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공약 수행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
취임 보름(5월20일 기준)이 채 안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행보는 ‘준비된 대통령’이 공언(空言)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주·전남에 약속한 공약들이 순조롭게 이행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변화한 지역 모습과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5·18 공약 이행 청신호
정권교체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 곳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이다. 지난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제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기념식장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자리를 지킨 5·18유가족들은 ‘위로 받은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3기 민주정부 탄생에 따른 9년만의 변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 제창곡으로 지정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광주에 내걸었던 5·18 대표 공약 중 하나다. 취임 하루 만에 제창을 가로막았던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취임 사흘째인 지난 12일엔 제 2호 업무지시로 ‘제창곡 지정’ 공약 이행을 완료했다.
새로운 변화의 모습은 기념식장 곳곳에서 감지됐다. 기념식은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져 1만여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3000여명에 비교하면 3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2014년 보훈처 직원 644명을 동원해 기념식장에 배치한 것과 달리 이번 기념식에는 5·18 관련 단체 뿐 아니라 4·19 혁명 등 민주주의 역사를 기리는 단체도 대거 초청됐다.
개방형으로 진행된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과거엔 사전신청 후 허가된 사람들만 기념식에 입장할 수 있었다. 기념식 주변을 바리게이트 등으로 둘러싸 철저히 입장을 통제했다. 이번 기념식은 간단한 위험물 소지 여부 검색 후 신분증을 가진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열린 국정의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경과보고를 국가보훈처가 아닌 5·18단체가 직접 하게 된 것도 8년만의 변화다. 경과보고는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이후 5월 3단체장이 교대로 발표해 오다 이명박 정부시절 광주보훈처장이 맡아왔다. 이번 기념식에는 김후식 5·18광주민주화운동 부상자 회장이 무대에 올라 5·18 발생배경과 전개를 보고했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였다. 문 대통령은 13분간 기념사를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고 말하며 5·18과 광주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한 2013년 기념식에서 4분짜리 기념사를 읽은 것 대조된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공약이었던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도 잊지 않았다. 그는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드린다"며 기념사를 통해 공약수행의지를 재차 밝혔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양분됐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전적으로 찬성의 뜻을 나타냈지만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약속하며 개헌시기와 권력구조 개편에 의견이 수렴되는 가운데 5·18 전문 포함 여부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청와대는 5·18 기념식이 열린 18일 "현재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 운영 중이며 각 정당 등을 통한 국민의 의사가 수렴될 것"이라며 5·18전문수록 개헌발언은 원포인트 개헌 선언은 아니며 기존 논의되던 개헌과는 별도 트랙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호남홀대’ 마침표 찍나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당하고 차별받은 인사부터 챙기고 구제하겠다."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3월, 문재인 당시 후보는 5·18민주광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고위공직자 인사에 호남 차별은 없다"며 "가장 중요한 국정운영 파트너는 호남이 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대통령이 된 후 당시 발언은 일정부분 현실화됐다. 호남 출신 인사가 정부 요직에 두루 임명되며 호남 홀대론 타파가 말 뿐이 아니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5월10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낙연 전 전남지사는 영광 출신이다. 같은 날 장흥 출신의 임종석 전 국회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권력의 중심인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모두 호남 인사인 것은 상징적이다. ‘인사차별은 국민통합을 막는 적폐’라는 문재인 정부의 대탕평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차관급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홍보수석)에는 전북 전주 출신의 윤영찬 전 네이버 부사장이, 장관급인 청와대 정무특보 겸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는 함평 출신의 이용섭 전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일자리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업무지시로 설치돼 정부 일자리 정책의 사령탑 기능을 담당한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만큼 이번 정부가 기대를 거는 기구다.
이용섭 부위원장은 지난 4·13총선에서 낙선한 뒤 광주시장 출마설도 거론된 인물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성공시키는데 적임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폭넓은 호남인사 임명 흐름은 법조계로도 이어졌다. 5월19일 법무부 검찰국장에 임명된 박균택 대검 형사부장은 광주 출신이다. 검찰국장은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법무부 요직 중 하나로 서울중앙지검장, 대검반부패부장, 대검 공안부장과 함께 검찰 내 빅 4로 꼽힌다. 역대 검찰국장 중 호남 출신은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문성우 변호사 이후 11년만이다.
이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전북 출신으로 전남고등학교가 배출한 지역인재다. 기자회견을 통해 인사를 직접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을 떠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지역적으로 탕평 효과가 나면 더욱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장관 인사에도 호남 출신들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광주 출신의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물망에 올랐다. 외교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송영길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고흥 출신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점쳐지던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담양 출신)은 문재인 정부 5년 청사진을 그릴 국정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인수위원회 인사가 입각하는 전례에 비춰보면 이개호 의원의 입각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은 새 정부의 인사방침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남은 과제는 지역인재 육성이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호남의 젊은 인재들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고 절실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의 차별이 없도록 기용된 호남인사들이 호남인재 육성에 나서는 일이 중요해졌다.

지역공약 현실화 경쟁전
문재인 정부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신설하며 공약 현실화 방안 마련에 분주해졌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국정방향과 목표를 수립할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년계획, 100일 계획 등을 마련하고 발표할 예정이다. 사실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능을 대신하는 자문위는 각 시·도별 공약과 현안을 선별해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
정권 교체기에 지역출신 인수위원을 통해 지역현안 챙기기가 이뤄졌던 전례를 감안한다면 자문위원의 활동은 지역공약을 현실화하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문위가 5월22일 개소식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전남도는 지역 현안사업을 새 정부 국정 과제에 반영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자문위의 국정 과제 선정 단계에 지역 공약 및 지역 현안 실천 방안을 건의해 지역 발전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전남도는 19일 김갑섭 도시사 권한대행 행정부지사 주재로 세부실천 방안 보고회를 열어 이번 대선에 채택된 전남 공약 세부 실천방안을 점검했다. 5월 중 실무 공무원들이 중앙 부처를 방문해 문재인 정부 업무보고와 2018년 부처 예산안에 전남 공약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6월에는 지역 정치권과 긴밀히 공조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공약 편성을 요청한다.
19대 대선에서 채택된 전남지역 공약은 스마트 팜 생산시스템 구축, 미래형 농·수산 빅데이터센터 건립 등 첨단과학기술 융·복합 농수산업 생산기지 조성과 해양관광 선도도시 육성으로 총 10개 공약, 48개 세부사업 16조 1000억원 규모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아니었지만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낙연 전 전남지사가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던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도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광주 지역 공약 중 영호남 상생공약이었던 ‘달빛내륙철도’ 건설은 이미 속도전에 돌입했다. 광주시와 대구시는 6월12일 ‘달빛내륙철도 건설추진협의회’를 출범키로 했다. 양 지역은 달빛내륙철도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시키기 위한 논리와 전략을 공동개발키로 해 현실화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광주 송정역~광주역~서대구~동대구를 연결하는 191km 고속철은 기존 KTX 대구~포항 노선과 광주~목포 노선과 연결해 동서남북을 잇게 된다. 사업이 현실화되면 광주역은 아시아중심도시의 관문으로서 재생하게 되며 지역 관광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2.0시대 선언에 따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정상화, 빛그린 국가산업단지의 미래형 자동차 생산기지화 등 굵직한 약속이 남아있다.
광주시는 미래형 자동차 생산기지화 성공방안으로 공용화 플랫폼, 스마트 팩토리형 공용화 생산기지 조성, 친환경 자동차 인증센터 설립 등을 선행과제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와 함께 관계기관, 정치권의 협의가 지역공약 현실화를 위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pressgh@gwangnam.co.kr

고귀한 기자·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