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과 공감 가능한 화가로 남을 터

[아트인]서양화가 이관수
능주 작업실 두고 작업 집중 흑백톤 통해 서정적 화풍
민미협 소속 매년 ‘오월전’에 동참…치유의 화폭 추구
"오늘 끝낸 작업이 늘 최고의 작품 되기를 희망" 밝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11월 27일(월) 17:40
(2023 10월 125호=글 고선주 기자) 광주가 아닌, 화순 능주라는 곳에서 묵묵히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는 작가가 있다. 그와는 별다른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작품의 깊이가 만만치 않아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경우다. 그는 매체적 나들이 대신 오로지 창작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구현하면서 오로지 작품만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주인공은 서양화가 이관수씨. 작업실이 능주에 있다 보니 동료 화가들과 잦은 어울림 보다는 묵묵히 농촌지역에 박혀 작업에 열중하는 듯 보였다.
그의 작업실은 농촌지역 명문으로 꼽히는 능주고등학교 앞 2층 규모의 아담한 농어촌 뉴타운 내 121동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새 흰 머리칼이 꽤 자연스럽게 내려 앉아 제법 어울린 듯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다소 좁아는 보였지만 그것은 순전히 작품들이 벽에 빼곡하게 들어차 기대져 있는 때문이다.
그의 작업들은 흑백톤이 주된 정조를 이루고 있다. 흑백톤이 주는 중후한 느낌이 작품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모던한 현시대의 풍경들보다는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지난 시대의 풍경이 그의 화폭을 지배한다. 아버지나 어머니 세대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의 풍경 말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공유하기 어려운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기억에 남았을법한 1980년대 삶 풍경들이 그것이다.
이런 삶 풍경이 그의 화면을 지배한데는 젊은 시절 청년학도로서 대학 미술패 운동에 가담하면서 촉발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그는 대학 시절 걸개 그림을 그리면서 일주일에 세차례 가투에 나설 정도로 군부독재의 부조리한 현실을 보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중도에 미술패를 탈퇴했다. 그러나 한때 투쟁하는 선후배들과 함께 시대적 부조리 혁파에 동참해 활동을 펼쳤다.
“그냥 군대에 갔다 오면 되는데 그 무렵 미술패를 탈퇴하고 입대했어요. 아카데믹한 것을 배우고 싶었는데 판화나 목판화를 찍고, 화염병을 만들며 걸개 그림을 그리고 하는 게 미술대학에 진학한 최대치가 아니었죠. 온통 다른 것을 배워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대하고 나서는 다시 미술패에 들어가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래된 시간’ 연작

'오래된 시간’ 연작

그는 1984년 고등학교 1학년 재학 무렵 화가를 꿈꾸게 된다. 미술부에 입회해 미술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익히는 기본기를 갖추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대학 공모하는 실기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홍익대나 조선대 등 전국 대학의 학생실기대회에 도전하면서 화가에 대한 구체적 꿈을 향해 나아갔다.
이런 그의 열망이 대학 입학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대학에 입학 후 다양한 실험을 지속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결론은 ‘삶 풍경’에 집중하자 였다. 대학졸업 후 광미공(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가입 제안이 왔으나 그는 고민 끝에 작업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됐는데 작업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실기강사 등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광주예고나 목포예고(현 전남예고) 등 고등학교 실기강사 활동을 하면서도 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지하 작업실에서 후배와 함께 작업을 펼쳤다. 그러다 다시 민중미술 진영으로 15년 만에 복귀했다. 민미협(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에 입회해 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후 민중미술단체 소속 회원으로 매년 ‘오월전’에 동참했다.
그렇게 단체전 중심으로 활동 보폭을 유지해오던 그는 2017년 무등갤러리에서 ‘머물고 싶은 자리’라는 주제로 늦깎이 개인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대학 이후 햇수로 35년여 만에 열린 것이다. 이때 오월이라고 하는 특수한 역사를 서정적 시각으로 돌려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설명이다.
“저는 직선적 표현 대신 서정적 시각을 가져가려 노력했습니다. 오월 관련 그림들 중 대부분 강력한 그림들이 많았는데, 이를 계몽미술로 바라봤죠. 그런데 저하고 강력한 메시지의 작품은 맞질 않다는 생각이 들어 대중적인 서정성의 작품을 추구한 거예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민미협 등 그룹전에 꾸준히 출품했지만 이면에는 ‘또 다른 나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었죠.”
그의 흑백톤의 작품들은 안온함을 가져다 준다. 어두운 색상이 갖는 상징성이 있는데 단순하게 흑백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색상들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시각이다.
‘바람 머물고 간 자리’

색채 구사는 특징이 있어 보인다. 물감을 두껍게 바른다. 대학시절부터 해오던 자신의 기법이라고 한다. 캔버스 위에 자신이 생각하는 마티에르를 주기 위해 거친 표현을 내면서 두꺼운 질감의 표현을 택한 것이 이를 뒤받침한다.
또 주변의 소외를 캔버스에 투영했다. 이를테면 도시나 농촌의 소외, 그리고 변두리 개발이 난무한데 이런 문제들에 천착했다. 그러면서 천수답이 사라진 농촌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향수가 될만한 것들을 화폭으로 끌어와 작업을 진행한다.
미발표작이지만 작업실에서 만난 작품 ‘오래된 시간’은
그가 추구하는 화풍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의 캔버스에 노부부 한쌍이 골목길을 걷고 있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자신의 부모와 능주의 옛 모습이 합쳐진 작품이었다. ‘오래된 시간’은 부모의 뒷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화순 능주 풍경에 부모님의 모습을 대입시킨 작품이다.
그는 ‘치유의 그림’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오늘 끝낸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 되기를 바라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제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죠. 탁한 색상의 그림들이지만 치유의 그림이 되기를 희망하구요. 관람객들과 공감 및 소통이 가능한 화가로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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