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뜻 나서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인심 속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게 비추듯 자기를 희생해 남을 돌보는 이가 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하반신마비라는 절망을 딛고 성인이 되어 40여년간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에 희망을 전하고 있는 박용구 광주곰두리봉사회장이 그 주인공.
그를 만나 장애를 이겨 낼 수 있었던 원동력과 자원봉사를 나서게 된 배경을 직접 들어봤다.

- 어릴 적 큰 장애를 겪었다고 들었다.
초등학생 때 수업시간 중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됐다. 병명도 못 찾을 정도니 원인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진짜 장애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한없이 슬펐다. 괴로움과 무기력한 절망이 나를 뒤덮었다. 하지만 가족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3년동안 매일처럼 나를 업고 2km나 되는 거리를 등·하교 시켰다. 수소문 끝에 영험한 한의사를 찾았고 1년이 넘는 고단한 치료 과정도 묵묵히 기다려줬다. 6~7년을 움직이지 못해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다리가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견딜 수 있던 힘은 가족이었다. 혼자라면 못했을 일이다.

- 봉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병고에 누워있을 때 매일 되뇌었던 약속이 있다. ‘이번에 낫게 해준다면 성장해서 무슨 일을 하든, 저처럼 걷지 못하고 앞을 못보는 장애인을 위해 평생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돕고 살겠습니다.’ 그 때의 간절한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도 빌고 또 빌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정안수를 장독위에 떠 놓고 내가 건강을 되찾아 만인이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빌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다. 내게 봉사란 다시 일어서게 한 꿈과 희망이었다.
스스로 걷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는 일을 큰 장벽으로 느꼈던 시절을 겪은 만큼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 택시 운전대를 잡은 계기가 특별한 것으로 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땐 직장생활과 병행했다. 10년간 청소, 시장보기, 편지 부치기 등 일상생활에 걸친 봉사를 했다. 그러나 차가 없다보니 정작 관심인 이동권과 관련한 차량봉사를 할 수 없었다. 직장생활도 하며 이동권 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던 중 찾은 묘책이 택시운전이었다. 택시 운전을 하며 길에 보이는 장애인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무조건 모셔다 드렸다. 또 어려운 가정형편과 장애로 학교 등하교가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등하교했다. 유덕동 장암리 다리 주변에서 임동까지 5년간, 방림동에서 각화동까지 2년 7개월동안 등 총 12년 4개월 동안 4명의 학생들을 아침저녁으로 등·하교 시켜 졸업을 도왔다. 졸업하던 날, 꽃다발을 주는데 마음이 벅차올랐다. 기쁨의 눈물이 흐르며 그 동안 힘들었던 시절도 눈 녹듯이 녹더라. 그 때 그 보람과 행복은 내게 바꿀 수 없는 황금과도 같다.

- 현재 펼치고 있는 봉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광주광역시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에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70세 이상 거동불편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동권 차량봉사를 하고 있다. 병원, 관공서, 은행, 복지관, 터미널, 역전, 장애인단체각종행사가 왕복이 주된 업무다. 편지 부치기, 택배배달, 전자제품 수리배달, 물품구입배달, 도시락 배달 등과 같은 일상생활 편의사항도 도와 드린다. 장애인학생들 등하교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병원동행, 이삿짐 운반서비스도, 이불빨래 같은 일도 돕는다. 그 외에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일을 한다. 하루에 차량 15대로 120~130건 정도의 봉사활동을 해결하고 있다.

- 평소 농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안다.
농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애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저를 포함해 농촌에 계시는 분들의 교통이 너무나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또 농촌 고령화 문제로 어르신들이 이불빨래를 제대로 못해 불편을 겪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농촌에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교통봉사와 이불빨래 봉사를 진행하게 됐다.

- 봉사하며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지금이야 ‘봉사’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고 봉사할 수 있는 여건도 많이 향상됐지만 내가 봉사를 시작한 1960~70년대에는 아니었다. 오히려 ‘봉사는 무슨 봉사냐’며 비아냥 듣기 일쑤였다. ‘혼자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봉사냐’는 차가운 시선이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당시 사회가 많이 각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장애인, 독거노인과 마음이 통하는 봉사를 하려면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줘야 한다. 그 믿음이란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도, 믿음을 주는 것도 해결방법은 꾸준함 밖에 없었다. 말뿐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스스로도 진심이 없고 말로만 하는 봉사는 헛된 봉사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진심을 전달하자 시선도 바뀌고 언론에도 소개되며 인정받았다.

-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 설립은 어떻게 이뤄졌나
재임중이던 박광태 전 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봉사단체 운영비 지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박광태 전 시장께서 법인설립과 함께 '광주광역시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라는 단체명을 제안해 주셨고, 그것을 계기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내 소원을 들어준 적이 있다. 2001년 전국에서 봉사로 유명한 활동가 160명이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그 때 광주에서 6명이 뽑혔는데 기쁘게도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관이 와서 나보러 제일 뒤에 가서 서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대한민국 봉사왕으로 선정됐으니 성공사례를 발표하라고 주문하더라. 그래서 40년 봉사활동 사례를 30분간 발표했다. 그 기회로 대통령 내외분을 혼자서 만날 수 있었다. 김 대통령께선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시길래 전동휠체어가 부착된 리프트카 차량 도입을 소원으로 꼽았다. 소원은 그 즉시 이뤄졌다. 이듬해 서울시를 시작으로 각 시도에 이동지원센터가 생기고 리프트카 차량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이 발전하는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김대중 전 대통령께는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각종 수상내역이 화려하다.
2000년 무렵 이동지원센터가 서울에 생기면서 본격 적으로 리프트카 차량이 전국으로 확산, 당시 상황과 맞물리면서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대한민국 봉사왕부터 국민훈장목련상, 우봉대상, 아름다운실천대상, 사회공헌대상, 전국자원봉사자협의회 봉사대상, 보건복지부 표창, 교통부장관표창, 광주장애인총연합회 공로상 등 60여개의 훈·포장을 받았다.

- 봉사를 시작한 이 후 가장 큰 도움을 줬거나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든든한 지원가이자 아내인 문양례 여사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는 23년동안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근무하고 이후에도 식당, 공장에서 고되게 일했다. 그 수입금 전액을 장애인과 어르신 봉사를 하는 내 사무실운영비와 차량유지비에 지원했다. 어렵게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봉사활동을 그만 두고 돈을 벌어야하는지 고민했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준 사람은 아내였다. 오히려 내게 ‘당신도 엊그제 장애인이었던 걸 잊었느냐, 그 때 남을 돕기로 한 약속을 깨려고 하느냐’며 질책했다. 연약한 몸으로도 평생 뒷바라지 해준 아내는 어쩌면 나보다 더 강인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법이 필요 없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법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려면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여기면 된다. 27살 때부터 믿어온 글귀다. 직접 붓글씨로 "남의 일을 내일처럼 생각해라"고 써 봉사단체 사무실에 붙여 놓았다. 그 믿음은 여전하다. 모든 사람이 봉사자가 되면 법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는 배려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습관처럼 들이는 게 필요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광주광역시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 업무를 확장하고 체계화하고 싶다. 지금의 인력으로는 장애인과 어르신의 봉사 수요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 200여건의 전화접수 신청을 받지만 차량과 인력 부족으로 매일 120~130건만 해결하고 있다. 우선순위에 따라 일부 요청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이 짐처럼 쌓인다. 누군들 자신의 일이 급하지 않겠는가. 저희에게 전화를 주셨다는 것은 스스로 못하는 일을 부탁하신 것인 것인데 다 수용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남은여생은 더욱 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함께 살고자 한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걸어온 길이 자랑스럽지만 앞을 보면 볼수록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의 힘든 삶이 떠오른다. 그들의 눈과 발, 수족이 되어 평생 동안 심부름꾼으로 남고 싶다.

- 끝으로 지역민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자원봉사자가 숫자상으론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원봉사자와 관련된 일자리가 늘었을 뿐이다. 실제 자원봉사의 일자리 유형별로 장애인활동보조, 노인요양보호사, 공공근로, 지역공동체, 자활근로, 노인일자리, 숲 지킴이, 청년일자리,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으로 취업을 하다 보니 자원봉사자의 일손이 너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저야 어릴 적부터 평생 봉사를 약속했기에 꾸준히 단체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매번 뒤따른다. 시민과 관계기관들의 관심과 사랑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프로필> 박용구 회장
·1977 (前)광주 장애인무료차량봉사회 창립회장 취임
·2003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수상
·2004.10 광주시민사회단체 총연합상임공동대표
·2008.4 (사)광주곰두리봉사회 회장 취임
·2009 아름다운장애인먼저실천대상수상
·2012. 6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중앙회 우봉대상수상
·2012.11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봉사부분)
·2012.12 (사)광주곰두리봉사회 단체대통령표창(봉사부분대상)
·2014. 2 한국자원봉사자협의회 상임대표표창장수상
·2014. 3 국민문화복지장애인협회 광주시협의회 회장 취임
·2014.7 (사)광주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 이사장 취임

고귀한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