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인재들 지켜 ‘올바른 길’로 키워낼 것”

[사람사는 이야기1]이미경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원장
치유·회복 ‘음악 치료’·학교밖 청소년 주목
배움·주거·일자리 등 자립·도전·성장 지원
“네트워크는 자산…한 번 잡은 손 놓지 않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4년 08월 02일(금) 23:51
(2024년 7월 134호=글·정채경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 삶의 기로에 선 청소년들이 당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잘 키워 성인이 된 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도록 옆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학교밖 청소년에 관심을 두지 않던 때부터 3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청소년의 건전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매진해온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의 이미경 원장이 주인공이다. 지난 3월부터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을 이끌게 된 이 원장은 “맥지는 한 겨울 엄동설한을 이겨낸 보리처럼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청소년을 지키자 라는 의미”라며 “교육원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이 땅의 청소년을 살려내고자 만들어진 맥지회가 중심이 돼 청소년의 건전한 문화 육성과 보호를 위한 사회교육·대안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원장은 동구·서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도시속참사람학교, 여성중장기쉼터, 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기관들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인 만큼, 어깨가 무겁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피아노 전공자로 우연히 음악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교밖 청소년들에 주목하게 됐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해 집안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전공했다. 1984년 전남대 음대에 진학해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음악 레슨을 시작했는데,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 우연히 ‘음악 치료’를 접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다친 곳을 꿰매고 약물로 병을 다스리는 것과 달리 음악으로 아픈 곳을 치료한다는 점에 매료돼서다.



그렇게 전공을 살린 음악 치료를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 치료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는 정신병원과 노인·장애인 시설, 다문화센터 등에서 봉사를 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났다. 예술 치료가 널리 알려진 요즘과 달리 음악 치료가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1997년 당시에는 음악 치료에 관한 인식이 자리 잡기 전이어서 싸늘한 반응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꾸준한 마음으로 음악 치료에 매달렸다. 그는 이론을 토대로 실제 현장에서 음악 치료프로그램을 실행하자 참여자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스스로도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음악 치료로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고, 그 자리에 희망을 심은 경험은 그가 ‘진짜 음악’에 다가선 경험이었다.
“음악 치료를 경험해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피아노를 칠 때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잘’ 치기 위해 노력했죠. 돌이켜보면 음악을 아름답다고, 음악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제가 음악 치료를 하면서 그걸 느낀 거죠. 음악으로 사람들이 갖는 내면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감해주고 그게 계기가 돼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같이 힐링이 됐달까요. ‘음악이 정말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구나’ 했죠.”
의술과 예술 모두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같은 경험은 2005년 원광대 일반대학원 보건학과(예술치료전공) 대학원에 들어가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인 음악 치료 활동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만난 이강래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은 그가 학교밖 청소년들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를 통해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과 인연을 맺고 청소년들을 만나게 됐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좋은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니 세상이 아름답죠. 음악 치료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는 귀중한 자산이 됐으니 감사합니다.”
2015년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센터장과 도시속참사람학교 교장을 같이 맡았던 그는 2021년까지 쭉 아이들 곁에 머물렀다. 3년여만 한다는 게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7년이나 맡았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랄까요. 20년 가까이 피아노를 치다 음악 치료를 하면서 2007년 꾸린 음악치료연구소를 통해 만난 아이들과 지금까지 모임을 하고 있어요. 주간보호센터에서 음악 치료도 하고 있죠. 음악치료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프로그램을 하기만 하면 대부분 15년이 넘게 하는 것 같아요. 7년간 하고 쉬다가 올해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원장과 도시속참사람학교 교장을 맡게 된거죠.”
그는 학교밖 청소년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그만 두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행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한다. 대부분은 학교 교육 안에서 적응하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소위 사고를 쳐서 쫓겨난 경우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해 학교밖 청소년을 비행청소년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은 편견이라는 이야기다.하지만 이들이 제도권 밖으로 나왔을 때 삶을 영위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세상은 녹록치 않아서다. 배움과 일자리, 주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면 보호받아야 마땅한 청소년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기 힘들어 사회로 내쳐진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아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 작은 관심만이라도 있었다면 이유 없이 그리 되지 않았을 거란 거죠. 그래서 저를 만나는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거기서 비롯된 성취감과 자존감 형성에 도움을 주려고 해요. 누군가가 베풀어준 선을 감사히 받고 나중에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이 원장은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법정후견인이 돼주기도 한다. 그가 학교밖 청소년들과 부대끼며 산전수전 겪은 배경이기도 하다. 법정후견인이 돼준 형제가 힘들게 마련해준 가전·가구를 팔아먹고, 휴대폰 사기까지 친 채 도망갔어도,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섰지만, 합격 이후 연락이 끊겼어도 그는 아이들 탓을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나는 학교밖 청소년들로 인해 상상도 못할 많은 일을 겪죠. 좀 더 아이들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너무 믿었던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게 닥친 일을 처리하고 다음부터는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고 다짐하죠.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지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죄는 미워도 아이들이 밉지가 않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더라고요. 그 아이들이 언젠가 나한테 정말 진심이었다고 한 번은 느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죠.”
그는 근래 ‘자립’을 돕는 키퍼단 활동에 열심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만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어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혼자서 잘 살 수 있게끔, 또 나와서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끔 지켜내야 한다.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자립청년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딱 한사람만이라도 끝까지 함께 해준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여겨서다. 그런 딱 한사람이 되기 위해 전문직업키퍼, 대학생 키퍼, 자립선배키퍼, 경제적 후원키퍼 등이 똘똘 뭉쳐 아이들 지킴이에 동참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을 걱정하는 세상이죠.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큼 우리 청소년들을 잘 지켜내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한 번 인연 맺은 손은 놓지 않아야 세상이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미래 인재인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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