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고 소박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문명의 힘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문득여행]이탈리아 베니스 <2>건축의 보고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4년 08월 03일(토) 0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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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한국의 건축물 차이는 목조와 석조로 설명할 수 있다. 대개 목조 건축물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옛 양반가옥이나 사찰건축물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목조건축문화는 매우 낯익은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유독 유년기부터 잊혀지지 않은 문화 중 석조건축물이 있다. 수학여행 때 접했던 불국사와 석굴암, 석빙고 등은 어쩌면 동방 문화와 서양문화의 연계고리가 아닐까 싶다.
석조라고 하는 흔하지 않은 건축재료 뿐만 아니라 목조 못지 않게 정교하게 설교된 문양과 건축기법은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돌을 다루는 것보다 나무를 다루는 것이 건축가들 입장에서 보면 물으나마나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석조건축물에서 목조 못지 않은 정교함을 접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서양의 석조건축물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대규모적이어서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인류문명의 놀라움 그 자체일 뿐 말로 형용할 없어 언어의 빈곤함을 느낀다. 예술의거리가 네모난 작은 규모의 석조 조각들로 깔려 그 위를 거닐며 유럽풍 같다는 느낌을 가져간 적이 있다.
여기다 중앙초등학교 붉은 색 본관 건물이나 북동 성당, 그리고 그 옆 옛 광주기계공장 건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브레디관 같은 건축물을 만나면 묘한 이질감에 휩쌓이곤 했다. 그런데 그들의 석조건축물들에서 개발을 피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보존의 실태를 접할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는 그들이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건축기술이 부족해 그토록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400∼500년 된 건축물들을 껴안고 갈까. 그렇지 않기에 경외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니스는 세계적 물의 도시편에서 언급했듯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서 원형을 파손하지 않고 유지해가는 그들의 사고가 변덕이 심한 우리네와 격차를 벌인 이유로 보였다.
베니스 공항에 밤 늦게 도착해 수상 버스를 타고 본섬으로 들어갔기에 저녁에는 본섬의 본 모습을 접할 수 없었지만 날이 밝으면서 본섬의 이국적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이나 각종 이미지로 봐 왔던 베니스의 실제 풍경이 눈 앞에 경이롭게 다가왔다. 섬 전체에 건물이 여유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요새처럼 펼쳐져 있는데 답답함을 느꼈을 법 하지만 전혀 그러지 않은 점이 이곳의 강점이다. 건물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외관들이었지만 창문을 통해서 바깥 풍경을 보면 군데 군데 여유 공간이 있었다. 뒤뜰 같은 것 말이다. 좁은 면적임에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그들 스스로 일상 속 여유를 가득 들어차 있는 건물들 사이 사이 새겨 놓은 듯했다. 장구한 건축물이다보니 외관의 색상이 매우 컬러풀하는 등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연한 회색빛 혹은 연한 황토빛 건축물들에서 오래 오래 묵힌 시간의 자국들이 마음 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듯한 형국이었다. 건축물들은 구글맵이 아니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네 자리 숫자에 알파벳 한 글자가 더해져 건축물과 번지수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이었다. 4층 전후의 건축물들은 비슷비슷해 헷갈리기 일쑤였다. 필자가 머문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2869A라는 숫자와 알파벳을 보고 드나들어야 했다. 짧게 머물렀어도 ‘우리 집’이라는 말로 대체해 썼으나 오십이 넘은 나이에 ‘우리집’을 몇 차례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건축물들이 비슷한데다 골목들은 슈퍼나 아트숍, 레스토랑 등을 기점으로 해서 익혀두지 않으면 집을 나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곳은 모두 구글맵을 활용한다. 그런데 구글맵이 먹통이 되면 더더욱 갑갑해진다. 현지인들 역시 헷갈려 한다고 하니 얼마나 미로같은가를 여실히 직감할 수 있다.
대개의 외벽은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다. 베니스비엔날레 주전시장인 아르세날레 전시관 밖 외벽이 헐고 낡아서 표면이 흘러내린 흔적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자연스럽게 그것을 수용하는 그들의 정신이 존경스러웠다. 우리 같았으면 시멘트질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군데군데 현대식 건축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질적 건축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1500년이나 된 역사를 안고 있는 베니스이지만 매년 지반 침하와 해수면 상승으로 1∼2㎜씩 가라앉고 있어 100년 후에는 아예 수장될 수도 있기에 건축물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겠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건축물이 마치 무릎까지 물에 찬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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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에서부터 성 마르코 대성당,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산 로렌조 교회, 베니스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리알토, 탄식의 다리, 코스티투치오네 헌법의 다리 등에 이르기까지 눈길을 붙잡는 명소들이 즐비했지만 거주민들이 사는 건축물이 가장 오래 기억에 각인됐다. 불편할 듯 보였지만 거기에 만족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노상 야외 카페에서 커피 한잔 즐기며 오전과 오후의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여유는 어디에서 올까 의아심이 생겼다. 물론 하루에 한 차례씩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 또한 적응해야 했다.
본섬 주변에만 바포레토(수상버스)로 연결되는 리도섬, 무라노 섬, 부라노 섬, 토르첼로 섬 등 100개가 넘는 섬이 자리하고 있다. 조금씩 섬의 특징이 차이가 있지만 골격 자체는 비슷했다. 건축물은 대개 카드 키가 아니라 열쇠였고, 엘리베이터는 늦은 시간에는 작동되지 않은 구조였다. 고딕 양식으로 실내 장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에서부터 서민들이 주거하는 일반 건축물들 모두 소박하면서 수수했지만 성당 건축물 같은 곳은 조각 양식이 고도로 발전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골목 대리석 조각이 깔린 인도는 하이힐이나 굽이 딱딱한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녀야 숙소에 돌아와 발 맛사지를 피할 수 있을 듯했다. 섬은 해수면이 낮아 아예 산이 없는 대신 주택들이 야외 정원이나 공원 빼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건물이 너무 비슷비슷하다보니 길을 잃지 않는다는게 더 이상하다. 돌아다니다보면 건축물이 낡아 보이는데 그것을 국적불명의 건축물로 바꾸지 않고, 법규 범위 안에서 조금씩 고쳐쓰는 듯 보였다. 간혹 만난 정원들은 인간 친화적으로 잔디와 나무, 파라솔, 정자 등 충분히 프라이버시에 침해당하지 않고 쉬어갈 수 있는 뒤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특히 베니스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자르디노 공원이나 산 마르코 광장, 본전시장인 아르세날레 전시장을 오가는 길에 접한 건물들 사이에 널린 빨래를 보면서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빨래가 널려있는 골목은 먼 이국이 아니라 광주 어디쯤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골목은 비좁았으나 간판 천국인 우리와는 달리 일부 벽화 혹은 낙서 같은 글씨를 빼면 아무 것도 장식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골목이 번잡스럽지 않아 오히려 거닐면서 비움의 미학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 숙소인 에어비앤비를 떠나 베니스 슈퍼마켓(Bail)에서 만난 대파를 보면서 4·10총선 전후 한국에서의 대파 논쟁이 떠올라 잠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럽이기는 하나 아랍풍이 섞인듯한 건축물과 여유가 넘치는 거리 풍경이 혼재돼 이국적 향취를 더했지만 그리스로마제국이 융성했던 이태리여서 인지는 모르나 베니스는 유럽 감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건축물은 비슷했지만 우리 아파트처럼 무질서하지 않아 질리지가 않았다. 필자는 그 건축물들에 둘러싸여 베니스의 진한 감성을 느끼며 그들이 이룩한 문명의 힘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