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이 공감하는 작가…더 큰 매체 다룰 터"

[남도예술인] 조각과 회화 병행 최순임 작가
성장기 자취 서린 양림동에 작업실 두고 창작에 매진
아동미술 경험…고양이→회전목마→자연 주제 변화
설치 이어 향후 미디어아트 등 영역 확장해 창작 시도

"음악은 밥벌이었고, 문화운동의 무기였다"
(2021년 7월호 제98호=글 박세라 기자) 그에게 노래는 인생의 무기다. 가난했던 유년시절엔 유일한 친구였고, 청년이 돼서는 생계를 잇는 밥벌이의 수단이었다. 이후엔 줄곧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래하는 문화운동가로 마이크를 굳게 쥐었다. 방년 18세 광주 곳곳 밤무대에서 음악을 시작한 이래 머리가 희끗하게 샌 60대가 되기까지. 노래를 인생의 든든한 무기삼아 살아온 게 어느새 반 백 년이다. 흰 머리와 흰 콧수염을 …
"주민 중심 미술관 구축…평화로운 공동체 상징 구현"
(2021년 6월호 제97호=글 고선주 기자) 그를 떠올리면 가깝게는 2014년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로 마련된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됐던 그의 걸개 그림 ‘세월오월’ 말이다. ‘세월오월’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했다는 이유로 철거 압박을 받아 파문이 일었다. ‘세월오월’은 원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박정희 …
"가능한 차선보다는 ‘불가능한 최선’ 택하는 작가 되고 싶죠"
(2021년 5월호 제96호=글 고선주 기자) 2015년 전시를 열었다고 했는데 그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이름을 복기한 것은 지난 3월31일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프레스오픈 때였다. 주전시동을 모두 둘러본 뒤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진행중인 5·18민중항쟁 40주년 기념 글로벌 프로젝트로 마련된 특별전을 통해서다. 거기에 그가 작품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를 출품했기 때문이다. 그날 현장에서…
"고운 마음의 결 담아…울림 주는 연주 선사"
(2021년 4월호 제95호=글 박세라 기자) 개인발표회를 4시간여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공연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 그와 나는 마주앉았다. 처음 가야금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개인발표회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26년여 세월이 흘러나왔다. 곧 무대에 설 연주자였지만, 떨림 같은 것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무대에 오르는 자 특유의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자신감 같은 것들만 엿보일 뿐이었다. 단단한 내공이 자리하…
"아쟁은 감정을 내보이는 ‘마음의 창’이죠"
(2021년 3월호 제94호=글 박세라 기자) 아쟁을 쥐고 앉으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백 마디 말로 전하는 것 보다, 아쟁의 활을 움직이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됐다. 눈짓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속마음을 알아채는 오랜 친구처럼, 아쟁은 그의 감정을 내보이는 마음의 ‘창’과 같았다. 남들은 구슬프고 애달프다 여기는 아쟁 선율에서 그는 한도 찾고 흥도 찾는다. 우울하면 우울한 마음을 투영했고, 기쁘면 더 없는 즐거움을 아쟁…
"한결같은 가야금 사랑 연주로 풀것"
(2021년 2월호 제93호=글 박세라 기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가야금을 안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녹아 사라졌다. 그저 악기와 살을 닿고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딸아이가 "엄마, 질리지 않아? 그게 그렇게 좋아?" 물었다. 현을 뜯으며 연주를 하면 그 울림이 고스란히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무릎에서 배로, 손끝에서 가슴으로. 그럴 때면 "가야금 하기를 정말 잘했지!" 싶어서 세상 온갖 것들…
"소리에 마음 담아…원 없이 노래했죠"
(2020년 12월호 제91호=글 박세라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 성악은 온 몸 근육을 활용하는 예술이다. 두 다리의 탄탄함과, 배부터 성대를 감싸고 있는 목의 근육을 지나 두성의 울림까지. 힘을 탄탄히 받아야만 흔들림없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들을 자세히 본 일이 있다면 틀림없이 알아챌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정확한 소리를 내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를. 화려한 의상 너머로 전해오는 …
"클래식 모르는 사람들에 제 연주가 위안 됐으면"
(2020년 9월호 제88호=정채경 기자)그의 손에 첼로가 쥐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적 그의 집에서는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족 노래자랑이 열리는 날이면 반주가 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그것을 녹음하고, 들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늘 음악과 함께한 것이다. 첼리스트 윤소희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세에 첼로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하는 타 연주자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
존재 내면 깊숙히 탐구 충실하게 표현하는 작가될 터
(2020년 9월호 제88호=고선주 기자)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1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 나무’ 연작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무에 등을 달아놓은 나무가 신기하고 오묘하기도 해 한참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나무에 등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 빛이었다는 알고서 이 작가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 전과 현재의 그는 수준이 완전 달라진 듯한 느낌이다. (간간이 그의 전…
형들 수감만 20년 세월 아픈 삶의 고해
(2020년 7월호 제86호=고선주 기자) 그의 시에는 아픔이 서려있다. 그의 작품에는 정제되지 않은 채 투박한 삶의 테두리 안으로 국가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개입하는가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던 큰형 박석률과 셋째형 석삼은 유신체제 말기에 날조된 공안사건으로 꼽히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의 주역이다. 그 이전 큰형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앞서 언급한…
"관념 대신 남도 언어로 ‘삶’ 조망 주력" 2020.06.04
"사회적 문제 탐구…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가가 목표" 2020.06.04
"영혼의 메시지 전달…비워있는 삶 채우는 작가 될터" 2020.06.04
"예술가로 ‘인류애’ 향한 선율 선사하겠다" 2020.06.04
"성악가들 한 목소리내는 ‘창구’ 역할 자처할 것" 2020.06.04
"군더더기 털어내고 정리 비우고 사는 것 되새겼죠" 2020.06.03
‘힙합문화’에 매료…삶 아끼고 돌봤으면 2020.06.03
갤러리 여는 것이 꿈 아이들의 미소 진열하고 싶죠 2020.04.19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니 생활 속에서 동심이 발휘되더군요 2020.04.19
"힐링이 되는 세계 더 농밀하게 구축하겠다" 2020.04.19
시간 속 고향 탐구 ‘휴먼 다큐’에 집중 2020.02.03
"시를 쓰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2020.01.01
"삶 가까이에 클래식…힘들 때 위로 되기를 바라죠" 2019.12.12
주민들과 미술관의 공존 문화명소로 자리매김 2019.12.02
"한글 조형 살려 ‘서예 퍼포먼스’ 펼칠 터" 2019.09.10
좋아서 하는 일이 미술이에요 2019.09.05
민족성·정체성 지켜나가 위안주는 춤추고파 2019.07.14
"관객과 호흡… 향토색 짙은 광주 브랜드 공연 힘 보탤 것" 2019.04.28
글 쓰고 연구하며 창작에 ‘몰입’ 정적·동적인 것 한 화면에 구축 2019.04.24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회사연혁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고충처리인광고문의기사제보
광남일보 등록번호 : 광주 가-00052 등록일 : 2011. 5. 2.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광주 아-00193 등록일 : 2015. 2. 2. | 대표 ·발행인 : 전용준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254 (중흥동 695-5)제보 및 문의 : 062)370-7000(代) 팩스 : 062)370-7005 문의메일 : design@gwangnam.co.kr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