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사랑·풍요 등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온 정윤태 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지난 2016년 9월에는 남부대학교 교정에 ‘정윤태 조각공원’이 조성돼 50여년의 화업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더욱이 정 전 학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의 종각에 깊숙히 관련돼 있다는 것은 많이 인식하지 못한다. 광주시의 시조새인 비둘기를 조각해 용(龍) 제일 위쪽에 설치했을 뿐 아니라 네개 면의 상징물을 조각한 장본인이 바로 정 전 학장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이슈를 모은 작품에서부터 평화와 사랑, 풍요의 메시지를 을 담보한 ‘함께해요-더 나은 미래’, ‘청해진의 꿈’ ‘평화로운 하늘’ 등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2010년 조선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더욱 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잇따라 전시를 열 예정이다. 정 전학장은 제9회 개인전(6월27일∼7월10일 진한미술관)과 제10회 개인전(7월26일∼8월9일 부산타워갤러리)을 갖는다. 이 전시에는 2010년 퇴임 후부터 정윤태 조각공원 조성 전후 완성된 ‘대한국인’ 등 작품 55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앞두고 작성된 미술평론가로 활동중인 김옥조 광남일보 편집국장의 평론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의 반세기 예술 열정’을 게재, 소개한다./편집자주


창작은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손을 움직여 대중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는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로 나타난다. 손은 또 제3의 매체를 활용하여 이미지와 형태, 컬러를 빚어낸다. 그것이 예술작품이다.
물론 손은 몸의 일부이다. 그 몸을 쓰게 하는 머리(두뇌)는 곧 정신으로 통한다. 창작에서 정신이란 작가의 강한 표현 의도를 반영한 결정체이다. 작품은 작가의 정신과 관객의 감정을 이어주는 교감 매체이다. 이런 예술창작 과정과 감정공유 결과를 가져 오는 도구로써 손은 소중한 존재감을 갖는다.
원로 조각가 정윤태 교수는 손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만학의 학생으로 시작해 교수와 대학장, 미술관장을 거치며 조각가로 활동해온 정 교수의 50여년 작가로서의 인생은 ‘손으로 빚은 삶’이 아닌가 싶다.
사실 어느 예술분야보다 조각은 작업 방식이나 과정에서 손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이 느끼는 감각과 기능, 경험, 솜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조각가라면 작품 구상에서 작업 전반의 과정을 손에 의존해 시작과 끝을 맺는 게 일반적이다.
정 교수는 자신만의 손에 대한 투철한 신념을 담아 예술세계를 일구어 왔다. 그의 손에 대한 소신은 작품에 대한 가치와 열정의 흔적을 엿보게 한다.
정 교수는 "오직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으로 창작에 임해 왔다고 말했다.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조작 작품은 ‘손의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의 신념은 "오직 작업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직설적인 의미를 알게 해준다.
또한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다지며 오직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작품 하나 하나를 완성해 온 점을 반증한다. 그것이 오늘날 ‘정윤태 조백’의 위치에 올라서게 했다는 설명을 뒷받침한다.
정 교수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매우 부지런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조각가의 한 길을 지키며 많은 작품들을 발표해 국내외 미술계의 조명을 받아온 작가이다.
이러한 정 교수의 ‘쉬지 않는 손’이 빚어내는 작품들에는 작가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정 교수 스스로 기회 있을 때 마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우주 공간 속에서의 하늘(天)·땅(地)·인간(人間)의 조화이다"고 강조했었다. 동양철학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서 하늘·땅·사람이 하나다는 사상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정 교수의 작품에는 ‘평화’·‘사랑’·‘풍요’의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소망과 염원의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정 교수의 예술세계와 철학적 사상을 구현한 작품을 총망라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 ‘조각가 정윤태 예술인생 반세기’를 조망하는 기회로 더욱 주목된다.
정 교수의 작품을 보는 특징적 관점은 다음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한다. 대자연에 함께 공존하는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땅, 하늘, 공기, 구름, 바람, 바다, 물고기, 동물 등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자연과 함께 형상화된 사람은 주로 가족이나 자매, 모녀 관계로 등장한다.
이는 자연과 조화된 삶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대한국인’을 비롯 ‘축복의 가족’, ‘두꺼비 가족’, ‘사랑의 가족’, ‘평화로운 나날’, ‘기도하는 자매’, ‘가족의 사람’, ‘상생’, ‘바다사랑’, ‘화합의 미소’, ‘한마음 가족’, ‘온화한 안식’, ‘품안의 사랑’ 등의 작품은 주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둘째 표현방식 측면에서 구상 표현과 비정형의 조합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이 매우 사실적인 형상과 이미지를 드러낸다. 일반 관객 누구나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작품 속 소재인 사람과 자연물을 실제의 비율보다 늘리거나 확대하는 형태를 유지한다. 비정형과 비대칭을 부각하여 입체 작품의 반상식적 파격미와 시각적 참신성의 효과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여인상의 경우 곡선의 미감을 살리면서도 손과 다리, 몸체의 길이를 과도하게 늘려 선의 리듬감과 볼륨감을 강조한다. ‘새 차원의 노래’, ‘무등을 든 여인’, ‘기도하는 자매’, ‘희망의 바람’, ‘율동의 노래’, ‘희망의 춤’, ‘화합과 소통’, ‘꿈을 향하여’ 등의 작품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다.
셋째 정 교수의 작품은 여성성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관점을 꼽을 수 있다. 미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여성은 여성만이 간직한 신체의 풍만함과 완만함의 교차로 생기는 시각적 긴장감과 곡선의 조형감각을 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정체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의 작품에 드러나는 여성의 형상은 한마디로 상큼한 매력에 집중돼 있다. 일단 길고 발랄하며 율동적인 포즈가 주를 이룬다. 이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외형적 곡선미에 그치지 않는다는 작가정신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작가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내세우면서 여성의 정체성을 기본으로 주제의식을 보다 확대해 주는 대상으로 작품에 담는 것을 말해준다.
넷째 정 교수 작품의 또 하나의 관점은 작품구성의 파격성이다. 예술작품은 주제를 전달하고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실과 상식을 뒤집어 표현하는 부분이 허용되기도 한다. 정 교수의 작품을 얼핏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구성도 종종 눈에 잡힌다.
사람이 거대한 무등산을 들고 있거나 두꺼비 등 위에 올라 있는 사람, 새 위에 포개어져 있는 군상, 땅 바닥 쪽에서 하늘 방향으로 부는 바람, 다섯 개의 얼굴이 하나로 섞여 있는 모습, 악기 사이에 선 여인, 입맞춤하는 물고기 위의 군상 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소재를 확대 또는 부각시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정 교수는 예술적 표현의 경계를 넘어 완성도 높은 조형성을 추구하는 작업에 집중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작품 ‘대한국인’은 필자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 사람 인(人)자를 형상화한 브론즈 작품이다. 천지인의 합일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절제된 조형미로 풀어 낸 수작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압축 표현했다. 땅에 발을 의지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모자 쓴 사람의 모습을 삼각 구도로 안정감 있게 구성하고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다정한 남성과 여성의 행복한 모습도 담았다.
사랑을 전달하고 풍요로운 대지의 정경을 수평적 흐름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정 교수는 역경을 딛고 밝은 미래를 향한 진취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작가 자신의 반세기 예술인생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에 다름 아니다.
작품 ‘신세계를 향해’는 올해 정유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신작이다. 닭의 다섯 가지 덕목인 신(信)·인용(隣勇)·무(武)·문(文)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목과 꼬리를 치켜세운 닭의 형상을 U자형으로 구성했다. 활짝 펼친 닭 벼슬을 층층히 쌓아올려 배경을 만들었다. 그 앞에 비상하듯 날렵하고 유연한 곡선미를 드러낸 여인의 모습을 결합하여 보다나은 내일의 꿈을 향해 가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고향 완도를 주제로 한 작품 중 ‘바다의 미래’는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를 맞이하여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표현한다. 또 ‘청해진의 꿈’은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청해진의 꿈을 담고 세계를 넘어 미래를 열자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작품은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검지를 쭉 뻗은 오른손을 수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한눈에‘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는 글귀가 전면에 새겨져 있다. 이 글은 남부대학교 설립자인 우암 조용기 학원장의 창학정신으로 유명하다. 우연의 일치로 손을 강조한 조용기 학원장의 설립정신과 정윤태 교수의 예술정신이 지향하는 바가 맞아 남다른 인연을 탄생시킨 배경을 갖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정 교수는 자신의 작품 23점과 제자들의 작품을 남부대에 기증해 정윤태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2012년 퇴임 이후 투병생활을 하는 등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야 했던 정 교수는 "모든 것을 비우자"는 결심을 하고 작품 기증을 통해 몸과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뜻깊은 공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번에 내놓는 브론즈 부조 작품들은 역사적 사건과 지역의 전통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도 엿보게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조형화한 ‘대한독립만세’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여 민주·인권·평화정신을 나타낸 ‘광주는 살아있다’ 등도 선보인다.
또 고싸움놀이를 소재로 하여 대동세상에 대한 꿈을 형상화한 ‘대동세상을 꿈꾸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무등산 입석대의 이미지와 인간의 소망과 기원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무등산 입석대’ 등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평생 예술가로, 교육자로, 미술행정가로 살아온 정 교수가 인생의 고비 마다 시련과 성장을 거듭하며 쌓은 예술적 위업이 이번 작품전을 통해 미술사에 족적을 남기는 온당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글 김옥조(미술평론가)


정윤태 前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장은
△전남 완도 출생 △조선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 졸업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학장 △개인전 8회 △단체 및 그룹전 다수 △국전 운영위원 △국전·한국조각대상전 심사위원 △세계조각·장식박물관 명예관장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이사 △한국미술협회 광주시 지회장 △한국예술총연합회(한국예총) 광주시 부회장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 △대통령문화훈장 △국립현대미술관장상 △한국문예진흥원장상 △한국미협전 최고상 △프랑스 르 싸롱 동상 △남부대 내 정윤태 조각공원 조성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글=김옥조(미술평론가)