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능주에 가면 조선 중기 새 정치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한 젊은 유학자의 슬픈 이야기를 기록해둔 비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정암 조광조 적려유허비(전남도기념물 제41호)가 그것이다.
조광조(1482∼1519)의 호는 정암으로, 김굉필에게서 수학하였으며 뒷날 김종직의 대를 이어 사림의 영수가 되었다. 중종 10년(1515)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중종 14년(1519)에는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를 당해 이곳 능주 지방으로 유배되었으며, 그해 12월 20일에 사약을 받았다. 기묘사화는 불필요하게 지급된 공신들의 대우를 삭제시킨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추진한 조광조 등 신진 사림들이 남곤·홍경주 등의 훈구파에 의해 숙청된 사건이다.
조광조는 기성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록 사약을 받았지만 그가 죽은 후 선조 대에 이르러 영의정에 추증돼 문묘에 배향됐다. 훗날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는 후학들에 의해 곳곳에 사당이 마련되고 서원도 설립됐다.
이곳 능주의 적려유허비 역시 1667년(현종 8) 4월 능주목사인 민여로가 건립한 것이다.
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되어 갔던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말한다. 즉 조광조 적려유허비는 조선 중종 때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다 훈구파의 모함에 빠져 이곳으로 유배당한 뒤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조광조 선생의 옛 자취를 기록해 둔 비를 가리킨다.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은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이다. 비몸에는 앞면에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는 글씨를 2줄의 해서체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선생의 유배 내력을 적었다.
비문은 의정부우찬성을 지낸 송시열이 짓고 충청도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를 지낸 민유중이 글을 전해 의정부좌참찬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머릿돌은 반달 모양으로 앞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엉키어 있고 뒷면에는 구름을 타고 오르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각 뒤에는 정암 선생의 영정을 모신 제당과 그가 유배를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초가가 보존돼 있다.
문화재 현장에는 능주면사무소의 직원이 나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가 내민 방명록을 보니 전일 3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적혀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인 듯싶다. 글·사진=여균수 기자

사진설명 : 정암 선생이 능주로 유배돼 생활했던 초가가 적려유허비 뒤편에 보존돼 있다.

여균수 기자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