바로 ‘찰밥’이다. 먹었을 때 소화도 잘 되고 특히,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복안이 깔렸다.
실제 찹쌀은 다른 곡식에 비해 단맛이 강하며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화기관이 약하거나 속이 차가운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곡식이다. 몸이 아프거나 식사하기 힘들 때 위에 자극을 줄이기 위해 찹쌀로 죽을 쒀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평소 영양분이 부족한 어르신들을 위해 고기반찬을 꼭 첨가했다.
이와 함께 식재료 충당에도 애를 먹었다. 처음엔 정 위원장을 비롯해 뜻을 함께 한 이들이 십시일반해 각종 재료를 충당했지만 점점 찰밥을 나눠줘야 할 이들의 수가 늘면서 고심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정 위원장의 선행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들이 나서 거들어 준 것이다. 그렇게 정 위원장과 주민들은 힘을 모아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찰밥 한끼를 6년간 제공했다.
"처음엔 진짜 좌충우돌을 많이 했죠. 인원수를 고려한 찹살 양을 맞추는데 무척 애를 먹었어요. 다행히 참여한 모두가 손맛들은 좋아 어르신들의 호응이 높았죠."
학운동 설 명절 맞이 사랑의 찰밥 나눔 진행 모습.

그렇게 봉사활동이 7년째로 접어든 해 정 위원장은 더 큰 생각을 품었다. 민간에서 할 수 있는 봉사 영역을 넘어 지자체와 손을 잡으면 더 많은 어르신들이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장에서 봉사를 하다 보면 주민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무척 많아요. 또 관에서도 진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죠. 이럴 때 주민과 지자체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다면 봉사에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때마침 2015년에 학운동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지사협)가 설립됐다. 지사협은 해당 지역의 사회보장을 증진하고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기관, 법인, 단체, 시설과 연계 및 협력을 위해 시·군·구 단위로 설치된 민관협력 기구다.
정 위원장은 그길로 지사협에 가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 년간 진행해온 ‘찰밥봉사’를 구체화시켰다. 지금도 매달 셋째주 목요일 진행되는 학운동 ‘찰밥데이’의 시작이다. 관할 행정당국인 동구에서도 정 위원장의 아이템에 ‘혹’ 했다.
지난해 기준 동구의 만 54세 이상 청·장년세대는 3만8403명이다. 또 학운동의 청·장년세대는 5405명이며 이중 1인가구는 21%인 1118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홀몸세대의 식생활 안정과 생활 안전을 돌보고 노인성 치매, 우울증, 고독사 예방은 동구의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이런 점에서 정 위원장의 ‘찰밥봉사’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지사협 회원들과 학운동장 등이 중심이 돼 직접 가가호호 방문 전달을 기획, 현실화하면서 소위 ‘대박’을 쳤다.
정 위원장의 선한 영향력은 회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찰밥데이를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회원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팔을 걷어 붙였다. 그렇게 정 위원장을 필두로 한 학운동 지사협은 매달 독거노인 80여 세대, 1년에 560여 세대를 대상으로 찰밥데이를 전개하고 있다.
원래 지사협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선한 영향력이 곳곳에 투영되면서 연임한 상태이다.
지역에서 ‘찰밥의 여왕’으로 통하는 그런 정 위원장의 임기도 오는 8월이면 끝이 난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일반 회원으로 활동하며 더 큰 봉사계획을 구상 중이다.
정 위원장은 "과거를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이들에게 찰밥을 전달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고맙다고 또는 너무나 든든하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뿌듯했죠.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고 개인적인 봉사를 하고 싶어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하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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