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예술을 하기 위해 예술의 도시를 떠나는 아이러니

[칼럼] 무등로에서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6년 01월 02일(금) 10:13
(2025년 11월 통권 150호)지난 8월, 이탈리아 언론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가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화두를 던졌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은 지옥 같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며 “피아노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정치인과
기업인들까지 불필요한 간섭을 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 털어놓았다.
세계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고백은 한 예술가의 개인적 시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예술을 어떤 시선으로 대하고 있는가를 되묻는다.
임윤찬의 고백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예술이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갇혀버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개인의 의지나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창작 환경 전반을 위축시키는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특히 자원과 기회가 제한된 지방 예술 생태계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심화되어 예술의 지속성과 다양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예향(藝鄕)이라 불리며 오랜 문화적 토양을 지닌 광주의 현실 역시 이러한 구조적 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번뜩이는 재능을 지닌 젊은 예술가들은 창작과 성장의 기회를 찾아 삶의 터전을 떠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예술을 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예술의 도시를 떠난다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광주가 현재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 시대의 비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
문화도시 1.0이 공연장이나 전시관 같은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고, 2.0이 축제와 이벤트 중심의 소프트웨어 확산에 머물렀다면, 이제 3.0 시대에는 ‘지속 가능한 예술의 선순환 구조’를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 도시의 문화는 비로소 외부 동력 없이 도 스스로 성장하는 자생력을 얻고 진정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은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의 투자 모델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지역 내 창작 거점을 재활성화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예술인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견고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 인프라를 촘촘하게 재구성하고, 균형 잡힌 재정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지역 문화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문화정책의 핵심 방향이지 않을까?
예술은 도시의 미적 감수성을 고양하고, 시민들의 삶에 깊이와 풍요를 더하는 귀중한 공공재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고백은 한 젊은 예술가의 개인적인 한탄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되묻는 강력하고도 시의적절한 경고음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시대의 문화정책이 어떠한 옷을 입어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치장만 화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면 그 옷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행사’나 ‘성과 중심의 경쟁’이 아니라, 예술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급진적인 기술문명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 시대를 열어가는 광주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참 많다. 광주는 이제 보여주기식 성과가 아닌, 예술가의 삶과 시민의 감수성이 함께 성장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3.0’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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