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느 것도 저절로 잘 자라지 않습니다. 앞 뜰의 잔디도 햇볕을 받고 물을 주고 비료를 뿌려야 잘 자랍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처럼 막연하고 무모한 자세는 세계화의 걸림돌이 될 뿐이죠."
김지수 교수가 최근 그의 삶에서 배운 교훈을 담은 책 ‘올빼미 눈에 비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40여년의 미국 생활과 은퇴 후 고향에 와서 보고 느낀 점이 편견 없이 담겼다. 그는 국제화를 끝없이 외치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세계인의 존경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국제화에 도달해야 하는 지를 냉철한 시각으로 진단했다.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고, 자극을 받은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이 책의 내용은 지난 6개월여 동안 91회에 걸쳐 광남일보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최근 지면 연재를 마치고 저자를 만나 책에 기술된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외국에서 오랜 기간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1946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순수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는 세계적인 석학 버거(R. Berger) 교수와 프로쉔(F. Proschan) 교수의 지도 아래 수학통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 로마린다대학의 정교수직에서 조기 은퇴하고 귀국했다. 이후 부인이 근무하는 전남대학교에서 ‘BK21’ 교수로 4년간 재직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구교수로 4년간 근무한 후 2015년에 퇴직했다. 수학과 통계학 전공학생 및 공과대학생, 심리학대학원생, 경영대학원생, 의대·치대·간호대·보건대학원, 약학대학원생들에게 통계학을 강의했으며, 수십 명의 석·박사 학생들의 학위논문을 지도했다.
미국, 유럽, 한국에서 발간되는 학술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된 저서 ‘Biostatistics for Oral Healthcare’(Wiley-Blackwell)는 이 분야에서 가장 포괄적인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매년 한국에서 8개월, 미국에서 4개월을 보내고 있으며, 가끔 특강도 하면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최근 ‘올빼미 눈에 비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동기가 무엇이며 집필이 완성됐을 때 느낌은 어땠나.
△19살 어린 나이에 사회경험을 해 볼 틈도 없이 한국을 떠났고, 40여년이 지난 후 귀국해 한걸음 밖에서 민족주의적인 오만이나 편견 없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의 이모저모를 관찰하고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사회평론가도 아니며,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그저 조국을 사랑하며 조국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모범국가, 명품 선진국민이 되길 바라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보고 느낀 것을 아무런 포장 없이 솔직하게 서술하다 보니 ‘비판적인 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겠지만, 오로지 대한민국의 미래와 후세대를 위한 건설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책을 출간한 것은 40년 이상 미국 생활을 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접촉하고,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이 미래 세대의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책에서 해결책을 제안하기보다는 주로 한국사회의 미약한 점들을 세계인들의 진솔한 시각에서 지적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합리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깊이 있게 하면서 획기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극이 필수조건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따끔한 자극제가 되어 서로 간에 진지한 토론의 마중물이 되어주길 바란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격이 실종된 주입식 입시교육 환경을 개혁하고,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개선하면서 후세대를 위한 밝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꾸미자는 것이다. 둘째는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이고 신사적이며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공공예의나 품격 및 기본적인 교양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셋째는 신뢰를 쌓으면서 세계 사람들로부터 명품 선진국 시민이라는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국제화를 하는 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밤잠을 못 자고 주입식 교육과 학원교육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외워 담아 머릿속에 집어넣고, 기계적으로 문제를 잘 풀어헤치는 기술을 연마한 한국 학생들이 국제학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교육은 대학 입학까지가 한계다.
이같은 교육이 50년 이상 지속돼 왔고, 정부도 막대한 예산을 오랫동안 투자했지만, 아직까지 노벨평화상 외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이런 교육을 2세대 이상 해왔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개개인 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양심과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악의 후유증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리를 옭아매고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한국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성공적인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잘 살고 부유하면 자연스럽게 선진국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선진국이 되는 조건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우리 국민소득이 하루아침에 3만 달러에서 6만 달러로 뛰어오른다 해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선진국이 되려면 근본적으로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준수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인권이 가장 큰 존중을 받아야 하고, 철두철미한 준법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며, 국민의 의식구조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인격과 교양을 갖춰야 하고, 국가와 국민의 행위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사회의 약자를 두둔하고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또 남을 배려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고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로 간에 믿음과 신임이 있어야 하며, 사회의 질서와 안전이 보장되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국민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보장되고, 정치 환경이 안정적이고 지도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임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책에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가장 큰 단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고쳐야 하나.
△이 세상 어느 사회에서도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의식구조가 바로 한국인의 학벌주의다. 국제화를 외치면서 학벌주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사회는 이런 면에서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심각한 단점은 지역 간의 거리감이다. 단일민족이면서도 화해나 화협, 이해를 못 하고,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할 정도로 ‘지-학-혈(지연, 학연, 혈연) 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 습관, 역사, 전통, 사고방식, 식성과 풍습을 터득해 국제화를 하겠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다. 세계인들로부터 얼빠진 한국이라고 조롱받기 전에 우선 국내화부터 잘 해보도록 노력하자.
조금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한국사람들처럼 공공 예의가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철두철미한 배려 정신이 있어야 한다. 배려심이 없으면 사회 전체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배려 정신이 없는지는 교통문화를 보면 곧 알 수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녀나 학생에게 "남을 먼저 배려해라"고 교육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되묻고 싶다.
불행히도 우리 교육은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수하고 숭고한 교육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지 않다.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교육의 부산물로 자연스럽게 따라올 뿐이다. 한국의 현재 교육은 삐뚤어진 빗나간 교육이다. 극성 엄마들도 문제다. 다른 사람에게 환영받는 향기로운 아름다운 인격은 오히려 엄마의 극성이 없는 곳에서 형성된다.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이 국제 정세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떤 덕목이 필요한가.
△국제화를 잘 하려면 우선 상대방에게 불편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제화는 근본적으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다. 사람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들이 국제화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믿음과 신뢰를 주고 우리에게 호감을 갖도록 해야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다.
국제화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상호 간 친목, 평화, 안전, 이익과 발전을 위해 문화, 경제, 교육, 정치, 외교 등에서 교류를 활성화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핵심은 교류하면서 가까워지고 평화 속에서 공존하자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거세게 불어오는 국제화 바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현재 지구촌 여러 곳에서 우리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국제화에서는 우리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언행을 취해야만 믿음과 신임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인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약간 멸시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동남아 출신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가 백인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다는 것을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다. 국제사회는 불손한 태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편견과 차별이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결코 우리가 바라는 성공적인 국제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평화롭게 형제자매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지혜를 마음속 깊이 심어야 한다.
조만간 세계 각 나라가 인력 경쟁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미 동남아 지역의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노동력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값싼 노동력은 물론, 고급인력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세계의 인력은 편견과 차별로 멍들어 있는 나라보다는, 편견 없이 서로를 포용하고, 서로 인격을 존중해주는 더불어 사는 지혜가 많은 평화로운 나라로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하루빨리 이런 사회를 만들고 세계 사람에게 한국은 편견이나 차별이 없고, 더불어 사는 평화스러운 나라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국제화로 나가는 길이다.
고향만 따지는 의식구조를 지닌 한국인들이 무슨 국제화를 성공적으로 잘 할 수 있겠는가? 모든 한국인에게는 고향이 하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우리들의 고향이다.

김인수 기자 joinus@gwangnam.co.kr

김인수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