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장애인과 동등한 장애인 친화마을 조성 앞장” [이웃공감]신혜진 광주 남구 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4년 09월 01일(일) 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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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35호=글·임영진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18년째 도움과 지원의 손길이 절실한 사회 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용인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벅찬 감동과 보람을 느낍니다.”광주 남구 장애인복지관 신혜진 사무국장(40·여)은 2006년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학사) 졸업 이후 줄곧 복지 현장의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다.
신 사무국장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당시 ‘사춘기’여서 인지 몰라도 급격한 감정의 기복, 가치관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또래 친구들과의 갈등도 쉽사리 풀지 못했다. 이렇게 방황하는 자신을 보듬어 주고 붙잡아 준 사람은 당시 담임을 맡았던 윤오현 은사였다. 윤 은사의 진심이 담긴 조언과 응원, 배려는 그가 어려운 시기를 무리 없이 극복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이때 ‘선생님처럼 믿고 든든하게 지원을 해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아동·청소년이 꿈을 꾸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깨달았다”며 “나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고 회상했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뒤 그는 광주 북구 두암동 한 종합사회복지관에 들어가 인근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사회 복지사로서의 첫발을 뗐다.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초년생이 일일이 취약계층 가정 방문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4년간 대학 과정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알코올 의존증, 은둔형 외톨이, 한 부모 및 조손가정, 노약자, 장애인 등과 마주해야 했고, 이들 모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워낙 사례가 다양한 탓에 대화 방식, 접근 방법에 애를 먹어 한계를 느끼고 무기력함에 빠졌다. 여기에 부모의 정신 장애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던 한 10대 청소년이 자신과 관계를 수년째 이어오던 중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만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이 사전 예방을 하지 못해 이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에 자책을 많이 했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현장에서 더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9년간 보낸 시간이 매순간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대상자에게 다가가고, 성심성의를 다해 마음의 벽을 허물었을 때는 다른 무엇에 견줄 수 없는 커다란 성취감도 느꼈다. 남편과의 이혼과 아들의 장애 등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30대 여성은 처음 가정방문을 갔을 때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러나 계속 안부를 묻고 쪽지를 남기는 등의 진심을 보이자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마을 아이들을 돕는 봉사에 나서며 자원봉사자 모임까지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이 됐다.
또 가정방문 도중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가정의 어머니 투신자살을 막을 수 있게 돼 너무 보람찼다고 회상하기도 했다.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복지 실전 경험들이 쌓였고 이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됐다. 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복지를 심도 있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면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원만 제대로 해준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뒤 역량을 키워 더 큰 영역의 복지를 실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전남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생활환경복지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또 꾸준히 교육 연수에 참여했으며 지원 사례마다 특성이 다른 영역을 이해하고,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 훈련도 집중해 나갔다.
그는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보다 장애인 등 특화된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2015년 개관한 남구장애인복지관으로 옮긴 뒤 현재까지 장애인 복지에 나서고 있다.이는 그의 사회복지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그는 남구지역 30여곳과 네트워크를 구축, 물리적·사회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단체인 ‘무장애남구를만드는사람들’을 운영하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자체와 공동 진행한 남구장애인정책포럼, 시설단체 네트워크 사업 등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배우면 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사실 남구장애인복지관이 개관할 당시에는 인근 주민들과의 부족한 소통 등으로 불협화음이 상당했다”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장애인복지 패러다임과 변화를 빠르게 수용한 결과 이제는 주민들이 다양한 특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많은 지원과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1년 4월 광주지역 자치구 최초로 장애인 예술단도 창단했다.이 때부터 장애인들이 남구행복이음합창단 및 중창단, 남구칸타빌레앙상블, 미술창작단, 문학창작단 등으로 활동하면서 전문 장애예술인으로 발돋움해 나갔다. 특히 이들이 수입 창출과 안정된 직업 생활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등 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남구에서는 50여명이 장애인들이 예술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꿈을 키우는 학생들도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시민으로서 당당히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소명 의식으로 삼게 됐고 이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등 헌신하고 있다.그의 노력은 광주시장(2014·2019년)과 남구청장(2018년)의 표창장 수상으로 이어졌다.신혜진 사무국장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시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직업을 갖고 인생을 꾸려 나가지만 장애인들은 직업조차 갖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개인 특성과 영역에 맞는 공공일자리가 제공돼야 하고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일자리가 확대 제공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고 나아가 기존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맺고 있던 관계 또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8년째 도움과 지원의 손길이 절실한 사회 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용인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벅찬 감동과 보람을 느낍니다.”광주 남구 장애인복지관 신혜진 사무국장(40·여)은 2006년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학사) 졸업 이후 줄곧 복지 현장의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다.
신 사무국장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당시 ‘사춘기’여서 인지 몰라도 급격한 감정의 기복, 가치관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또래 친구들과의 갈등도 쉽사리 풀지 못했다. 이렇게 방황하는 자신을 보듬어 주고 붙잡아 준 사람은 당시 담임을 맡았던 윤오현 은사였다. 윤 은사의 진심이 담긴 조언과 응원, 배려는 그가 어려운 시기를 무리 없이 극복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이때 ‘선생님처럼 믿고 든든하게 지원을 해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아동·청소년이 꿈을 꾸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깨달았다”며 “나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고 회상했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뒤 그는 광주 북구 두암동 한 종합사회복지관에 들어가 인근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사회 복지사로서의 첫발을 뗐다.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초년생이 일일이 취약계층 가정 방문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4년간 대학 과정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알코올 의존증, 은둔형 외톨이, 한 부모 및 조손가정, 노약자, 장애인 등과 마주해야 했고, 이들 모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워낙 사례가 다양한 탓에 대화 방식, 접근 방법에 애를 먹어 한계를 느끼고 무기력함에 빠졌다. 여기에 부모의 정신 장애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던 한 10대 청소년이 자신과 관계를 수년째 이어오던 중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만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이 사전 예방을 하지 못해 이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에 자책을 많이 했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현장에서 더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9년간 보낸 시간이 매순간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대상자에게 다가가고, 성심성의를 다해 마음의 벽을 허물었을 때는 다른 무엇에 견줄 수 없는 커다란 성취감도 느꼈다. 남편과의 이혼과 아들의 장애 등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30대 여성은 처음 가정방문을 갔을 때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러나 계속 안부를 묻고 쪽지를 남기는 등의 진심을 보이자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마을 아이들을 돕는 봉사에 나서며 자원봉사자 모임까지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이 됐다.
또 가정방문 도중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가정의 어머니 투신자살을 막을 수 있게 돼 너무 보람찼다고 회상하기도 했다.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복지 실전 경험들이 쌓였고 이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됐다. 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복지를 심도 있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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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면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원만 제대로 해준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뒤 역량을 키워 더 큰 영역의 복지를 실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전남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생활환경복지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또 꾸준히 교육 연수에 참여했으며 지원 사례마다 특성이 다른 영역을 이해하고,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 훈련도 집중해 나갔다.
그는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보다 장애인 등 특화된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2015년 개관한 남구장애인복지관으로 옮긴 뒤 현재까지 장애인 복지에 나서고 있다.이는 그의 사회복지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그는 남구지역 30여곳과 네트워크를 구축, 물리적·사회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단체인 ‘무장애남구를만드는사람들’을 운영하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자체와 공동 진행한 남구장애인정책포럼, 시설단체 네트워크 사업 등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배우면 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사실 남구장애인복지관이 개관할 당시에는 인근 주민들과의 부족한 소통 등으로 불협화음이 상당했다”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장애인복지 패러다임과 변화를 빠르게 수용한 결과 이제는 주민들이 다양한 특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많은 지원과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1년 4월 광주지역 자치구 최초로 장애인 예술단도 창단했다.이 때부터 장애인들이 남구행복이음합창단 및 중창단, 남구칸타빌레앙상블, 미술창작단, 문학창작단 등으로 활동하면서 전문 장애예술인으로 발돋움해 나갔다. 특히 이들이 수입 창출과 안정된 직업 생활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등 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남구에서는 50여명이 장애인들이 예술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꿈을 키우는 학생들도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시민으로서 당당히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소명 의식으로 삼게 됐고 이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등 헌신하고 있다.그의 노력은 광주시장(2014·2019년)과 남구청장(2018년)의 표창장 수상으로 이어졌다.신혜진 사무국장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시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일반적으로 사람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직업을 갖고 인생을 꾸려 나가지만 장애인들은 직업조차 갖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개인 특성과 영역에 맞는 공공일자리가 제공돼야 하고 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일자리가 확대 제공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고 나아가 기존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맺고 있던 관계 또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