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하고 심벌즈가 울렸다. 연주회 내 쉬다가 터트린 ‘한 방’이다. 오케스트라 선율을 가르는 완벽한 강타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에는 심벌즈가 딱 한 번 등장한다. 악보는 볼 것도 없이 간단하다. 몇 십 마디를 쉬다가 절정의 순간, 단 한 번의 강타만이 필요하다. 그래서 뭣 모로는 클래식 초보자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나도 치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법 하다. 다른 악기에 비해 연주 시간이 짧은데다 주법도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일 뿐. 타악기 연주자들은 이 단 한 번의 완벽한 연주를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하고, 연습하고, 또 마음을 다 잡는다.

광주시립교향악단 이현동 상임단원은 타악기 부문 ‘멀티 맨’으로 통한다. 심벌즈, 큰북, 작은북, 팀파니, 비브라폰을 비롯해 트라이앵글, 탬버린, 캐스터네츠 등 두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섭렵하고 있는 그다.
"타악기 부문이 보기엔 가장 쉬워 보이지만 사실 오케스트라에서 제일 바쁜 파트예요. 다른 관악기나 현악기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이면 바이올린, 플루트면 플루트 등 하나의 악기로 제 역할을 하면 되지만, 타악기 분야는 다르거든요. 어떤 때는 큰 북을, 또 이따가는 실로폰, 이후엔 심벌즈까지 모두 다룰 수 있어야 해요."
실제 타악기 부분의 ‘음표’는 간단하지만 이 음을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힘으로 칠지 고민해야 한다. 심벌즈를 예로 보자. 악보상으론 ‘반박’만 소화하면 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심벌즈의 크기, 두께 등 악기 종류에 따라서도 소리가 변한다. 어떤 종류를 쓸 것인지도 연주자가 직접 결정한다.
연주할 때 각도도 중요하다. 아래서 위로 올릴 것이냐, 위에서 아래로 내려칠 것인지도 고심할 부분이다. 챙, 철, 쾡, 창 등 100번 치면 100번 다 느낌이 다른 게 심벌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연주자의 마음가짐이란다.
"밝게 또는 어둡게 심벌즈 소리를 내는 것에서는 연주자의 마음에서 나오죠. 좋은 소리는 연주자의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믿거든요. 특히 음정이 없는 타악기의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악기의 ‘세기’로만 감정이 전달되는 것이잖아요. ‘탁’ ‘탁’ 치는 것에도 저만의 상상력을 담아내 작품에 어울리는 간격·세기·울림으로 표현해야 하죠."
멀티를 요구하는 자리이지만, 또 ‘퍼펙트’하기도 해야 한다. ‘꽂아 넣는 것’과 같이 완벽한 타이밍의 연주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 연주회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의 음정이 불안하다는 것은, 일반 청중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심벌즈와 같이 ‘튀는’ 악기의 박자가 어긋난다면 단박에 알아챈다. 타악기 연주자들이 실수 없는 연주를 위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 악보에 그려진 음표·박자만 보고 있어선 안돼요. 연주하는 구간 보다 쉬는 마디가 훨씬 많기 때문이죠. 악보만 좇고 있다간 낭패를 볼 가능성이 커요. 차라리 전체 흐름을 잡고 따라가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죠."
여기서 ‘때’란 절정에 다다른 연주에 결정적인 ‘양념’을 치는 일이라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타악기’의 시원스런 두드림을 대체할 만한 악기는 없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이 같은 유일함이 그가 꼽는 타악기의 최대 매력이다.
그런데 무대에서 제대로 된 타이밍을 잡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오케스트라 무대 홀, 연주자들 간 간격이나 위치에 따라 ‘시간차’가 존재하기 때문. 쉽게 말해 타악기 연주자가 들리는 선율에 따라 악기를 치면, 이미 반 박자 쯤 놓치게 된다. ‘잔향’을 계산해 쳐야만 전체 오케스트라 선율에 알맞은 박자를 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씨가 보는 악보도 특별하다. 각 연주자들은 악기별 악보를 보지만 그의 앞엔 모든 파트가 한 눈에 보이도록 기보돼 있는 ‘스코어’ 악보가 놓여진다. 지휘자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타악기를 전공한 그가 지휘 공부에도 열심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단원은 2012년 광주대 문화예술대학 음악과 관현악지휘 공부를 시작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더 좋은 연주를 위해선 다른 악기들의 특색·연주기법 등을 전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죠. 아는 만큼 들리는 것처럼. 많이 알고 들어야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믿어요. 지휘 공부에 발을 들인 만큼 후에는 지휘자로서 데뷔 무대도 가져보고 싶어요."
타악기는 사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현악기, 관악기 등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는 오케스트라 뒤편에서 음악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와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편성되고, 더 다채로운 음색·효과 요구되자 주목받은 것이 타악기 분야다. 이유는 악기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각기 다른 음 높이를 가진 깡통 다섯 개, 소라, 사이렌 심지어 신문지를 찢는 소리까지 ‘저게 무슨 악기야?’라고 생각 할 수 있는 것들이 타악기의 범주로 들어왔어요. 오케스트라에서 실험적 효과·음향 색을 돋보이게 하는 데 타악기가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 그 또한 무대에서 ‘고무호스’를 휘두른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문화전당 창작연주회에서다. 원래는 줄에 나무 조각을 매달아 돌리는 것이었다. ‘쉭쉭’ 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혀 소리가 나지 않자, 더 묵직한 고무호수로 장르를 바꿨다. 온 철물점을 돌아다니며 호스란 호스는 다 돌려봤다는 그다.
유리병은 물론이고, 놋그릇도 두들겼다. 무대에서 ‘탕~’하고 총까지 쏘아봤다하니, 더 말해 뭐할까.
다루는 악기가 많다보니, 숙제도 쌓여있다. 악기 관리부터 연습까지 잔일도 많고 노상 두들기는 것이어서 체력 소모도 센 편이다. 중학교 때 드럼으로 입문해 거의 모든 타악기를 섭렵하기까지 그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두드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이 상임 단원은 타악기 연주자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인내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기다림 끝에 절정의 순간이 오듯, 인내 끝에 다디단 결실이 맺어질 것이라는 게 이 단원의 생각이다.
"모든 악기가 마찬가지만 타악기 분야엔 특히 인내가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마스터해야 할 악기가 많고, 계속해서 악기도 늘어나고요. 박자감각이나 리듬감도 노력하면 분명히 더 나아진다고 믿거든요. 그 무엇보다 두드리는 재미를 알아야하겠죠. 재미있으면 힘든 것도 잊게 마련이잖아요."
이씨의 타악기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2012년 타악기 연주자 3명으로 구성된 ‘햄코’ 무대도 준비 중이다. 타악기 분야와 대중들과의 보이지 않는 ‘간극’을 줄여 나가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라고 믿는 그다.
"타악기가 더 이상 ‘시시한’ 악기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연주자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타악기가 주가 되는 창작곡도 더 많이 선보일 생각이고요. 또 지휘공부에 발을 들인 만큼 지휘자로서 데뷔 무대도 가져보고 싶어요. 그 무엇보다 광주시향 타악기 부문의 ‘멀티맨’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해야겠죠?"

△이현동 광주시향 상임단원은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졸업
-부산YMCA청소년오케스트라·대구관악합주단·영남타악기앙상블·대구국제현대음악제 DCMF앙상블 단원 활동
-마산시향·대구시향·포항 시향 객원 연주자
-광주대학교 관현악지휘 박사과정 수료
-HAMCO 타악기앙상블 대표
-광주대 겸임교수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박세라 기자·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