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 가지 요리를 만들어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해 볼 것입니다."
산골 사찰에서 음식강좌가 열리고 있다. 대중들이 그 산골까지 올까 싶기도 하지만 스무명 남짓 모여 스님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한다. 밖은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고즈넉한 산사는 사찰음식을 배우려는 대중들의 열기가 넘쳐났다. ‘사찰음식 연구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성 백양사 천진암 주지 정관 스님의 음식강좌 풍경이다.
이날 강좌에서 정관 스님은 뚝딱 ‘박속 된장 무침’과 ‘가죽 짱아찌 도토리묵 채’, ‘단호박 짭쌀죽’ 등 세가지 요리를 선보였다. 말이 뚝딱이지 오랜 경륜이 아니면 모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요리들이다. 인터넷에서 레시피(recipe)를 손쉽게 검색하는 세상이지만 스님의 요리는 재료에서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하고, 요리 또한 몸에 좋은 채소들 위주다.
재료와 요리 하나 하나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요리방법을 참가자들에게 알려준다. 호기심 많은 참가자들의 질문도 너끈히 받아주면서 말이다.
참가자들 중 상당한 관록이 묻어나는 주부들 역시 질문을 해가며 스님의 요리 과정을 지켜본다. 그런 뒤 직접 요리 실습에 나선다. 이것이 정관 스님의 요리 강좌의 대체적인 순서다.
지난 8월12일 오후 요리강좌가 있는 날 천진암을 찾았다. 천진암 요리강좌 공간 ‘금발우’에 스님의 요리강좌를 입소문을 듣고 하나 둘 찾아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비웠던 자리가 강좌 중반부를 넘어서자 거의 다 찼다. 15년째를 맞은 스님의 사찰요리강좌가 그만큼 명성이 있다는 반증으로 읽혀졌다.
금발우에서의 요리강좌는 지난달 시작돼 두달째가 됐다.
날씨가 무더운데도 스님의 사찰 요리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뜨거운 바깥 날씨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스님은 일전에는 식재료를 담을 수 있는 냉장고 없는데다 식재료를 산 아래에서 나르다 보면 밤새 퉁퉁 붓기 일쑤였다는 설명이다. 여기다 에어컨까지 없어 더 더울 수밖에 없었다.
"사찰요리 공간이 마련됐지만 사람들이 안 올줄 알았죠. 근데 이렇게들 많이 왔네요. 이 뜨거운 바깥 날씨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 안에는 얼음이 얼고 있어요."
스님의 요리 강좌는 상세한 레시피를 적은 깨알 정보들이 참가자들에게 프린트물로 주어진다. 열심히 받아 적는 사람에서부터 질문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참가자들에게 스님은 "무생채를 물에다 당궈 10초, 매실로 빛깔을 들일 거예요"라면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자신이 한 요리 간을 보면서 "와 맛있다. 아까 짭짤한 맛이 가고 다시 싱거워졌다" 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호박죽이 돼 간다"라는 등 나름의 유머를 곁들여 맛있는 강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꾸준하게 펼쳐나갔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천진암에 오기전 전남 영암 신북면 망월산에 자리한 망월사(望月寺)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화도 소개했다.
“방생을 나갈 때로 기억하는데 차 6대가 갔어요. 당시 군수 사모가 호박죽을 쒀서 가져왔는데 저녁 때까지 쉬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죽 쑬때 오로지 온 정신을 다해 했기 때문에 변하지 않았겠죠.”
이 금발우는 올 3월 건축물이 들어선 뒤 지난 7월 첫 강좌를 열었다. 사실 정관 스님은 4년 전인 2013년 천진암으로 온 뒤도 줄곧 사찰 음식을 위한 수행을 그치지 않았다.
단 1초도 쉼없이 달려왔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스님은 그동안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하면서 사찰음식에 매진하기도 했다. 3, 4일전에도 어깨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그것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난 뒤 요가와 함께 음식조절을 통해 조절됐다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
"저 혼자만 음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을 하면서 마음과 마음자리를 위해 쉼없이 달려왔죠. 부처님 도량이야말로 부처님 집이자 인연있는 사람의 집으로 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수행을 한치의 오차 없이, 게으름 없이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중들 앞에서 음식을 할 때 에너지를 맞춰줘야 더 많은 에너지가 나오지 않겠어요."
자기 몸을 보살피는 것이 ‘음식명상’이라는 스님은 마음의 조율을 해주는 것이 사찰음식이라는 점을 들려줬다.
"제가 아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다고 합니다. 현대인이 다 그렇죠. 음식과 자기조율, 육신의 조절이 함께 가야 합니다. 마음의 조율을 해나가는 한편, 그 마음의 조율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 사찰음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배고프지 않는데 먹는 것을 7가지로 부처님께서는 말했는데 그것을 ‘탐욕’이라고 했죠."
스님은 불법(佛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음식이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식재료와 관련해 자기마음이 가닿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님은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식재료는 늘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자신이 검증을 해야 하고, 자기마음이 온 식재료에 가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재료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컸고, 이슬을 먹고 컸는지 식재료 뿐만 아니라 조리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어떻게 먹을 지, 그리고 언제 먹을 지 시간을 알아야 하죠. 먹고 나서는 그 음식이 자기자신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인식해야 한다. 그 인식방법은 명상입니다."
또 한식에 대한 관심에 대해 언급했다.
"예전 한식은 특정인이나 어머니로 한정됐지만 이제는 20대 여성도 관심이 많더군요. 한식은 우리 음식이잖아요. 사찰음식도 마찬가지죠. 이처럼 20, 30대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방향설정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식을 더 알고 싶어하는 인식이 커졌다는 것 아닐까요."
스님은 음식조절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웃으면서 먹기 △자기 양대로 먹되 작게 먹기 △채소로 먹기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벌려가고 있다. 이 강좌 참여자들에게 이 캠페인을 언약하고 지킬 것도 당부했다.
음식을 만들어 어떤 모양으로 먹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찰을 해 오랫동안 자기자신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음식은 소통이라는 점을 들려줬다.
"스님들은 모두 음식을 잘 할 수 있지만 저는 사찰음식과 자연음식을 인연이 주어지는 한 대중과 함께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정관 스님은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 동화사로 40여년 전 출가해 강원 삼척 신흥사와 전남 영암 망월사를 거쳐 사찰음식 특화사찰을 표방하는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수행을 거듭하고 있다. 부산을 포함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기꺼이 찾아가 사찰음식 알리미 역할을 하는 등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고선주 기자
사진=이승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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