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만큼 가치있는 근대 한옥 지키죠”

[이사람]한옥 지키는 강동수 배무이 대표
유럽 고택 이어 한옥 주목 10여년간 리모델링
건축유산 가치 주목 기록·연구·복원 활동 활발
벽지 브랜드 ‘고사태’ 선봬…판매 활성화 주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9월 25일(월) 17:53
(2023 8월 123호=글 정채경 기자) 열일곱, 그는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에서 그는 주택을 수리하고 숙식을 해결했다. 대대로 내려온 고택들, 전통과 역사가 서린 집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자 오래된 건축물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아 생명을 연장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터를 잡아 삶을 영위했다. 빌딩으로 이뤄진 동네, 거기에 세워진 아파트에서 살아온 그에게 그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귀국해 다시 찾은 광주에서 그는 오래된 한옥이 무더기로 철거되는 것을 목격했다. 구도심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어서다.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옥을 지키기 위해 한옥을 고치는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는 경복 청도에 자리한 청도한옥학교에서 기본적인 기술을 배운 뒤 한국전통문화대
학교 문화유산전문대학원에서 문화재 보존·수리·복원에 관한 실무능력을 쌓고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경험을 늘려나갔다.
10년 가까이 한옥 목수로 활동해온 강동수(27)씨의 이야기다. 이처럼 그는 오래된 건축을 지키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워 그렇게 한옥을 고치는 일에 뛰어들었다. 수도권은 인구가 많다 보니 전문가나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꽤 포진해있지만 한옥 목수를 시작할 때 그가 나고 자란 광주는 그렇지 못했다. 기록도 못한 채 곧 사라질 고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런던과 벨기에를 돌아다니며 그가 쌓은 경험은 고택을 문화재 대하듯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됐다. 그의 인생을 바꾼 값진 경험이 된 것이다.
그는 목수로의 경험을 살려 지난 2020년 한옥 리모델링 회사 ‘배무이’를 설립했다. 배무이는 배를 짓는다는 순우리말이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는 것처럼 사라져가는 집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다고 한다. 상여를 메고 생전에 살던 마을을 도는 과정이 하늘로 배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 그 마음을 담아 배무이라 이름지었다는 설명이다.
한옥 리모델링을 하면서는 건축의 역사적 가치,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는지, 꼭 살려야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연구하고 건축주의 요구와 어떻게 하면 잘 버무릴지를 고민한다.
“포크레인에 철거되는 한옥, 무너져 방치된 한옥들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느낌이 들죠. 그냥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요.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한옥 역시 다 다르고, 지역별, 시대별로 갖는 특징이 있어요. 그 점을 살려서 한옥을 고칩니다.”
강 대표가 촬영한 광주 사동 최부자집(위)과 한옥을 고치고 있는 강 대표

이는 그가 배무이를 시작한 것과 맞닿아 있다. 한옥을 리모델링하면서 문화재 복원 방식에 회의감을 느껴서다. 구한말 이후 한옥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나아가 서양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됐는데 건축물이 본래 지닌 개성들은 문화재로 지정받으면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한옥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디자인이 중앙집권화돼 조선 후기 한옥들이 서울 쪽 한옥 스타일로 바뀌거나 구한말 친일파의 집이었다고 해서 전통 방식으로 바꿔 고치는 게 아쉽더라구요. 일본식, 중국식과 섞인 한옥이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던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해석한 거라 창의성이 돋보이는 것인데도 말이죠. 여러 양식이 혼합된 근대 한옥도 문화재로 인정받는 고택만큼 가치있다 생각하는 이유예요.”
강동수씨는 한옥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라져가는 건축유산을 기록해왔다. 배무이 SNS(인스타그램 @ baemui.naru·페이스북 baemui)에는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발견, 조명한 건축물과 굴뚝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1938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성역 근처 구도심 한일절충식 가옥, 전남 남부지방 한옥의 평면과 벽면 분할방식의 지역색을 엿볼 수 있는 강진 병영의 1944년 한일절충식 가옥, 1945년 세워졌으나 완벽한 처마선을 유지하고 있는 담양 국쾌남 가옥,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4층 중층 한옥으로는 유일무이한 광주 사동 최부잣집 등을 자세히 기록, 공유한다. 1972부터 1975년까지 볼 수 있는 굴뚝의 전형을 보여주는, 1970년대 지어진 광주 지방고등검찰청 뒷편 지산동 한옥단지의 굴뚝이나 광주 북구 풍향동 재개발지역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가옥의 대문 타일, 중흥동 광주식 도시형 한옥단지 등도 사진으로 남겨 도시, 나아가 지역의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근대 한옥과 건축문화유산들에 대해 소개하며 축적한 자료를 공유,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한옥에서 찾은 벽지도 복원해 아카이빙하고 있다. 현재까지 축적한 벽지는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근대 시대별 다양한 지역과 건축물들에서 발굴한 오리지널 1200여종이다. 집을 고치면서 뜯어낸 벽지를 모아놨다 가져와 풀을 벗겨내고 다리미로 펴서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 뒤 이를 스캔해 손상된 부분을 고증, 복원한 것들이다. 이렇게 축적한 디자인은 특허청에 디자인등록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판매에 들어간 벽지 브랜드 고사태의 ‘선화’

강동수씨는 살림집 등 민간 가옥을 전국적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케이스는 배무이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벽지는 트렌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어서 아카이빙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다. 1970년대 이전 벽지를 수집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벽지회사의 경우 오래된 곳은 부도가 나서 없어진 경우가 많고, 현재 창덕궁에서 나온 벽지를 연구해놓은 논문 외에 조선후기부터 한국 근대 시기 벽지를 수집, 연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벽지 아카이빙을 하고, 유럽의 경우 아예 사라진 것도 많아요. 제 눈에는 이 분야가 보물입니다. 벽지들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과 러시아, 중국 등 여러 나라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죠. 동아시아 미술사를 연구하는 느낌이에요.”
벽지 아카이브를 토대로 배무이는 사업을 확장, 한국 근대벽지 복원·판매하는 브랜드 ‘고사태’를 출시해 올해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https://smartstore.naver.com/ gosate/)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 마니산 아래 1945년 해방 직전 지어진 한옥 안방 천장에서 나온 벽지 ‘동화’, ‘숙자’, ‘숙희’, ‘신화’ 등 벽지 12종이 판매 중으로 가짓수는 차츰 늘어날 전망이다.
벽지는 스웨덴 벽지 전문회사 레벨월스에 제조를 맡겨 FSC 인증을 통과한 종이로 만들고 있으며, 필요한 면적을 계산해 주문하면 감자전분으로 만든 천연 도배풀과 함께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벽지 구입 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 벽지 고증이 필요한 경우 오래된 사진자료를 유추해 색감과 디자인을 재현할 수 있고, 특정시기 건물에 들어갔을 만한 벽지를 추천, 고증해 제작도 가능하다.
“근대 벽지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올해부터 제작 벽지 제품들의 판매에 주력하고 있어요. 예전 벽지를 고증하거나 새로운 벽지 창작 등 한국 벽지 문화를 알리는 협업 프로젝트의 문을 두드려 주신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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