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배고픔을 먹어야 하는 걸까. 가난한 예술가의 삶은 낭만일까. 앞선 질문에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조례가 신설됐다. 광주시와 의회는 지난해 말 예술인의 열악한 처우나 복지를 개선하고 예술인의 권익보호와 안정적인 창작활동 지원하는데 뜻을 모았다. 예술인에 대한 투자가 지역발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겨있다. 예술인이 배고픔 대신 예술로 먹고 사는 미래는 앞당겨 질 수 있을까. 지역 예술인 실태를 살피고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광주광역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들여다봤다.

제정 배경과 세부내용
2011년 1월 청년 예술가 최고은 작가는 자신의 월세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굶주림.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최씨가 수 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
단편영화 ‘격정소나타’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작가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글은 이웃집 문에 붙어있는 쪽지였다.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사망했다는 젊은 예술인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열악한 영화제작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론에 힘입어 이듬해인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다. ‘최고은 법’이라고도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은 국가가 직업인으로서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보호하고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한 최소한의 생계유지 지원 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예술인복지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증진에 관한 시책을 수립해 시행해야한다’(4조 1항),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예술인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과 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4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광주시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광주시 예술인 복지증진 조례에는 예술인 권익 보호와 안정적인 창작활동 지원 내용을 담아 지역 예술인들의 복지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문태환 광주시의원 발의로 신설된 조례는 예술인에 대한 정의(제2조)부터 재정 지원, 문화·예술활동 후원, 실태조사까지 폭넓게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장은 예술인의 복지 증진을 위해 2년마다 예술인복지지원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하고 지원계획에는 목표 및 방향, 예술인 복지증진 사업 추진현황과 시책개발, 사업 진행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 등이 포함돼야 한다.
또 예술인 복지 지원계획 자문·심의 기구인 예술인복지증진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문화예술 창작 공간을 제공, 시설 활성화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명문화 했다.
이와 함께 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후원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인 및 예술인 단체와 후원하는 개인 및 기관, 단체 간의 연계 협력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했고 필요한 경우 예술인 근로실태조사를 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지역예술인 현황과 과제
2016년 광주전남연구원이 발행한 ‘광주지역 예술인 실태 연구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지역 예술인 3분의 1가량은 연간 소득이 1000만원에도 못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전남연구원이 2016년 7월 한 달간 광주지역에서 예술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만 19세 이상 예술인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활용한 면접조사와 이메일 조사를 병행해 회수한 223부 유효표본을 분석한 결과 지역 예술인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예술인들은 예술활동의 가장 큰 장애물로 ‘경제적 어려움(65.8%)’을 꼽았다. 실제로 지역 예술인들의 연간 소득은 ‘1000만원 미만’이 29.7%로 가장 많았고 ‘1000~2000만원’이 22.8%, ‘3000~6000’만원이 22.4%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한 예술인 중 21년 이상 경력자가 가장 많은 비율(28.3%)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열악한 수준이다. 특히 예술활동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비율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예술인 5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1년간 예술 활동 수입의 중앙값은 300만원, 평균값은 1255만원이었다. 건축·방송 분야 예술활동 수입이 평균값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다른 예술 분야는 평균 1000만원 미만이었다. 특히 ‘없음’에 응답한 비율은 36.1%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 불안은 고용형태에서도 드러난다. 지역 예술인 중 전업 예술인의 고용형태는 프리랜서가 46.2%로 가장 높았으며 기간제, 계약직, 임시직, 촉탁직이 12.3%였다. 고용주·자영업이거나 정규직인 비율은 각각 9.4%에 그쳤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작품 출연료(26%), 급여(25.1%), 작품판매료(12.8%), 강의(7.3%) 순이었다.
비전업 예술인이 예술분야 외 다른 일자리를 갖게 된 주된 이유는 ‘예술 활동을 통한 정기적 또는 고정 수입의 불안정성 때문(46%)’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예술 활동으로 얻는 낮은 수입 때문(35.4%)’이 뒤를 이었다.
특히 예술계 입문 후 1년 이상 예술 활동을 하지 않은 경력 단절 경험은 지역 예술인 절반가량이 경험했으며 단절 이유는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유지 어려움’이 78.2 %로 꼽혔다. 즉 ‘예술만으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 지역 예술인 사이에서 중론인 셈이다. 지역 예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투잡족이 돼 겸업을 해야 하고 겸업이 힘들 경우 생업을 위해 예술활동 자체를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광주지역 예술인들은 ‘예술인 전용공간 및 시설 확충(40.6%)’을 가장 시급한 지원책으로 꼽았다. 예술 창작활동을 할 만한 공간은 물론 창작물을 대중에게 선보일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읽힌다. 여기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역예술인에게 ‘그림의 떡’으로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기회의 장이 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81.7%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광주시의 예술정책에 대한 만족도다. 열 명 중 네 명은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8.3%에 그쳤다. 향후 광주를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는 답변이 1순위였다. 예술을 즐기고 사랑한다는 ‘예향(藝鄕)’ 도시 광주의 초라한 성적표다.

성공전략과 남은 과제
예술인 복지 증진의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부산의 경우 2013년 ‘부산광역시 예술인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종합적인 예술인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다. 부산시는 조례의 본격적인 시행과 함께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활동 여건과 생활 실태 등을 파악해 부산 문화예술 진흥과 예술인 복지정책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지역 실정에 맞는 부산형 예술인복지증진계획 수립을 위해 2015년 ‘부산예술인 실태조사 및 예술인복지정책수립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부산시뿐만 아니라 부산문화재단,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예술인이 함께 참여한 국내최초 종합복지정책으로 전국적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시와 연계해 2016년부터 예술인 활동증명등록 대행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장 종합적인 복지책을 펼치기 어려운 것을 고려해 실질적인 지원에 나선 셈이다.
특히 예술인이 지원을 받기 위해선 예술활동증명 및 예술인 패스를 등록해야 하지만 정보부족과 까다로운 절차 탓에 수혜자가 많지 않았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목적이다.
대행서비스 시행 결과 부산지역 예술활동증명 완료자 수는 2016년 기준 전년대비 212.9% 늘어난 2059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 기준 광주지역 예술활동증명 완료자 수가 739명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수치다.
부산문화재단은 올해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 개소와 함께 복지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술인 일자리 박람회’와 ‘예술인 일자리 파견’ 등 지역 예술인의 경제상황에 숨통을 틔여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 예술과 경영을 접목하고 공·폐가를 고쳐 예술인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등 예술인이 예술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환경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예술인 복지 증진 조례가 실적 중심 단기 사례로
반면
2011년 전라북도가 제기주도한 예술분야 일자리 창출 사업 예술뉴딜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사업방향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됐다.
전라북도는 도서관 일자리 등 문화예술분야 796개, 생활체육지도자 등 체육진흥분야 578개, 문화관광해설사 등 관광분야 575개, 예술관련 대학졸업자로 구성된 상설거리공연 예술단 운영 등으로 예술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그러나 예술뉴딜프로젝트의 신규 사업은 적고 창출된 일자리 대부분이 임시직이었기에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북지역이 제시한 1949개 일자리 중 1308개(67%)가 임시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임시직 양산 대신 정규직 비중 확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처럼 전북도의 사례는 단기적인 실적 중심 행정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술인복지법은 사회적 약자가 아닌 특정 일반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체계 정립을 시도한 최초의 사례다. 해당 법에 근거한 조례 역시 처음 시도됐다. 배고픔이 예술의 낭만으로 포장되기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시대로 진일보한 결과다.
그러나 조례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폐업 상태에 있는 예술인복지증진심의위원회를 가동하고 지원계획을 명확히 수립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지자체의 예술분야 지원으로 예술인이 예술만으로 먹고 살고, 그 예술인이 지역경제를 먹여 살리는 선순환을 구축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의 이익이 된다" 며 광주시의 적극적인 조례 이행을 주문했다.

고귀한 기자·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