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남도지방 석불양식 계승

[문화재 다시보기]곡성 석곡리 석불입상
긴 세월 마모로 이목구비 찾기 힘들어
거대한 불상이나 전체적 단순한 조각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4년 01월 08일(월) 18:17
(2023 11월 126호=글 여균수 기자) 곡성 석곡리 석불입상은 곡성 석곡IC 인근 들판 남향으로 서있다. 주변 논보다 높은 단을 만들어 세워졌고, 주변 감나무 밑으로 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석불 발목 부위 아래로는 똥 속에 매몰돼 있다. 매몰된 부분까지를 감안하면 이곳 석불의 거대함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석불의 전체 높이는 305cm이다. 석곡리 석불에는 마을의 전설이 있다. 옛날 살림이 넉넉한 가정에 도승이 구걸하러 왔는데, 그 집 며느리가 자린고비 시아버지 몰래 도승에게 곡식을 나눠줬다. 이때 도승이 말하기를 “이 집에 곧 재앙이 있을 것이니, 급히 북쪽으로 피난 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후 천둥이 치고 뇌성이 울리자, 부부는 서로를 찾다가 뒤를 돌아보게 됐다. 그러자 남편은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 석조미륵으로, 부인은 아이를 업은 채 이곳 석곡리 석조미륵으로 변했다고 한다.
석곡리 석불에 비해 규모가 작은 죽산리 석불은 죽산리 미륵암자에서 불당을 지어 본존으로 모시고 있다. 석곡리 석불입상의 모습은 오랜 세월 풍화돼 전체적으로 뚜렷하지 않다. 광배(부처의 몸에서 나는 빛을 배경으로 형상화)와 불신이 한 돌로 조성됐다. 광배 높이는 110cm, 광배 너비는 100cm, 머리 높이는 60cm, 어깨 너비는 90cm이다. 앞에는 직사각형의 배례석이 놓여 있다.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각부의 조각기법이 뚜렷하지 못하다.
머리 주위에는 둥근 두광을 새겼는데, 무늬를 따로 표현하지 않았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부처의 머리 위에 혹처럼 솟아오른 것. 지혜를 상징)는 반구형으로 뚜렷하다. 백호(부처의 양 눈썹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는 이마의 중앙에 아주 조그맣게 뚫려 있다. 세월의 흔적일까. 눈과 코, 입 표현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귀는 떨어져 나갔는지 없다. 목은 긴 편이고, 삼도(부처의 목에 새겨진 3개의 주름)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하다. 뒷부분은 조각 흔적이 없이 판판하다.
법의(부처의 옷)는 통견(양 어깨를 모두 덮은 가사)으로 U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양 어깨에서 내려가 배 부분까지 양각돼 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을 수 있도록 팔목에 구멍이 나 있으며 역시 세부 표현은 뚜렷하지 않다.
이처럼 조각수법이 떨어지고 세월의 흔적으로 마모가 심해져 1984년 전남도 문화재자료(28호)로 지정된 뒤 더 이상 높은 등급의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조각 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거대한 지방 석불상의 예로 추정되고 있다. 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의 석불입상과 함께 고려시대 남도지방 석불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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