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길을 타고 승용차로 십오 분쯤 달리면 피아골 연곡사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왼쪽의 연곡천 뒤로 산비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계단식 논들이 보인다. 연곡사로 들어가는 도로의 단풍나무 가로수가 핏빛처럼 붉다. 이래서 피아골인가.
피아골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의 아지트여서 토벌 군경과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피아골의 이름도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실제 피아골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서 오곡의 하나인 식용 피(직 稷)를 많이 가꾸었기 때문에 피밭골이라 불렸다가 바뀐 이름이며, 피아골 입구의 직전리(稷田里)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연곡사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로 개인당 2천원을 징수한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근거 없는 돈을 사찰 측이 일방 징수하는 것으로, 방문객들의 기분을 망치게 한다.
연곡사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을 보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된 절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5년(1627)에 소요대사 태능이 복구했다. 구한말과 한국전쟁 때 다시 파괴되었다가 근래 들어 중창불사가 크게 이뤄졌다.
연곡사의 본체는 소실된 뒤 다시 지어진 것들이지만, 동승탑과 북승탑, 서승탑, 삼층석탑 등 많은 국자지정 문화재가 남아있어 사찰의 품격을 유지해주고 있다.
동승탑은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국보(제53호)로 지정됐고, 그 아름다움과 보존 상태도 가장 좋다.
연곡사 동쪽에 세워져 있는 승탑이라고 해서 동승탑으로 명명됐으며,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았다.
하대석은 2단으로 하단에는 구름무늬를, 상단에는 사자를 조각했다. 중대석에는 둥근 통 모양의 안상 속에 팔부신중을 두었다. 상대석 역시 2단으로 나누어 연화무늬와 기둥 모양을 새겼다. 옥개는 2중 연목과 기왓골이 정교하게 모각되었으며, 상륜에는 봉황과 연화무늬를 새긴 석재가 얹혀 있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기단이 다소 높아 보이는 것 외에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승탑 바로 앞에 동승탑비(보물 153호)가 위치해 있다. 비의 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또 동승탑에서 뒤쪽으로 5분여 산비탈을 오르면 북승탑(국보 54호)이 있다.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이 승탑은 동승탑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해 동승탑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여균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