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풍요로움에 감사…지역 콘텐츠 활성화 꿈꾼다"

[화제의 인물]워케이션 숙소 창업 김지영 ㈜마고 대표
서울서 회계사 10년 근무…빈집 리모델링 'WAKA' 건축
옥동리 청년 마을 조성 사업 '눙눙길 프로젝트' 제안 추진
'논두렁 DJ 페스티벌'·폐교 활성화 등 지역 콘텐츠 활용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7월 30일(일) 15:29
(2023 6월 121호=김민빈 기자) ‘일’(Work)과 ‘휴가’(Vacation)가 합쳐진 신조어 ‘워케이션’은 일을 하면서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근로 형태를 뜻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대인 접촉을 줄이기 위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일과 생활은 물론 여행을 접목한 새로운 근무 개념으로 떠올랐다.
땅끝 해남 황산면 부곡리 작은 마을에 자리한 워케이션 숙소 ‘WAKA’(와카)는 멋드러진 기와 지붕의 한옥과 그 앞에 옹기종기 꽃이 핀 마당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WAKA를 만든 이는 김지영 ㈜마고 대표다. 그는 2년 전 해남 황산면 부곡마을에 7년 동안 비어있던 낡은 한옥을 사들였다. 1년 여 간 정성 들여 재건축한 공간은 그와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공간이자 바쁜 일상을 내려두고 쉬어갈 수 있는 안락한 휴식처다.
김 대표가 연고도 없는 전남 땅끝에 정착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서울 명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대학시절에는 문화기획자를 꿈꿨다.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여성문화기획에 관심을 가져 관련 교육을 듣고 행사 기획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직장 생활을 경험하면서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해 그로부터 10여년간 일했다. 서울 유명 회계법인에서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던 중 환경의 변화와 타이밍이 공교롭게 맞물리면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회사 일에 지쳐 번아웃이 왔어요.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이렇게 살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링겔을 맞으면서 버티는 나날이 반복됐어요. 그러다가 인도 파견직에 발탁되면서 떠날 준비를 마쳤는데 마침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계획이 틀어졌죠.”
그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전국의 여러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한달살기’를 경험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워케이션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했고, 편안히 휴식하면서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게 됐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비싼 서울 땅에 모두가 바글바글 모여 살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빈집을 샅샅이 찾아다닌 끝에 1979년 해남에 세워진 빈집을 발견한 그는 2021년 그곳으로 귀촌해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의 도움을 받아 ㈜마고를 창업, 1년 여간 공사 끝에 지난해 6월 WAKA를 개업했다.
WAKA 전경

건축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안락한 공간을 위한 단열과 방수, 실용적인 내부 설계였다. 특히 일과 휴식이 양립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특징에 맞춰 세심하게 구상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거실은 다용도 공간으로 자유자재의 변형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불편하지 않도록 책상은 2m 가까이 넓게 배치했다. 이동형 벽을 밀면 이 책상이 줄어들고 싱크대가 나와 부엌을 갖춘 편안한 거실로 바뀐다.
WAKA는 ‘열려있지만 닫힌 공간’을 추구한다. 창을 크게 빼고 양쪽으로 바람이 통하는 한옥의 전통 구조를 살려 안과 밖이 자유롭게 연결되는 느낌을 살렸다. 덕분에 집 안에 오래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방문하신 분들이 이곳에 살고 싶다고 말하곤 해요. 휴양만을 목적으로 한 공간에서는 오래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들잖아요. 근데 여기는 사람이 실제 살던 곳을 고쳤기 때문에 정말 살아도 좋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안과 밖이 연결된 느낌을 주면서도 색다른 영감을 주는 공간이길 바랐죠.”
서울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딸이 어느 날 시골 마을로 내려가 집을 짓는다는 것에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을까. 예전부터 워낙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오지로 배낭여행을 훌쩍 떠나곤 하던 딸이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34개국을 여행했어요. 대학생 때도 배낭을 메고 훌쩍 오지 여행을 떠나곤 했죠. 부모님은 딸이 인도로 떠난다고 했다가 해남으로 간다고 하니 오히려 잘됐다 생각하신 것 같아요.”
광주·전남뿐 아니라 수도권이나 경남 등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WAKA의 공간 취지에 공감하고 찾아온다. 마을 한복판에 세워진 숙소를 보는 마을 주민들의 시선은 호기심과 걱정에서 응원과 기대로 바꼈다.
“처음에는 젊은 청년이 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궁금해하셨죠. 지나가다 공사도 지켜보며 먹을 것도 주시고 또 사업에 대한 걱정도 해주셨어요. 마을에 볼 것도 없는데 누가 여기까지 돈을 내고 오겠느냐면서요. 오픈하고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잘됐다며 진심으로 기뻐해주세요.”
김 대표는 해남에서 사는 지금의 삶이 전에 비해 훨씬 좋지만, 그게 바뀐 환경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난관에 부딪힌 적도 많았고, 회의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왜 해남에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현재의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됐다.
콘크리트가 굳기를 기다리는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그는 결과나 성과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해남의 자연과 풍요로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집중했다.
“‘어디에 사는가’가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무언가 일이 잘 풀릴 때는 잘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못할 때는 나에게서 그 원인을 찾게 되더군요. ‘해남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거나 ‘여긴 다르다’ 이런 이야기 보다는 현재 해남이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말하고 싶어요.”
‘눙눙길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한 김지영 대표(왼쪽에서 세번째)

최근 김 대표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황산면 옥동마을에 청년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 ‘눙눙길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옥동리는 부곡리에서 도보 5분 여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한때 옥공예 마을로 잘 알려진 곳이다. 김 대표가 ‘전남형청년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마련된 이 프로젝트는 6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해남군,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협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눙눙길’은 옥공예마을의 ‘옥’을 거꾸로 뒤집어 만든 이름이다. 외부인이 들어오기 힘든 우리끼리의 ‘마을’이 아닌, 누구든지 함께 걸을 수 있고 계속 확장되는 의미를 담고자 ‘길’이라 이름지었다.
그는 귀촌하고나서 ‘왜 하필 해남이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해남이나, 진도나, 완도나 큰 차이는 없었다. 그 지역만의 특성은 직접 살아봐야만 알 수 있다. 그가 살아본 해남에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정말 많았고, 여러 요소들을 한 군데로 모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리라 생각했다.
“도시 사람들이 지역을 떠올릴 때 ‘여기 사람들만의 텃세가 있진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지역민들의 입장에서는 낯선 타지 사람이 여기서 잘 지낼까, 우리 지역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서로 잘 모르는 부분에 있어 공포를 갖고 있는 거예요.”
김 대표는 이러한 지점에서 서로를 위한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느꼈다. ‘눙눙길 프로젝트’는 해남의 흩어진 콘텐츠들을 한 곳에 모아 도보로 걸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다. 논두렁에서 하는 ‘논두렁 DJ 페스티벌’, 빈 폐교를 활성화 하는 공간 재생 사업 등 옥공예 마을을 중심으로 지역의 콘텐츠들을 활용하는 장단기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청년들과 외국인 근로자, 관광객 등이 다함께 참여하고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폐교가 된 옥동초 건물을 고쳐볼 계획이에요. 지역민들은 물론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장이나 공유오피스 등으로 활용하고 행사나 네트워킹 모임 장소 등 다목적 공간으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이요.”
김 대표는 꿈꾸던 워케이션 숙소를 창업하고 이제 또 다른 도전의 길에 서있다. 지나온 과정에서 그가 느낀 것은 ‘마음을 미래에 두고 목표를 세우면 달성하지 못한 현재의 나를 원망하게 된다는 것’. 목표를 세우면 치열하게 달려가야하는 사람이라 요즘은 의도적으로 목표를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하고, 이후에 취업하고 또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죠. 대신 삶에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은 지키면서 매일 충실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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