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촌은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다.
쌀은 남아도는데 처분할 곳이 없으니 곳간을 채운 쌀가마가 짐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은 걱정을 더한다. 올해 농사는 끝났지만 당장 내년 봄이 문제다. 가뭄이 길이어질 경우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게 요즘 농촌의 현실이다.
여기에 고령화와 이농 등으로 농어촌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런 근심을 가장 가깝게 체감하는 곳이 한국농어촌공사다.
지난 10월 28일 제8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정승 사장은 이 같은 농촌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제23회 행정고시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정 사장은 농림부 농촌개발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농촌경쟁국장 등을 거쳐 농식품부 2차관을 지냈다.
농림부에 식품 산업 분야가 통합된 지난 2008년 식품산업본부장을 맡아 식품 산업 진흥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장,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 농수산과 식품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취임 후 국회와 정부, 유관기관, 지역본부 등을 방문하고, 내년도 예산과 농어촌 관련 법률 개정 등 현안사항의 우선 해결을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정승 사장으로부터 농업과 농촌 문제 해결 방안 등을 들어봤다.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한 소감은.
한국농어촌공사는 100년 넘는 기간 동안 국민의 주식인 쌀 생산기반 관리와 농어촌 지역발전이라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기관이다.
농식품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농지은행 사업의 초기 정착, 농업 생산기반 시설관리 업무와 가뭄대책 수립 등을 맡아서 했다. 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돼 매우 영광이다. 동시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기후변화, 시장개방, 농어촌 고령화와 공동화 등 대내외적 환경변화로 공사의 사업구조와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경험과 역량, 열정을 공사가 새롭게 도약하고 시대적 소명을 수행하는데 쏟을 것이다. 미래를 향한 도전정신과 과감한 변혁의지, 정부·유관기관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국 농어업 발전의 주역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고향인 전남에 본사를 둔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며 성장하고 꿈을 키웠다. 평소에도 지역 발전을 위해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농어업의 발전과 농어촌의 행복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이 돼 뜻 깊게 생각한다.
본사가 있는 빛가람혁신도시의 발전과 시도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지역 농어민들의 목소리를 적극 청취해 농도인 전남과 문화수도 광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 다할 것이다.

-농식품부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그동안의 경험과 약력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공직을 처음 시작한 게 행정고시에 합격한 1979년이다. 36년 동안 농어업·농어촌 관련 분야에서 일했다.
농식품부에 근무하면서 농업생산기반시설 종합 관리, 가뭄 대책을 수립했다. 관련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도 했다.
대규모 간척농지 활용 방안도 수립하고 추진했다. 농지은행 제도 기반을 구축하는 업무도 맡아 했다.
농어촌 정비법 개정, 도농 교류 촉진 사업 같은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대중 정부시절에 농어촌 정보화 지원 정책을 입안해 농어촌에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인터넷 정보화 분야에서 만큼은 도농 간에 격차가 없도록 했다고 자부한다.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 농식품 연구개발사업의 정착을 주도 했다. 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 재임하며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 농어업 환경의 변화를 진단한다면.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변화와 농어촌의 저출산·고령화는 국민안전과 복지에 대한 정책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지속되는 세계화의 흐름은 시장개방에 대한 도전은 물론 수출농업 및 해외농업개발이라는 새로운 기회도 주어지고 있다.
농어업은 스마트팜, ICT 융복합 등 신기술 활용, 6차 산업화 확대 등 4차 혁명의 중심으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사를 둘러싼 환경은 더욱 혁신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농업생산기반 조성사업은 축소되는 반면, 지역개발과 농어민 복지 확대, 수출농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기존 주력사업과 신성장동력사업을 양축으로 추진·육성하는 ‘양손잡이 경영’으로 재도약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업무와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농어촌공사는 1908년 설립됐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쌀 자급 달성을 비롯해 국민의 먹을거리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새만금을 비롯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국토를 확장해온 기관이다. 농지은행, 지역개발, 노동 교류 등 농어업인의 소득 증대와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 시장 개방, 고령화와 공동화 등 농어촌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농어촌공사의 사업 구조와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농어촌 관광·체험 수요와 귀농·귀촌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쌀 소비 감소와 밭 기반 정비 수요 증대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한 사업 고도화와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앞으로 공사를 어떤 방향으로 경영할 것 인지.
기존 사업의 성장 수준과 수명 주기를 다시 진단하겠다.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투자·배분)가 무엇인지 도출해 사업 방향을 재설정하겠다.
기후 변화나 인구 사회학적 변화, 영농 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맞게 주력 사업을 고도화 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간척지 활용, 어촌·해외 사업 추진, 도심지 저수지 재활용 등을 통해 새로운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자립 경영’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영산강·화옹을 비롯한 대규모 간척지를 활용한 수출농업단지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업무시스템과 조직문화도 개선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 고객 중심의 서비스 제공으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공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정부, 유관기관은 물론 공사 부서 간에도 동반 성장을 지향하는 협업경영, 열린 경영을 추구할 방침이다.

-농정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기존 사업을 어떻게 바꿔 나갈 계획인가
공사의 경험과 기술력은 살리고, 미래 산업의 혁명적 환경 변화에 맞게 기존 사업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공사는 노후화된 농업기반시설 정비와 안전보강 등 기후변화 대응과 과학적인 재해대비 및 국민안전시스템 강화에 중점을 두겠다. 시장개방에 대응해 성숙기에 접어든 농지은행 사업의 지속 성장과 효율성을 위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쌀 생산 중심의 생산기반 관리에서 벗어나 작목별 맞춤형 영농이 가능한 농지범용화와 밭 기반정비 등 정책대안을 수립해 나가겠다.

-미래 사업 창조를 위한 자세한 계획은.
공사가 선점할 수 있는 신규 사업의 개발·정착은 공사와 우리 농어촌의 100년 미래를 위한 필수과제다. 신성장동력사업과 수익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정착할 계획이다. 새만금, 영산강, 화옹을 비롯한 대규모 간척지를 활용한 첨단기술·고품질의 수출농업단지 육성도 추진하겠다.
현재 시범단계에 있는 어촌수산분야 신규 사업의 정착에 중점을 두고 해수부 등 유관기관과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해외사업은 선택과 집중, 효율과 성과중심에 바탕을 두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공간과 지역으로서 농촌과 어촌, 산촌에도 사업 아이템이 있다. 축소되거나 변경된 도심지 농업기반 시설에 지자체와 민간자본을 유치해 주택단지, 도시농업공원, 도심지수변공원 조성 등 수익모델 창출 주도하겠다.
스마트팜과 ICT물관리 등 4차 산업혁명기술을 시설농업, 수출단지에 적용해 농어업 미래를 이끄는 중심기관으로 자리 잡아 가도록 하겠다.

-경주 지진 이후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리 시설의 안전 상황은.
지진으로 노후 저수지와 시설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가뭄과 태풍, 홍수 같은 기후변화 문제도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재해가 매년 반복되고 또 심해지고 있다. 상시적인 예방이 중요하다. 상습 피해지역과 노후 수리시설을 미리 정비하고 현대화하겠다. 특히 기준 수리시설은 30년 빈도 강우(30년 만에 일어나는 최고 수준의 홍수에 대비) 기준 설계를 적용했는데 맞지 않다.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수리시설 내진 보강을 강화하는 건 농어촌공사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게 하겠다. 시급한 지구부터 시작해 1년 안에 내진 보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과학적으로 물 관리를 해나가는 시스템도 확충하겠다.

-전남지역 농어촌의 현실과 대안은.
전남은 풍부한 농지와 기반시설을 보유하고 국내 농업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공사 관리 저수지의 약 3분의1인 1044개가 전남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풍부한 자원에 안주하지 말고, 생산·유통·관광 등을 결합하는 6차 산업과 신기술 도입 등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농어촌 비율이 높아 지역의 고령화와 공동화도 더욱 심각되고 있는 만큼, 정주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역개발과 2030세대에 대한 농지 지원을 확대해 청년농업인도 육성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점이 사실이지만 농어업·농어촌 분야 발전을 통한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해나가야 한다.

-광주.전남지역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궁금하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만큼 지역인재 채용에 적극 나설 것이다. 현재 5급 신입사원 217명을 뽑는 공채 진행 중이며, 광주전남지역 학교 출신 인재를 10% 이상 채용할 방침이다.
농어촌 노후주택 개선, 홀몸노인 대상 도시락 배달, 겨울철 김장 나누기 등 지역 수요에 맞는 사회공헌활동 추진이다. 지자체, 공공기관과 상호 협력해 혁신도시의 성공모델을 창조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사는 여러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며 농어촌의 발전을 이끌고 세계 최고 수준의 농어업 전문기술을 쌓아왔다. 이제는 목표의식에 대한 추진력, 화합과 소통으로 국민이 신뢰하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는 공사로 새로운 역사를 열어갈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 모든 열정을 쏟아 한국농어촌공사가 재도약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 농어촌공사가 만들어갈 혁신과 도약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정승 - 1958년 완도군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대학원(행정학 석사), 강원대 대학원(농경제학 박사)을 졸업했다. 79년 제23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농림부 농촌정책국장,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본부장,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으로 일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세종대 바이오산업자원공학 석좌교수로도 일했다.

양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