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와 기대 속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 두달여를 맞았다.
시행 전부터 예상됐던 법안 해석 혼선과 경제적 타격 우려가 일정부분 현실화되고 대학생의 조기 취업 금지처럼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속출하며 부정적인 여론이 감지됐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부패나 향응이 눈에 띄게 줄었고 직장인들은 보다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2000만명이 법안에 영향을 받는 초대형 법안인 김영란법이 바꾼 우리사회 곳곳의 모습을 살펴봤다.

△김영란법 불똥…사회 곳곳 혼선
"수능 합격떡 선물하면 김영란법에 걸리나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후 처음으로 맞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온라인상에서 관련 문의가 들끓었다.
정답은 ‘No’다. 교사, 선후배, 학부모 단체가 수험생에게 음식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수험생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인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사회 곳곳에서 혼란이 일자 이를 의식해 지난 11월 4일 관계부처 합동 법령해석 지원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확정했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던 마음의 표시마저 법 위반은 아닐지 노심초사하게 된 까닭은 ‘캔커피 논란’이 결정적이었다. 지난달 6일 박경호 권익위 부위원장은 "학생이 교사에게 카네이션과 캔커피를 주는 게 불가능하냐"는 질문에 "사회상규상 허용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나흘 후인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성영훈 권익위 위원장은 "캔커피, 카네이션 선물은 법규위반이 맞다"라고 답해 혼란에 불을 지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혼란한 사이 일부 교육청은 사제관계가 위축되는 것에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전남도교육청은 김영란법에 대한 해석과 간단한 해설집을 만들어 각급 학교에 배포하고 이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광주시교육청도 홈페이지에 청탁금지법 신고센터를 개설해 교사나 학부모, 시민 등 누구나 신고할 수 있도록 해 법 준수를 유도하는 한편 신고자는 법에 따라 보호하고 있다.
한편 여전히 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김영란법 불똥을 맞은 조기 취업생 문제다. 권익위가 졸업 전 취업한 학생이 담당교수에게 취업계(출석)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부정청탁’이라고 해석한 것이 발단이 됐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교수가 특정 학생에게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도 학점을 주는 것은 ‘특혜’라는 권익위의 판단이다.
교육부는 대학가에 떨어진 김영란법 불똥 조기진화에 나섰다. 교육부가 대학에 학칙개정 권고를 보낸 것이다. 비공식 관행인 취업계를 학칙에 반영할 경우 김영란법을 비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고에 불과한데다 ‘대학 자율성 침해’, ‘편법 조장’ 등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점 부여 기준은 교권과 관련된 문제"라며 교육부의 학사개입에 난색을 표했고 고려대, 한양대도 관행적 편의를 제공한 것과 학칙으로 명문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학칙을 개정하지 않은 대학의 경우 취업계 인정여부는 교수 재량에 달려있어 향후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외식에서 집밥으로…업계 희비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업계 희비는 극명했다. 직장인들이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지자 외식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행 전부터 우려됐던 자영업 위기가 현실화 된 모양새다. 반면 집밥문화가 저녁식사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대형유통업계는 식료품구매 상승 등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평소 공무원들의 간담회 및 접대 장소로 애용되던 한정식, 일식 등 일반음식점은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매출은 급감했는데 임대료 등 고정비용은 그대로인 탓에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업주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외식업 종사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외식업에 이어 인쇄업, 화훼업까지 연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내수 경제의 한 축인 자영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한 달을 맞아 지난달 발표한 ‘국내 외식업 매출 영향조사’에 따르면, 총 419개 외식 사업자 가운데 68.5%가 ‘김영란 법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들 업체의 평균 매출 감소율은 36.4%로 이를 외식업 전체 시장으로 환산하면 24.9% 매출 감소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됐다. 업종별로는 일식당의 90.7%가 김영란 법의 영향으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고, 이어 중식당(70%), 한식당(64.9%) 등의 순이었다.
실제 11월 20일 찾은 광주지역 고급식당들은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광주시청 주변의 한 고급식당은 법 시행 하루 전인 9월 27일까지만 해도 막바지 예약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으나 법 시행 이후부터는 점심때 고작 2~3개 테이블에 저녁 예약도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또 평소 손님들로 북적였던 광주 서구 농성동의 한 유명 일식집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 일식집은 김영란에 시행에 맞춰 저가인 김영란 특식까지 내놨지만 해결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였다.
가게 내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고 신발장은 텅텅 비어 대부분 빈방임을 가늠케 했다.
한 식당 관계자는 "김영란 법 시행 직 후 3만원 미만 메뉴도 새로 꾸려봤지만 한참 역부족"이라면서 "직원을 일부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반면 유통업계는 김영란법을 반기는 분위기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집밥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며 대형마트에는 김영란법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의 10월 식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었다. 전체 제품의 평균 매출 신장률(11.5%)을 웃돌았다. 구체적으로는 농·축·수산물 등 신선식품 매출이 14.1% 증가해 가파르게 올랐고, 가정간편식과 가공식품도 각각 14.5%, 11.2% 늘었다.
롯데마트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롯데마트 식품군 가운데 대다수 품목의 10월 매출이 작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가족들 저녁 밥상에 올라가는 반찬류는 35.7% 증가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또한 즉석식품(12.8%)과 유제품(7.9%) 매출액도 전년 동기보다 크게 증가했다. 아울러 축산은 7.9%, 과일과 채소도 각각 7.3%, 9.1% 증가했다.
예상밖의 김영란법 특수를 누리는 분야도 있다. 은행의 모바일뱅크 앱이다. 모임이나 식사자리에서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자 해당기능을 제공하는 앱을 설치하는 가입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의 모바일뱅크 앱 ‘올원뱅크’와 KB국민은행의 ‘리브’는 김영란법 시행 전 월평균 14만명이던 가입자 수가 법 시행 후 각각 30만명, 18만명으로 늘었다.

△공직사회 新풍속도
김영란법 시행 후 공직사회 풍속이 달라지고 있다. 값비싼 한식당이나 호텔을 피하고 식대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고급 접대, 식사 및 향응 제공 등 부정적인 조직문화가 사라지는 추세라 법의 취지와 부합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법 위반을 피하려는 지나친 ‘몸 사리기’로 공직자가 민원인과 만남까지 꺼려 정상적인 소통마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식사자리다. 담당업무 관련 업계나 기관 혹은 언론인과의 만남으로 가득했던 점심·저녁 일정 대신 구내식당을 찾는다. 식사 시간을 피해 약속시간을 잡는 것이 서로 편하다는 입장이다. 불가피하게 식사모임을 갖더라도 ‘더치 페이’가 기본 방침이다.기자간담회 등 홍보 활동을 할 때면 준비하던 식사와 기념품도 종적을 감췄다. 언론인과의 면대면 접촉도 뜸해졌고 오히려 취재기자가 먼저 더치페이를 제안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실제 광주시 구내식당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점심 500인분에서 700인분으로 200인분을 더 늘렸다. 평소 비교적 한적하던 이 구내식당은 현재 매일 수십m까지 줄이 늘어선다.
게다가 대부분 기관은 김영란법 이후 최근 한달에 한 번 꼴로 갖던 언론사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으며, 출입 기자들 역시 더치페이가 일상화하고 있다.
광주시 한 공무원은 "직무 관련성 적용 여부가 모호해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 싶은 약속은 모두 뒤로 미뤘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변화는 업무추진비 감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안전행정위 소관 4개부처(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국민안전처, 경찰청)의 10월 한 달 동안 업무추진비 집행금액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2억 500만원) 줄었다. 기관장·간부의 ‘쌈짓돈’이라는 눈치를 받던 업무추진비가 감축된 것은 선심성 지출이나 낭비요소를 제거한 김영란법의 순기능이라는 평가다.

△문화가 있는 삶으로의 변화
김영란법이 직장인들의 라이프 스타일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점심·저녁시간 불필요한 만남이 줄면서 취미생활을 찾거나 학원 등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휴일에는 접대 대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 문화시설이 붐볐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며 ‘자기 시간’을 찾게된 직장인들이 그간 소홀했던 ‘몸 관리’에 나섰다.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피트니스 센터 관계자는 "보통 연초에 등록이 몰리는 것과 이례적으로 10월 등록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스포츠용품 업계에도 반영됐다. 대표적인 ‘접대용 스포츠’로 꼽히는 골프용품 판매는 주춤한 반면 여가시간을 활용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탁구, 테니스 등 생활체육용품의 판매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일부터 최근까지 매출동향을 분석한 이마트에 따르면 골프용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했다.
반면 탁구, 테니스 용품 매출은 각각 27%, 15% 증가했고 등산, 헬스, 수영 용품도 47%, 32%, 19% 늘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아카데미와 학원을 찾아 자기계발에 힘쓰는 직장인도 늘어났다. 신세계 백화점은 주부 수강생이 몰리는 오전 11시, 오후 2시 강좌 수요보다 퇴근시간과 맞물린 오후 7시, 8시 강좌의 인기가 앞선 것은 올 들어 처음이라고 밝혔다. 어학원들도 직장인 수요에 맞춰 저녁시간대 비즈니스 중국어, 일본어 등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김영란법 이후 휴일을 활용해 대체적으로 문화시설을 찾는이들이 늘었지만 업계별 희비는 갈렸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 영화 관람객 수는 196만 2017명으로, 시행 전 직전 주말(95만 8259명)과 비교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별한 신작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휴 효과를 고려해도 김영란법의 효과가 예상보다 컸다는 게 영화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향후 개선 방안과 과제
김영란법이 시행이 부패방지·청렴사회 구축이라는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불확실성과 과도한 규제라는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권익위의 오락가락한 유권해석은 불확실성을 부추겨 사회전체에 경직된 분위기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에 명시된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와 ‘사회 상규에 관한 금품’의 경계가 모호해 일상의 수많은 사례들을 일괄적용하기 어렵다. 또한 시행령의 ‘직접적 직무관련성’이라는 개념도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현실성 있는 사례제시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허용된 금액 한도를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화훼·농축수산 도소매업·음식점업 관련 중소기업·소상공인(300곳) 설문조사 결과 매출하락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현재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김영란법 기준을 현실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48%)는 답변이 많았다. 피해 업종·품목에 대한 적용예외 설정(38%), 조속한 소비촉진 정책 마련(37.3%)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김영란법 부작용이 예상보다 크다"며 "법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